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스포츠] 축구스타 디디에 드로그바(32·첼시)의 기적이 코트디부아르에 재현될까. 5년 전 호소력 있는 한 마디로 조국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끝냈던 드로그바가 또 한 번 전쟁을 막을지 주목되고 있다.
최근 코트디부아르에서는 대통령 선거 이후 정부군과 반군 지도자가 각각 당선을 주장하며 대치, 내전 재개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드로그바는 과거와 달리 입을 닫고 있어 세계인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들고 있다.
“일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춰 주세요”
아프리카 서부 기니만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국가 명칭대로 과거 상아무역의 요충지였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다 1960년 독립,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독재정권과 쿠데타 등 내홍을 겪으며 오랜 혼란에 시달렸다.
혼란은 남쪽 기독교 정부세력과 북쪽 이슬람 반군세력이 내전을 일으켰던 2002년부터 극에 달했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가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거머쥐었던 2005년 10월 기적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동료들과 함께 자축하던 드로그바가 중계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단 일주일만이라도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하자 실제로 일주일 간 코트디부아르에서 총성이 멈춘 것이다. 내전은 2006년 독일월드컵이 열린 6월 한 달 간 다시 중단됐고 2007년에는 완전 종결됐다.
한 나라 두 대통령…3년 만에 깨진 평화
코트디부아르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달 28일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가 득표율 54.1%로 승리했으나 헌법위원회가 부정선거를 이유로 여당 후보 로랑 그바그보 현직 대통령의 당선을 인정했고, 양 측은 다시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
와타라는 북쪽 반군, 그바그보는 남쪽 정부군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바그보가 지난 4일 대통령 취임식을 강행하자 와타라는 5일 국제사회에 그바그보의 퇴진압력을 촉구하고 별도의 정부를 구성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두 대통령이 한 나라에 집권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와타라 지지자들의 시위가 속출했고 폭력사태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코트디부아르는 최근 내전 재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드로그바의 호소 5년 만이자 내전 종결 3년 만에 코트디부아르의 기적은 이렇게 물거품 됐다.
입 다문 드로그바, 5년 전과 다른 처지
드로그바는 전쟁 종결을 호소할 때까지만 해도 세계 축구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스타였다. 코트디부아르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일궈낸 주인공이자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첼시에 입단했던 2004~2005시즌부터 두 시즌 연속 우승트로피를 팀에 안긴 주역이었다.
다섯 시즌 넘게 첼시의 원톱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위력적인 슛을 뿜어내는 그의 앞에 상대 수비벽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모든 것을 갖춘 ‘완성형 공격수’ 바로 그 자체였다. 2009~2010시즌에는 29골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시즌 초 찾아온 부상으로 16라운드까지 진행된 프리미어리그와 본선 조별리그를 마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틀어 8득점에 머물러 있다. 그나마 아스널과의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10월3일) 이후 기록한 2득점은 모두 페널티킥으로 얻었다.
드로그바의 골러시는 최근 3달 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그의 부진은 첼시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첼시는 11월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단 1승(2무3패)을 챙기는 데 그치며 선두에서 3위로 주저앉았다. 이쯤 되니 여론도 드로그바에게 등 돌리기 시작했다.
현재 드로그바는 팬들에게 자신의 부진을 설득하는 것 이외에 입을 열기 어려운 처지다. 이런 그가 국가를 걱정할 틈은 없어 보인다. 코트디부아르의 기적을 재현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부활해야 한다. 드로그바의 침체가 유난히 깊어 보이는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