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남아공은 럭비와 크리켓의 나라다.
흑인정권의 수립 이후에도 정·제계를 장악하고 있는 영국계 백인은 럭비, 자본을 축적한 인도계 이주민은 크리켓에 열광한다. 축구가 국민 스포츠로 올라설 수 없었던 이유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주도권을 잡지 못한 흑인 사회에서만 사랑 받았다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남아공은 2010년 월드컵 개최를 통해 축구열기를 어느 정도로 끌어 올렸을까. 18일(현지시간) 중심도시 요하네스버그 곳곳에서 한층 더 뜨거워진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청소년 일탈을 막은 빈민가리그
요하네스버그의 대표적 빈민가 알렉산드라의 한 운동장에서 흙먼지를 날리며 축구 연습경기를 하는 청소년들을 발견했다.
흙과 자갈이 깔린 운동장에는 골대도, 라인도 없었다. 사각 철골구조물을 골대로 세우고 그 뒤에 큰 돌을 깔아 그물망을 대신했다. 제대로 된 장비라고는 팀을 나누기 위한 조끼와 공뿐이었다.
그러나 팀은 그럴듯한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감독은 선수 개인별자료를 들고 작전을 지휘했고 교체선수들은 주전 선수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명칭은 ‘영타이거스’. 알렉산드라 빈민가에서 차출한 16세 이하 청소년팀이었다.
남아공대표팀 출신 미드필더 벤슨 믈롱고(올랜도 파이어리츠)를 배출하는 등 역사를 갖춘 팀이지만 그동안은 훈련할 장소를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방정부는 그러나 월드컵을 계기로 공원이었던 이곳을 훈련장으로 허락했다.
감독인 마이클 잇사라(44)씨는 “축구가 도둑질과 마약, 흡연, 음주로부터 흑인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다”며 “지역별 리그가 활성화되면서 주민 간 폭력사태도 줄었다”고 했다. ‘영타이거스’는 19일 인도계 청소년팀인 ‘말보로스포팅’과 격돌한다.
월드컵티켓 구하러 북새통…암표도 성행
국제축구연맹(FIFA)이 운영하는 요하네스버그 샌드턴 월드컵티켓 판매소에는 긴 줄이 늘어져있었다. 곳곳에서는 암표상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판매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암표상의 유혹에 넘어가는 이들이 늘어났으나 대부분은 제 가격에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대부분은 남아공 시민들이었다. 럭비와 크리켓 외 경기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소비한다는 점만으로도 이번 월드컵이 현지인들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까지 가세하며 축구열기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는 21일 스페인과 온두라스전 티켓 구입을 위해 판매소를 찾아온 아잠(싱가포르)씨는 “단순히 스포츠팬으로서 남아공에 왔지만 현지인들의 예상 밖의 열기에 놀랐다”고 했다.
남아공 시민들은 지난 16일 조별리그 2차전에서 우루과이에 0대3으로 완패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국대표팀 유니폼 색인 노란 티셔츠로 전국을 물들였다. 그러나 16강 진출을 낙관할 수 없게 된 현재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