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이 남자, 순수하고 해맑다. 얼굴이 상당히 작아, 반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입을 한일자 모양으로 벌리고 웃으면 천진난만한 대학생 같다. 이야기의 농도를 조절하면서 자신에게 집중시키게 만드는 매력도 상당하다. 얼굴만 미남인 줄 알았더니, 성격도 모난데 없이 수더분하다. 짓궂은 질문에도 ‘허허’ 웃음을 아끼지 않았던 ‘초매력남’ 고수(33)를 만났다.
겉으로 볼 땐 평범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비범하다.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초능력’이 그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의 정신과 행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초인’(강동원)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인물 ‘임규남’이다. 다음달 10일 개봉하는 영화 <초능력자>에서 평범한 삶을 낙으로 삼는 ‘임규남’ 역으로 돌아온 고수.
품어서는 안 될 사랑을 가슴에 새기려고 했던 비운의 남자 ‘김요한’(<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과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 로맨틱 가이 ‘차강진’(SB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에 이어 이번에는 초능력자와 대결을 펼치는 ‘임규남’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왜 <초능력자>였을까.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과연 이걸 누가 썼을까 궁금했을 정도로 작품 자체에 매력을 느꼈어요. ‘이 작품에 꼭 출연 해야겠다’ 생각이 들 만큼 제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거죠. ‘임규남’은 소박한 삶에 행복을 느끼는 긍정적 캐릭터예요. 근심, 걱정, 욕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죠. 얼핏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 알 수 없는 마력을 지닌 독특한 인물입니다.”
지난 5월18일 크랭크인해 9월8일 크랭크업하기까지 꼬박 네 달 동안 ‘임규남’에 빠져 살았던 고수. 촬영을 마친 지 한 달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헤어 나올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규남이 말투가 아직도 입가에 맴돌아요. 가끔씩 튀어나올 정도로 말투나 행동에서 아직도 벗어날 수 없네요. 규남이로부터 빠져나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긍정적 생각을 가진 친구라 영화 촬영이 끝나고 현실로 돌아오고 나니 우울해진다거나 슬퍼지진 않는 거예요.”
‘임규남’이라는 인물에 혼연일체되기 전까지 넘기 어려운 거산처럼 다가왔다.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 설정이라 캐릭터를 완전히 체득하고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단다.
“시나리오를 읽으신 분들이 저에게 ‘연기하기 참 힘들겠다’ 말을 많이 하셨어요. 그만큼 ‘임규남’이라는 캐릭터가 만만치 않았다는 거죠. 저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데 제가 상상하기 힘들었던 까다로운 면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김 감독을 자주 괴롭히게 됐고, 술잔이라도 오간 날이면 힘들다는 투정을 부리기도 했어요. 힘든 시간을 지나 촬영에 들어가니까 하면 할수록 캐릭터를 이해하게 됐고, 그제야 빠져들 수 있었죠.”
출연 제의가 왔을 때에는 초능력자 ‘초인’ 역에 강동원이 낙점돼 있었다. 상대배우로 여자가 아닌 남자가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동안 손예진(<백야행>), 한예슬(‘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이다해(‘그린로즈’), 김하늘(‘피아노’), 김희선(‘요조숙녀’) 등 국내 내로라하는 톱 여배우와 호흡을 맞춰온 고수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는 (여배우와의 호흡이 없어서) 살짝 허전하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성배우에게 배려하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없다 보니까 연기에 공을 들이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더라고요. 동성이라 고민하지 않고 편안하게 찍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고수와 더불어 미남 배우 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강동원. 두 조각 배우가 한 화면에 잡히면 그야말로 그림이 따로 없다. 여배우끼리 치열하다는 ‘외모 경쟁’이 남자배우에게는 없었을까.
“이 영화는 서로의 겉모습을 뽐내려는 작품이 아니에요. 둘 다 후줄근한 옷차림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기본이었죠. 워낙 둘 다 캐릭터가 상반돼 ‘내가 동원이보다 튀어야 하는데’ 이런 부담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자주 대화하면서 각자 맡은 캐릭터를 완성시켜나갔고, 서로 도와가면서 열심히 촬영했습니다.”
영화는 지난 2008년 군 제대 후 벌써 세 편째다. 2004년 영화 데뷔작 <썸>이후 긴 공백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지런한 행보다.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횟수가 부쩍 잦아진 이유가 궁금했다.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에도 영화 제의는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데 당시 전 어렸고, 그만큼 연기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던 때라 출연을 고사했죠. 그렇게 하나 둘 미루다 보니까 몇 년의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어느 날 저와 비슷하게 데뷔한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한층 성숙된 연기를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까 ‘나도 도전해보고 싶다’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제 안에 있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뿜어내고 보여줄 수 있는 때가 된 것 같아요.”
고수는 말 한마디에도 귀가 빨개질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배우였다. 연예계 데뷔 후
갑자기 쏟아진 대중의 관심과 시선이 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왔을 만큼 힘든 날들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오해하시는데요. 전 사람들의 시선을 즐길만한 성격은 못 되요. 데뷔하고 나서도 3~4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지금도 완전히 편해졌다고 말하진 못해요. 그래도 좋았던 점은 배우라는 특별한 인생을 살면서 나태해질 수 있었던 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볼 듯한 커다란 눈, 깎아지른 듯 매끈한 콧날, 갸름한 턱선.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외모를 지닌 고수. ‘잘생긴 배우’라는 수식어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물어봤다.
“일단 제 외모에 대해 높이 평가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고맙죠. 좋은 면만 봐주시니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은데요. ‘난 이렇게 생겼으니까’ 전제를 깔고 생각하면서 연기한 적은 없었어요. 외모에만 집중하고 신경 쓰다 보면 캐릭터를 온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잘생긴 배우’보다는 ‘인간 냄새 나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들어보고 싶어요.”
방향을 살짝 바꿔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냐고 물어봤다. “사실 지금 이 모습도 화장하고 머리하고 옷 잘 입고 꾸며서 이렇게 된 거지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웃음).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장을 하니까 멋지게 보이는 것 같아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듯한 답변에 재차 물었다. 약간 망설이다가 ‘화보 촬영했을 때’라고 말하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평소에는 제 자신이 평범하다고 느끼는데요. 화보 촬영하고 결과물이 나온 걸 봤을 땐 ‘제법 멋지네’ 생각이 들어요(웃음).”
고수가 외모만 믿고 내실을 다지지 않았던 배우였다면 지금의 자리까지 절대 올라올 수 없었을 것이다. 30대에 접어들면서 차곡차곡 쌓아온 연기 내공이 지금에서야 하나 둘 꽃을 피우게 됐고, 연기의 참맛을 온몸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면서 10년이 지났다. 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소망하는 바도 ‘연기 잘하는 배우’다.
“지난 10년 동안 불안정한 연기를 했다면, 캐릭터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군대 다녀오느라 연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없었는데요. 이제는 안정된 상황에서 성숙한 연기로 보답하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깊이 있는 연기를 통해 ‘인간미 넘치는 배우’라는 말을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은주 기자 kim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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