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너무하잖아”…터미널 진상녀에 여론 십자포화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너무하잖아”…터미널 진상녀에 여론 십자포화

기사승인 2011-09-30 09:43:00


[쿠키 사회] 지난 23일 오후 8시쯤 경기도 안산시외버스터미널 승강장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한 여성이 택시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시외버스에 올라타려 하자 택시기사가 쫓아와 버스 입구를 막고 요금 지불을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과 스무살 이상 많아 보이는 중년의 남성 택시기사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이 모습은 한 행인의 휴대전화 카메라에 포착됐고 두 시간 뒤 ‘터미널 진상녀’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터미널 진상녀 동영상 보기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 너무하잖아”…네티즌 십자포화

유명 포털 사이트에 ‘터미널 진상녀’ 동영상을 처음 공개한 네티즌은 “택시기사가 여성의 목적지로 떠나는 마지막 시외버스를 놓쳤다는 이유로 요금을 받지 못했다. 여성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마지막 버스에 탑승하려 하자 택시기사가 버스 입구를 막고 여성과 승강이를 벌였다”고 설명했다.

또 “이 여성은 요금 지불은커녕 오히려 ‘내가 이 막차까지 놓치면 책임질 것이냐. 다른 지역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간 뒤 남자친구를 불러 당초의 목적지로 가겠다. (남자친구의) 기름값을 내놓으라’고 택시기사에게 화냈다”며 “결국 여성이 택시기사에게 1만원을 지불하고 상황을 무마했으나 버스 승객 20여명은 20분이나 지연 출발하는 불편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네티즌 대부분은 “젊은 여성이 아버지 나이쯤 돼 보이는 택시기사에게 너무한 것 아니냐”며 힐난했다. 이 여성이 버스 승객들에게 출발을 지연시킨 불편을 끼치고도 당당히 버스에 올라탔다는 점도 비난 여론을 들끓게 했다.

동영상은 30일 오전 9시 현재 22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소셜 네트워크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이 여성에 대한 ‘인터넷 신상털기’까지 시도하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반박도 나왔다. 또 다른 목격자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한 네티즌은 “여성이 택시에 탑승하면서 ‘시외버스 막차 시간까지 도착할 수 있는가’를 물었지만 택시기사는 대답 없이 출발했고 결국 막차를 놓쳤다”고 주장했다.

택시기사가 막차 탑승 가능 여부를 미리 예상해주거나 ‘모르겠다’는 입장만 분명히 밝혔어도 여성은 택시를 이용하지 않았고 말다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네티즌은 “시외버스 지연 시간도 20분이 아닌 5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다수의 네티즌들은 “택시 이용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요금을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며 여성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다.

목격자들에게 확인해본 진실

당시 여성이 탑승했던 시외버스 운전기사 등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확인한 결과 동영상 촬영자와 이를 반박한 네티즌의 두 주장은 모두 사실에 가까웠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여성은 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구행 막차를 타기 위해 택시를 이용했다. 택시기사는 ‘어느 정도 도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에 여성을 태우고 출발했으나 금요일 밤 꽉 막힌 도로 탓에 목표한 시간까지 터미널에 도착할 수 없었다. 이에 여성은 요금 지급을 거부했고 목적지를 바꿔 동대전행 시외버스에 올라타려 했다. 남자친구의 차량으로 대전에서 대구까지 이동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택시기사는 버스 입구를 가로막고 여성에게 요금을 요구했다. 동대전행 버스도 막차였던 탓에 다급해진 여성은 목소리를 높였다. 승강이를 벌이던 두 사람 사이에서는 “경찰서에서 시비를 가려보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를 보다 못한 한 남성이 “택시 요금을 안 낸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며 택시기사의 편을 들자 여성은 “택시기사로부터 미안하다는 말만 들었어도 요금을 지불할 생각이었다”며 1만원을 꺼냈다. 요금은 1만5000원이었지만 택시기사도 더 이상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 않은 듯 1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갔다.

당시 여성이 탑승한 K업체 소속 시외버스 운전기사 Y씨는 “버스 지연시간은 20분이 아닌 5분이었다. 다른 버스 승객들이 출발 지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어린 이 여성이 공개 장소에서 연장자에게 언성을 높여 논란의 여지를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과장된 정보 탓에 더 큰 비난 여론에 시달린 셈이다.

두 사람의 요금 시비는 결국 중간 가격 선에서 합의됐지만 이와 유사한 경우 승객은 요금을 정상적으로 지불해야한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과 개인택시운송약관 등에는 승객이 요금을 완불해야 할 의무, 택시기사가 부당한 요금을 청구하지 않아야 할 의무가 각각 명시돼 있다.

안산시 관계자는 “이번 사례에서 ‘시외버스 막차를 놓치면 요금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등의 사전 구두 계약이 없었고, 택시기사가 고의적으로 속도를 늦추거나 길을 돌아가지 않았다면 여성은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모두 지불해야 했다”며 “대중교통 요금 시비의 경우 변수가 많아 정확하게 가릴 수 없으며, 해결할 방법은 소송뿐”라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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