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피플] 쌀 포대 같아 보이는 몸체는 흐물거리고 앞 코는 발등을 덮는 스타일로 멋없이 길게 빠져있다. 탐스슈즈는 고등학교 때 신어야 했던 면실내화 같이 생겼다. 하지만 이런 신발이 요즘 없어서 못 파는 ‘핫’ 아이템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이 신발의 인기 비결을 물어보기로 했다. 한국에 탐스를 수입해 유통하고 있는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35)를 지난 3일 만났다.
강 대표는 3년 전 미국 탐스 슈즈에 메일 1통을 보냈다. 좋은 취지로 2006년 브랜드를 론칭한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본사 사장(33)에게 “한국에서도 이 신발을 팔수 있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답장은 곧 왔고 강 대표는 미국으로 날아갔다.
두 젊은이는 “탐스가 포스트 컨버스(가장 잘 나가는 면 운동화)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이라며 의기투합했다. 미국 내에서 한달 몇 백 켤레 팔던 때였다.
탐스는 현재 미국 전역을 비롯해 유럽, 일본 등 세계 여러 곳곳에 팔리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 파파라치 사진 속에서도 탐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탐스는 2009년 12월 기준으로 60만족을 세계 어린이에게 기부했다. 한 켤레를 팔면 하나를 기부하는 판매 방식을 감안하면 이는 곧 판매량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강 대표는 못난이 슈즈로 분류되는 탐스의 인기 비결에 대해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잘 팔리지 않아도 평생 탐스를 키워보려고 했다는 강 대표는 “탐스가 한국에서 제대로 성장하는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 버스를 타고 왔는데 버스 안에서 10명 남짓한 승객 중 두 명이 탐스를 신었더라. 실제로 ‘대박’ 실감하나?
“대박이라는 말은 상대적인 것 같다. 규모가 큰 기업에서 보자면 우리의 매출은 보잘 것 없다. 작은 업체에서는 우리가 부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장세가 빠른 것은 맞다. 지난해와 비교해 봤을 때 매출이 3배가 증가했다.
아침에 출근하다 보면 5~6명 우리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는 것은 일도 아니게 됐다. 심지어는 내가 신은 탐스를 본 한 지인은 ‘어? 나도 이 신발 아는데….’하면서 신발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도 있다. 그는 내가 이 신발을 수입하는지 몰랐다. 이럴 땐 어느 정도는 자리는 잡았구나 싶다.”
- 온라인에서 없어서 못 산다는 얘기가 많던데.
“수입을 시작한 2007년은 물론 2008년에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작년 상반기부터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기 수요도 생겼다.
지난해 여름 시즌 신발을 온라인에 올렸는데 판매를 시작한지 30분 만에 완판 됐다. 여성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빨간색 탐스는 최근 판매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동이 나 깜짝 놀란 적도 있다.
판매가 이 정도로 급증할지 예측을 못한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웃음) 원활한 공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가장 잘 나가는 모델은.
“우리 신발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하다. 남색과 아이보리, 검은색 같은 기본적인 색상이 당연히 잘 나간다.
하지만 다른 운동화에서는 잘 안 팔리는 빨간색이 유달리 인기가 높다. 탐스는 빨간색이 가장 예쁘다는 공식이 형성된 것 같다. 우리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빨간 탐스가 기본적인 아이템이 돼 버렸다. 특히 여성들에게 말이다.”
- 실내화 같이 생겼다.
“이 신발은 아르헨티나의 전통 신발인 알파르가타다. 바닥을 짚으로 엮고 만들고 그 위에 캔버스 천을 꿰매 만든 신발이다. 유럽의 짚신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가볍고 편안한 착용감이 장점이다. 명품 브랜드에서 매 시즌마다 이 같은 스타일의 신발이 내놨다.
마이코스키 미국 본사 사장이 여행 중 이 신발을 보고 운동화처럼 만들면 예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짚신 대신 고무창을 대서 운동화로 만든 게 탐스다. 알파르가타의 보급형이라고 보면 되겠다. ”
- 어떻게 보면 대충 만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뭔가.
“우리도 잘 모르겠다. (웃음) 꼭 집어서 이것 때문에 인기가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다. 유럽 사람들이 수 백 년 동안 신었던 신발이다. 그들이 오랫동안 신었던 것은 편안하지만 신기에도 예뻐서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이런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통하고 있는 것 같다.
탐스를 자랑하자면 일단 편안하다. 그리고 디자인이 단순하지만 아무데나 코디하기 편안하다. 가격도 괜찮다. (6~9만 원 선) 저렴하다는 것이 아니라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한 켤레를 사면 제3세계 다른 어린이에게 신발을 기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구매력을 끌어들이는데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온 이야기를 좀 해 달라.
