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한국방송영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이하 ‘한예조’)이 단단히 뿔났다. 지상파 3사 드라마 출연료의 미지급 금액이 47억원을 웃돌면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다며 출연 거부 선언한 것이다.
‘한예조’는 부실한 외주 제작사에게 무분별하게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이 지경까지 이르게 만든 KBS·SBS·MBC를 향한 분노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KBS는 1일 ‘한예조’의 출연거부 공식발표 기자회견 직전 극적으로 타결해 47억원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원에 대한 지급 보증을 약속했다.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자이언트’ ‘나는 전설이다’ ‘여자를 몰라’ ‘이웃집 웬수’ ‘인생은 아름다워’ 6편을 외주 제작사에 맡기고 있는 SBS도 2일 오전 백기를 들었다.
KBS SBS에 비해 MBC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듭하고 있지만, 대표로 나서 사건을 진화하는 이가 뚜렷하게 없는 점을 볼 때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다. 즉 출연료 부분은 방송사가 아닌 외주 제작사와 직접 협의하라는 것이다. MBC의 미온적 태도에 ‘한예조’는 애가 탈 수 밖에 없다. MBC의 미지급 금액은 SBS와 KBS를 합한 금액보다 10억원이 더 많아 규모면에서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MBC와 ‘한예조’의 갈등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한예조’는 지난 2008년 서울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안에 따라 출연료 인상 부분을 놓고 MBC와 협의를 벌였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당시 인기 사극이었던 ‘이산’ 출연을 거부했다. ‘이산’을 시작으로 ‘대한민국 변호사’가 시청률에 참패하면서 2008년 8월부터 두 달 동안 3억 9000여만원의 출연료가 밀리게 됐다. 이후 ‘돌아온 일지매’(2009년 2~4월, 5억5000여만원), ‘2009 외인구단’(2009년 5~6월, 5억3000여만원), ‘히어로’(2009년 11~2010년 1월, 6500여만원), ‘인연만들기’(2009년 12~2010년 1월, 2억5000여만원), ‘파스타’(2010년 2~3월, 3억3000여만원)까지 지속적으로 미납 금액이 쌓여갔다.
MBC의 인기 드라마로 각광받았던 ‘동이’도 6억9000여만원의 출연료를 해결하지 못해 3일 오후부터 출연이 중단됐다. 사극은 주연배우보다 조연이나 엑스트라 부분에서 많은 인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한예조’ 소속 배우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한예조’가 제시한 출연료 부분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해 결국 촬영에 들어갈 수 없었고, 당장 오는 6일 방송분부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이 상태로 며칠 더 지속될 경우 결방이라는 커다란 오점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문제갑 ‘한예조’ 정책위의장은 쿠키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MBC가 협상의 의지를 전혀 보이고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동이’ 쪽과 협상이 진행 중이나 외주 제작사 측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을 못 맞추는 것 같다. 당장 갚을 능력이 없는 것 같다”며 “MBC는 협의조차 안 하고 있으며, 이번 사태에 대해 꿈쩍도 안 하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MBC는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나오지도 않았고, 입장을 표명한 것도 없다”며 “MBC가 계속 나몰라라 버티고 있는데 협상의 의지나 성의 정도는 표시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파행적으로 대응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일이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한예조’는 MBC에 엄중히 대응할 것”이라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한예조’가 MBC를 향해 거친 칼을 내세울 경우 ‘동이 결방’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맞을 수밖에 없다. ‘동이’는 미리 확보해 둔 분량이 많지 않고, 현장 촬영도 빡빡하게 돌아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방송에 차질을 빚는다. 가뜩이나 SBS 경쟁드라마 ‘자이언트’와 엎치락뒤치락 선두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라 결방을 맞을 경우 MBC나 제작사로서 막심한 손해를 볼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사실 ‘한예조’가 출연 거부를 한다고 했을 때 ‘얼마나 동참하겠냐’는 질문이 가장 많이 제기됐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달랐다. ‘한예조’는 이순재, 최불암, 강호동, 배용준, 유재석, 장동건, 장서희 등 톱스타들이 대거 소속된 조합으로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2500여명 중에 90% 이상에 해당하는 2300여명이 가입돼 있다. 이는 일부 톱스타 및 신인 연기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한예조’ 소속이라는 의미다. 2일 촬영이 중단됐던 ‘글로리아’의 경우는 ‘한예조’의 촬영 거부가 선언됨에 따라 비(非)소속 배우들도 적극 동참했을 정도로 조합의 파워를 알린 사건이다.
‘한예조’는 출연료 미지급 문제가 해결되는 날까지 권리 투쟁을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갑 정책위는 “국민이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쉬면서 보는 게 드라인데 출연 거부를 함부로 선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정말 가슴 아프다”며 진작 진화에 나서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며 “출연료 미지급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대책은 2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수집했고, 어떤 문제도 대항할 자신이 있다. 충분히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MBC가 일주일 안에 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후속 조취를 취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타협에 이르기까지 투쟁하는 이유에 대해 “생계형 배우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라고 털어놨다. 문제갑 정책위는 “연평균 수입이 1000만원 미만인 배우들이 72% 정도 된다. 적은 소득은 고사하고 4대 보험조차 가입돼 있지 않다”며 “‘언젠가는 내 연기를 보일 수 있겠지’ 생각하면서 평생 대기 인생으로 사는 배우들이다. 캐스팅 제의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다른 일을 구하지도 않고 있다. 배우 인생에 뼈를 묻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이들과 우리가 배불리 먹고 살려고 이러는 게 아니다. 우리는 정직하게 흘린 땀방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생계형 배우들은 제대로 된 권리를 찾아야 한다”며 “KBS와 SBS와는 출연료 미지급 해결뿐만 아니라 공동 기구를 설립해 다시는 이런 문제가 재발하기 않도록 조취를 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허준’ ‘대장금’ ‘이산’을 만든 사극의 거장 이병훈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자 MBC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동이’. ‘한예조’의 촬영 거부로 이미 만신창이가 됐다. MBC는 과연 ‘동이 구하기’에 나설 것인지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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