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지구촌] ‘입던 옷까지 다 벗고 나오는 곳. 5분 이상 걸으면 강도를 당하는 범죄의 온상. 외국인을 죽여 불태우는 최악의 빈민가….’
남아공 중심도시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 알렉산드라(Alexandra)에는 이런 주홍글씨가 새겨져있다. 남아공이 월드컵 기간 중 열악한 치안으로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이유도 어쩌면 과거 빈번했던 알락산드라의 범죄가 세계인의 불안감을 자아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8일(현지시간) 직접 찾아가본 알렉산드라의 풍경은 그런 악명을 낳기에 충분해보였다. 반쯤 부서진 벽돌과 녹슨 철판을 쌓아 만든 집에는 10명씩 모여 살고 있었고 그렇게 80만명의 인구가 거대한 빈민 소도시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낮부터 거리 곳곳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흑인 남성 무리는 순식간에 떼강도로 돌변할 것만 같았다. 허름한 집 대문 앞에서 꽃단장한 여성은 손을 흔들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500m에 한 대 씩 발견되는 경찰차만이 폭발 직전의 이곳을 겨우 지탱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어도 차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그랬다.
최악의 빈민가,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
알렉산드라 주민들에게 월드컵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였다. 바람 빠진 축구공을 차는 어린이와 기울어진 가로등에 걸린 홍보 현수막이 없었다면 이곳이 월드컵 개최지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뻔했다. 불과 4㎞ 떨어진 요하네스버그 최대 상업지역 샌드턴(Sandton)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절대 차에서 내리지 말라’는 조언을 무시하고 거리로 나왔다. 한낮인데다 현지 한국인의 동행으로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축구공을 이리저리 굴리는 어린이가 처음 눈에 들어왔다. 말을 걸었다. “사진촬영해도 될까?(기자)”. “얼마 줄 거예요?(어린이)”. 대답의 대가를 달라는 것이었다. 열 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이의 말이라고 하기에는 세상의 때가 잔뜩 묻어 있었다.
지갑에서 10란드(약 1500원)짜리 지폐를 꺼내주자 사진촬영에 응한 뒤 축구를 계속했다. 돈을 꺼낼 때 불현듯 불안감이 찾아왔다. 누군가 쫓아와 지갑을 빼앗지 않을까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차량 이동과 사진촬영을 위해 걷기를 반복하다 현지 흑인들의 주식인 팝(Pab:곡식을 찧어 만든 떡)과 고기를 파는 식당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들어가 네 명도 먹고 남을 정도의 식사를 주문해 식당 주인과 함께 먹자고 권했다.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노골적으로 이곳의 열악한 치안에 대해 물었다.
식당 주인 시드니 음템부(60)씨는 기자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위험할 것이고 친절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난하다고 해서 범죄자가 아니라는 말도 보탰다. 그의 말은 옳았다. 이곳에서 체류했던 6시간 동안 한 번도 강도를 만나지 않았다.
위협하는 사람도 없었다. 시선을 마주칠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안녕을 물었고 사진촬영을 요구하면 친구를 불러 모아 함께 자세를 취해줬다. 구걸을 거부해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들어갔을 때의 두려움도 이렇게 사그라지고 있었다.
“당신의 도시에서도 언젠가 벌어질 수 있는 일”
알렉산드라 주민들은 과거 갈등으로 인한 비극을 경험했다. 남아공 흑인들은 짐바브웨 등 인접국 이주민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일자리를 빼앗겼다, 이는 외국인 혐오증으로 확대됐고 지난 2008년 5월 발생한 주민 폭동으로 많은 이주민의 피를 뿌렸다.
갈등은 기존 흑·백대립과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인종차별 철폐의 상징으로 떠올랐던 남아공이 흑인끼리의 차별이라는 기현상으로 다시 몸살을 앓았던 것이다. 이곳이 남아공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로 전락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고 한다.
이방인의 유입이 줄어들자 이곳의 경제사정도 큰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주민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살기위해서는 자구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자율방범대를 구성하는 등 새로운 질서를 마련했다. 외국인에게 위협 대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인사했고 판매와 구걸을 강요하지 않았다. 지역축구팀을 만들어 청소년을 마약과 음주, 흡연에서 구했다. 이 같은 노력은 어느 정도 결실을 맺고 있었다. 해가 떠있을 때만큼은 외국인의 여행이 쉬워졌고 주민 간 폭력사건도 줄었다고 한다.
문제는 세계인의 시선에 있었다. 세계인의 눈에는 여전히 폐허로 뒤덮인 우범지역에 불과했다. 영국과 독일 등 유럽계 언론들은 사상 첫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하는 월드컵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 중에서도 중심도시에 위치한 대단위 빈민가 알렉산드라는 가장 흠집 내기 좋은 대상이었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남아공 곳곳에서 강력범죄가 발생하자 알렉산드라를 향하는 발길도 뚝 끊겼다. 지난 2년 간 주민들이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과거 새겼던 주홍글씨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6시간의 체류를 마치고 알렉산드라에서 나올 때쯤 한 현지 경찰에게서 의미심장한 경고를 들었다. “허상과 악소문이 알렉산드라를 억누르고 있다. 당신의 도시도 언젠가 이런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