“저희 지점은 HUG 대출 취급 안 합니다” 직장인 박모(28) 씨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 끝에 창구에 앉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경기도 파주에 거주하는 박 씨는 지난달 연차를 내고 서울의 한 은행 지점을 찾았다. HUG 대출 받기가 어렵다는 소문에 10곳 넘게 전화를 돌려 어렵게 찾은 곳이었다. 박 씨는 “통화에서는 서류를 가져오라고 해 어렵게 준비해 왔는데, 정작 심사조차 받지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출 조건이 부합해도 은행 문턱에서 좌절하는 HUG 대출 수요자들이 늘고 있다. 19일 주택도시기금 홈페이지에서는 5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우리, 농협, 하나)에서 대출이 가능하다고 안내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은행 지점별로 취급 여부나 대출 한도 등의 안내가 제각각이다. 심지어 같은 은행 안에서도 직원별로 설명이 달라 ‘행원 바이 행원’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출 희망자들은 손품과 발품을 팔아가며 대출이 가능한 은행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디딤돌 대출과 관련해 “조건에 부합하는데도 승인 거절”이라는 하소연이 줄을 잇는다. ‘거절’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19일 기준 191건의 게시글이 나온다. 대부분 은행 심사 중 거절됐거나 거절 가능성을 묻는 내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요자들은 “어느 지점에서 승인받았다”는 정보까지 서로 나누며 품앗이를 하고 있다.
대출 과정은 거절의 연속이다. 김이슬(27) 씨는 서울 4개 자치구(마포구, 중구, 서대문구, 강서구) 내 은행 5곳에서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 이유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일부 은행에서는 “전세사기가 빈번한 강서구에 집을 구했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했다. 김 씨는 “여유 자금이 부족해 보증금이 낮은 지역을 택했는데 이런 이유로 거절당하니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대출 과정에서 어려움이 생겨 이사를 미루기도 한다. 박모(28) 씨는 16번째 문의한 은행에서 대출을 취급한다고 안내받고 ‘기금e든든’ 홈페이지에서 사전자산심사를 신청했다. ‘적격’ 판정을 받고 방문한 은행에서는 돌연 원하는 한도만큼 대출이 불가능하다며 취급을 거절했다. 박씨는 결국 이사 일정을 연기해야 했다.
사전자산심사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도 대출 받는 은행 지점을 바꾸려면 재심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안내를 보면 재심사는 최소 일주일 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사전 자격 심사는 이사 예정일로부터 30일 이상 여유가 있어야 접수할 수 있다는 조건 때문에 시간적 압박이 심했다.
주거래 은행이어야 대출이 가능하다는 직원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급여 통장을 옮기거나 카드를 발급받는 사례도 흔하다. 심모(27) 씨는 10번의 ‘은행 뺑뺑이’ 끝에 겨우 대출 승인을 받았다. 그는 “은행원이 ‘너무 고생하신 것 같아 도와드리겠다’며 신용카드 신청서를 내밀었다”고 말했다. 필요하지 않은 카드였지만 괜히 거절하면 대출이 안 될까 싶어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은행 영업점이 정책 대출 상품 취급 여부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각 은행은 이를 온라인으로 알리지 않을뿐더러, 전화 문의도 고객센터를 통해야 해 절차가 번거롭다.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하려면 결국 은행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김 씨는 “요즘 같은 시대에 꼭 영업점을 방문해야만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매번 연차를 낼 수도 없고, 청년이 실거주 목적으로 정책 대출을 받으려는 건데 이렇게 어렵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