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텐진호는 21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스페인에서 싱가포르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소말리아 동쪽 1170㎞ 해상을 통과하던 오전 5시15분쯤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현지 시간으로는 밤 11시. 한진해운 설명에 따르면 한진텐진호는 해적으로부터 두 차례 총기 공격을 받았다.
총격이 가해지고 배에 흔들림이 느껴지자 선원들은 즉시 위험신호(SSAS)를 발신한 뒤 선장 지시에 따라 엔진을 정지시킨 뒤 선내 선원 대피소인 시타델(Citadel)로 몸을 숨겼다. 한진텐진호는 삼호주얼리호 납치 사건 이후 기존 시타델의 출입구와 벽을 더 튼튼하게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오전 5시45분 한진해운과 청해부대로부터 한진텐진호에 이상이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최영함(4500t급)에 즉시 관련 사항을 통보하고 가능한 한 빨리 사고 해역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 최영함은 사고 발생 지역에서 460㎞ 떨어진 오만 살랄라항 남쪽에서 우리 선박 호송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최영함은 호송 임무를 서둘러 끝낸 뒤 7시10분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이와 동시에 합참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퇴치 작전을 하고 있는 연합해군사에도 연락을 취해 한진텐진호가 정박해 있는 위치로부터 140㎞가량 떨어져 있었던 터키 군함의 협조를 구했다. 터키 군함은 8시36분 사고 해역에 도착했으며 곧바로 헬기를 띄워 한진텐진호 상황을 정찰했다. 터키 군함은 ‘한진텐진호는 멈춰 서 있었고 갑판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외부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으며 주변에 해적선 모선이나 자선도 보이지 않는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사고 해역으로 이동하던 최영함도 오후 2시30분 링스 헬기를 보내 한진텐진호를 살폈다. 터키 군함이 알려준 대로 갑판에는 해적이나 선원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며, 연돌(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고 한다. 선미 왼쪽과 오른쪽에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마네킹이 1개씩 식별됐다. 최영함은 시타델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선원들과 통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한진텐진호에는 16㎞ 이내에서 통신이 가능한 기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오후 4시40분 현장에 도착한 최영함은 헬리 선회비행과 경고 방송, 통화 시도, 경고 사격 등을 통해 선박 외부에 해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오후 6시33분 특수전요원(UDT) 16명을 2개 팀으로 나눠 승선시켰다.
합참은 요원 승선 과정과 관련해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했던 절차를 따랐다고 말했다. 지난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됐던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에 투입됐던 요원들이 이번에도 대부분 참여했다. 이미 한 차례 진압작전을 해본 이들은 능숙하게 선교에 진입해 한진텐진호의 격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선교 수색 결과 해적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AK 소총 실탄 2발이 발견됐고, 맨발 자국도 여럿 볼 수 있었다. 통신장비인 임마셋을 조작한 흔적도 있었다. 또 하나의 AK소총 실탄은 시타델 밖에서 발견됐다. 해적들이 선상에 진입해 선원 납치를 시도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시타델을 뜯으려는 시도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선원들은 해적들이 두 차례 총기 공격을 가하면서 선교까지 올라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텐진호는 일반 화물선보다 크기가 커서 해적들이 납치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체 무게만 7만5000t이고 6m짜리 컨테이너를 최대 6500개까지 실을 수 있다. 항해 때 바닷물에 잠기는 부분이 10∼12m인 점을 고려하면 바닷물에서 배까지 높이가 12∼14m다. 또 최저 운항속도가 시속 33.3㎞로 일반 화물선보다 빠르다.
한진텐진호에 승선한 해적 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합참 민군심리전차장 김운용 육군 준장은 “해적들이 승선한 것은 확실하지만 몇 명이었으며 어떤 무장을 하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타델에 대피해 있던 선원 20명을 확인한 것은 해적의 공격을 받은 지 14시간 만인 이날 오후 7시5분이었다.
김 준장은 “한진텐진호가 스스로 운항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된 오후 8시20분 작전을 마감했다”며 “연합해군사와의 협조, 아덴만 여명 작전을 통해 숙달된 청해부대의 작전능력과 자신감 등으로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재 선원들의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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