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그를 울렸을까. “마침내 이 자리에 왔다는 감격 때문”이라고 했다. 축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월드컵 출전은 상상할 수 없었으나 꿈을 이룬 것이다. 조국 북한에는 44년 만이자 자신의 생애 처음으로 밟은 월드컵 본선 무대는 그렇게 벅찬 감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의 벽은 높았다. 스스로 이변을 연출하기에는 힘이 달렸다. 축구변방 아시아에서 최약체로 불리는 북한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이자 월드컵 통산 최다 우승국인 브라질을 꺾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정대세는 그러나 경기를 앞두고 흘렸던 눈물의 약속을 지켰다.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냈다. 대부분의 동료 선수들이 브라질의 강한 압박을 막는 동안 최전방에서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했지만 몇 차례 찾아온 기회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골문을 겨냥했다.
결과는 북한의 1대2 패배. 44년 만에 치른 월드컵 첫 경기에서 승점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나 브라질을 상대로 한 골 차 석패했다는 점은 분명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정대세는 만족하지 않았다. 마치 이길 수 있었다는 듯 스스로를 자책했다. “정말 힘든 경기였다. 내 골로 승리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아직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과 코트디부아르 등이 남았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이날 보여준 투지를 재현한다면 충분히 승산 있다. 북한이 지난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보여줬던 8강 진출의 기적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정대세의 골 기회도 여전히 남았다.
그의 다짐은 비장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16강)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 짧고 분명한 각오를 밝힌 뒤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