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Z talk] ‘트랜스포머3’ 평과 장르음악 평은 어쩜 그리 닮았을까!

[Ki-Z talk] ‘트랜스포머3’ 평과 장르음악 평은 어쩜 그리 닮았을까!

기사승인 2011-07-11 17:25:00

[강일권의 댓츠 베리 핫]

[쿠키 연예] 일명 ‘옵대장’이 이끄는 오토봇 군단의 세 번째 극장가 점령은 실로 가공할 만하다. 영화가 보여 준 압도적인 CG와 3D 기술, 그리고 액션 연출이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지만,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갈리는 분위기 또한 ‘트랜스포머3’가 연일 사람들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트랜스포머3’에 대한 평론가, 혹은 전문가들의 영화평(물론, 대체로 혹평이다)을 보고 있으면, 힙합과 R&B 장르에 대한 음악 평론가들의 평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된다. 비판을 하는 것 같긴 한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장르에 대한 존중이나 탐구 없이 획일화된 기준 아래 뻔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트랜스포머3’뿐만 아니라 기존 SF·판타지 장르 영화들에 대한 비평이나 기사를 보면, 매번 쉽게 볼 수 있는 지적이 ‘스토리의 부재, 혹은 허술함’ ‘재미는 있으나 그 외에 남는 것은 없음’ 등이다.

물론, 스토리 자체와 전개의 허술함, 주제 의식의 부재 등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든 장르에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시켜서 가장 큰 단점으로 부각시킨다는 게 문제다. 드라마와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가 있고, 그 외 다른 요소가 중심이 되는 영화도 있는 법이다.

오늘날 SF와 판타지 영화의 1차적인 시작점은 상상력이고 관객이 기대하는 건 그 상상력이 어떻게 구현되었느냐이다(노파심에 말하자면, 이를 해당 장르 영화에 대한 비하로 오해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좋은 스토리와 구성이 뒤따라 주면 금상첨화겠지만, 설사 그것이 부족하다 해도 장르 영화는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다른 요소들을 품고 있다. 다만, 그 다른 요소에서조차 관객을 빨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비판의 칼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칼날은 엉뚱한 곳부터 쑤시고 들어온다. 장르 영화라고 해서 스토리와 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무턱대고 스토리와 주제의 문제점 운운하기 이전에 한 번이라도 해당 장르의 특징이 잘 살아 있는가에 무게를 두고 비판한 적이 있는지 자문해보았으면 한다.

이를 힙합음악 비평으로 고스란히 옮겨와 보도록 하겠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중예술에 대한 꺼림칙한 평들이 우리나라에서만 나도는 건 아니지만, 유독 국내는 대중음악 전반을 다루는 평론가들과 힙합음악 전문 평론가(그리고 마니아) 사이의 간극이 심하다.

힙합음악 팬들이나 전문가 사이에서는 훌륭한 앨범으로 평가받은 작품이 순식간에 그저 그런 앨범이 되는가 하면, 반대로 랩과 가사 모두 너무나도 허술하여 힙합판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던 뮤지션의 앨범이 걸작으로 등극하기도 한다. 좋은 예로 한국힙합 신의 베테랑 뮤지션 중 한 명인 팔로알토의 두 번째 정규 앨범 ‘Daily Routine’에 대한 평이 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 오다가 타이거 JK가 이끄는 정글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메이저에 진출했지만, 곧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돌아와 발표한 이 앨범은 힙합 커뮤니티에서 2010년의 베스트 한국힙합 앨범 중 한 장이었다.

팔로알토의 랩핑은 이미 오래전부터 안정적이고 탄탄하기로 유명했고, 앨범은 시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느끼는 고민과 포부, 더불어 그가 바라보는 한국힙합 신에 대한 관점을 ‘24시간’이라는 구성 아래 매우 효과적으로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더구나 뜬구름 잡는 자기 과시 가사가 난무하던 시기에 랩의 미학적 멋뿐만 아니라 드물게 확실한 메시지까지 담고 있어 더 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힙합 커뮤니티 밖의 평론가들이 이 앨범에 내린 평가는 냉혹했다(네이버 ‘오늘의 뮤직’ 선정위원단의 평을 참고하시라).

문제는 비판이라는 그 몇 마디가 모두 굉장히 모호하고 무책임한 말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이 앨범이 음악적으로(랩과 힙합 비트) 떨어지는 작품인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한 마디도 들어 있지 않다. 내가 그동안 느낀 한국힙합 음악을 바라보는 많은 평론가들의 시선을 토대로 팔로알토의 앨범이 저평가 받은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겉으로 봤을 때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만 담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평론가들은 랩·힙합 음악 속에 사회 비판이나 저항 의식이 조금이라도 담기면 굉장히 호의적으로 반응한다. 랩에서 사회 비판과 저항은 하나의 중요한 소재이지 전부가 아니다. 아무리 제대로 된 내용이 담겼다 해도 랩의 기술적 미학(라임과 플로우 등등)이 떨어지면,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랩의 특성과 기술은 뒷전이고 우선 ‘랩에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로 판단의 잣대를 삼는 경향이 짙다. 장르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행한 비평은 이렇듯 해당 장르 팬과의 사이에 심한 간극을 초래하고, 대중에게 왜곡된 가이드를 제시하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대중음악의 최대 강국인 미국은 장르 신만큼이나 평단도 어느 정도 세분화되어 있다. 해당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매체는 물론이고 평론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평이 많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르 전문 매체와 대중음악 전체를 다루는 매체 사이의 틈이 대체로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각 매체의 성향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은 있지만, 이른바 별점으로 대표되는 평가는 대개 엇비슷하다.

다만, 그 내용의 디테일함에서 일반 매체와 장르 매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여러 매체와 평론가들의 해당 장르에 대한 존중과 최소한의 탐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 대중예술계에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다.

강일권 흑인음악 미디어 리드머 편집장(www.rhythmer.net)

*외부 필자의 기고는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Ki-Z는 쿠키뉴스에서 한 주간 연예/문화 이슈를 정리하는 주말 웹진으로 Kuki-Zoom의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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