“임동진 이사가 친동생의 친구이다. 그 친구가 삼성물산을 다니던 중에 인터넷에서 탐스 슈즈를 봤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별로 유명하지 않았을 때다. 그 친구는 독특한 기부 문화가 좋아 수입을 하고 싶어 했다. 친동생이 그 친구를 나에게 소개해 줬다. 나도 패션사업을 언젠가는 꼭 해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던 터였다. 보고 이거다 싶었다. 취지도 좋지만 일단 스타일도 좋았다.
무작정 미국 본사에 이메일을 보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답장이 왔고 우리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마이코스키 사장은 요트 위에서 생활을 한다. (웃음) 배에서 세 명의 젊은 남자가 만났다. 마이코스키 사장도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었고 우리의 의지는 하늘을 찔렀다.
마이코스티 사장이 ‘탐스가 포스트 컨버스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어쩜 나란 생각이 똑같나’고 거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에는 우리가 말한 일들이 황당한,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당시에는 미국에서도 탐스를 한달에 몇 백 켤레 밖에 팔지 못한 때였다. 하지만 하나씩 다가가고 있다. 신기할 따름이다.
브랜드 초창기 때부터 같이 일을 해 와서 인지 애정이 남다르다. 총판사업자가 한번도 바뀌지 않고 꾸준히 판매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 우리 밖에 없다고 들었다. ”
- 탐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거 같다.
맞다. 나는 좋은 브랜드가 한국에 들어와 소멸되는 것이 안타깝다. 수지 타산에 안 맞으면 바로 접고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 아기를 키우듯 브랜드가 제대로 성장하는 걸 보고 싶다.
마이코스키 사장을 처음
만났을 때 ‘아무것도 없는 우리에게 판매권한을 주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당시 일본 판매 대행사는 유명 브랜드 여러 개를 팔고 있는 큰 기업이었다. 누가 봐도 사이즈가 달랐다. 하지만 마이코스키 사장은 “당신이 우리 회사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서 결정을 했다”고 말하더라. 실제로 일본 대행사는 1년도 안 되서 판매를 접었다고 하더라.
탐스가 잘 나가니깐 여러 기업에서 미국 본사에 연락해 한국 판권을 달라고 찔러 보고 있다고 한다. (판권과 관련해)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0년이고 20년이고 탐스라는 브랜드가 잘 성장했으면 하고 바란다.
수입하고 2년간은 거의 반응이 없었다. 하지만 신념은 있었다. ‘이 브랜드를 한국에서 오랫동안 가져가야겠다. 행여 잘 안되더라도 끝까지 키우고 싶다’는 의무감이 있었다. 다른 일을 하면서라도 말이다. ”
- 공효진-류승범 커플이 탐스를 커플로 맞춰서 신은 사진이 온라인에서 화제다. 협찬인가?
“공효진- 류승범 커플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2008년쯤 그냥 드렸는데 신발을 예쁘게 신고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린 것 같다. 이 사진이 뒤늦게 퍼지면서 다시 돌고 있더라.
드라마 협찬 요청도 어느 정도 들어오고 있는데 무상 협찬은 안한다. ‘우리 신발 드릴 테니 방송에 좀 비춰주세요’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초창기 사업할 때 인터넷 검색 창에서 탐스를 치면 비슷한 이름의 커피 전문점이 먼저 나와 애를 먹었다. 하지만 지금 탐스를 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뜬다. 드라마 협찬이나 광고를 한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가 자연스럽게 퍼지고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 품질이 별로라는 불만도 가끔 보이던데.
“한국 소비자들이 지적하는 사항을 본사에 많이 전달했다. 반영된 부분도 있다. 천으로 만들어져 있어 약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탐스는 좋은 일을 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품질로 반품을 요구하면 대부분 다 처리해준다. 심지어 신던 신발을 반품해준 적도 있다. 기부를 실천하는 기업이 품질로 소비자와 싸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 기부 문화가 국내에서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처음에는 아니었다. 취지도 좋았지만 당연히 패션 아이템으로 먹힐 것 같아서 수입을 결정했다. 잘 팔려야 기부 활동을 할 수 있다. 상품이 매력이 있고 거기에 기부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기부를 내세워 봤자 안 먹힌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소개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판매를 시작하고 나니 기부에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어떤 소비자는 자필로 적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내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신발을 구매해 신고 나갔는데 내가 기부한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와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기분 좋은 일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