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두에도 사마귀가 생긴다고요? 후두유두종 주의보

후두에도 사마귀가 생긴다고요? 후두유두종 주의보

기사승인 2011-10-12 17:30:01
[쿠키 생활] 아이의 어머니는 결국 밤잠을 설친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시간만 10시간 가까이 되는 긴 여정이지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잠시도 휴식을 취할 여유가 없었다.

처음 밟아보는 낯선 한국 땅인데 누가 공항에 마중을 나올지, 아이의 치료는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에 걱정을 거듭하느라 좀처럼 굳은 얼굴을 펴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옆자리에서 곤히 잠든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아이에게나 본인에게나 이번이 첫 해외여행이다. 하지만 관광이 아닌 치료를 위해 먼 타국을 찾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어린 아이는 질병으로 인해 말까지 잃었지만 힘겨운 싸움을 견뎌내고 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이에게 목소리를 선물하고 싶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걱정은 인천국제공항에 내리자 눈 녹듯 사라졌다. 게이트를 나오는 순간, 먼저 나와 대기하고 있던 같은 증세의 또 다른 아이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마중 나온 병원직원의 친절하고 환한 웃음을 보고 믿음을 갖게 된 것이다.

12일 머나먼 타국 러시아에서 벽안의 두 아이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루슬란(10)과 알리나(6)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한국의료 나눔의 달 행사를 통한 무료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의료 나눔의 달 이벤트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메디컬코리아 행사의 일환으로 개발도상국 환자들을 위한 무료 시술활동이다. 이달에는 10개의 병원이 참여해 다양한 질환을 가진 7개국 25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인술을 펼친다. 특히 참여 병원 중 1차병원은 예송이비인후과가 유일하다.

루슬란과 알리나를 괴롭히는 질병은 바로 후두유두종이다. 그렇다면 후두유두종은 어떤 질병이기에 두 아이가 말까지 잃은 채 고통을 받아야 했던 것일까?

◇쉰 목소리 유발 뿐 아니라 호흡곤란 및 질식 우려=후두유두종이란 쉽게 말해 후두에 사마귀가 난 것을 말한다. 목 한가운데 위치한 후두는 호흡과 발성을 담당하고 이물질이 폐로 들어가는 것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곳에 양성종양인 유두종이 발생하면 후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심한 쉰 목소리(애성)나 호흡곤란은 물론 심할 경우 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한국을 찾은 루슬란은 지난 3월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후두유두종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된다. 소아에서 발생하는 소아형, 그리고 성인에서 발생하는 성인형이다. 소아형은 주로 다발성으로 발생하며 재발 빈도가 높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성인형은 단발성으로 나타나며 재발은 비교적 적지만 드물게 악성으로 증세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소아형처럼 종양이 다발성이고 넓게 분포되어 있으면 호흡곤란증세가 오기 쉽다. 따라서 소아에서 심한 애성과 함께 호흡곤란이 있으면 일단 후두유두종을 의심해야 한다. 반면 성인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경우는 드물다. 소아 환자 중에서는 특히 1∼5세 사이의 남자아이가 많은데 계속 방치할 경우 진행성 쉰 목소리가 나타나다 점차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청색증(혈액 내 환원 헤모글로빈 증가나 헤모글로빈 자체의 구조적 장애로 인해 피부나 점막에 푸른색이 나는 질환)과 질식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외과적 적출 필요…PDL 및 후두미세수술 효과 좋아=후두유두종의 원인은 인유두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다. 특히 많은 형태의 HPV중에서 제6형과 11형이 후두유두종을 유발하는 주된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흔치 않지만 소아에서는 태어날 때 모체의 산도를 통한 직접감염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다.

후두유두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외과적인 적출이 필요하다. 유두종의 크기나 상태에 따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데 일반적으로 후두미세수술이나 PDL(pulsed dye laser)수술을 시행한다.

먼저 PDL수술은 가늘고 구부러지는 후두전자내시경을 코를 통해 넣은 뒤 전자 내시경 채널에 가느다란 광섬유형 케이블을 넣어 레이저를 조사해 수술하는 방법이다.

PDL성대수술은 전신마취나 복잡한 수술을 거치지 않고도 부분마취만으로 후두에 생긴 유두종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어 노약자나 만성 질환자도 부담 없이 받을 수 있다.

부분마취를 이용해 시술이 20분 내외로 간단하고 출혈도 없을 뿐 아니라 회복기간도 빠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시행됐으며 아시아에서는 예송이비인후과 음성센터가 최초로 실시했다. 그러나 이 수술방법은 소아에서는 부분마취로 시행하기가 어렵다.

한편 후두미세수술은 환자를 전신 마취한 뒤 환자의 입을 통해 후두경을 삽입하고 현미경으로 약 10∼20배로 확대해 보면서 정교한 기구나 레이저로 유두종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수술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대부분 수술한 당일 퇴원이 가능하지만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방법이기 때문에 숙련된 전문의에게 시술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PDL이나 후두미세수술의 단독적인 처치 보다는 두 시술 방법을 동시에 적용, 상호 보완하며 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잦은 재발, 그래도 치료 포기하면 안돼=후두유두종의 가장 큰 문제는 재발이 잦다는 점이다. 외과적인 처치를 통해 유두종을 제거했더라도 재발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수술 후 매월 1년 간 정기적인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알리나와 루슬란도 이미 러시아에서 각각 2번과 3번의 수술을 받은 경력이 있다.

이처럼 재발이 잦기 때문에 간혹 치료를 포기하거나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계속 재발하더라도 치료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긴 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할 경우 완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천모 씨의 사례가 좋은 경우다.

지난 2002년 천모씨는 한 대학병원에서 후두유두종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계속 재발해 5번을 더 수술 받아야 했다. 하지만 후두유두종의 재발은 멈추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심장에 문제가 발견돼 더 이상 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다. 심장질환으로 인해 전신마취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천모씨는 치료를 포기했다. 그러는 동안 유두종은 점점 심해져 호흡곤란 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도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 천모씨는 예송이비인후과를 알게 됐고 이곳에서 국소마취로 수술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다행히 여러 차례의 수술 끝에 심각한 유두종을 치료했고, 잦은 수술에 따른 성대유착으로 생긴 나쁜 목소리까지 좋아지는 성공적인 결과를 이뤄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완치의 꿈을 이룬 천모 씨는 꿈에도 그리던 평범한 목소리를 갖게 됐고 사회생활뿐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자신감을 찾았다.

예송이비인후과 김형태 원장은 “후두유두종은 꾸준하고 체계적인 수술로 완치될 수 있기 때문에 잦은 재발에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특히 소아형의 경우 성인형보다 완치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아이가 후두유두종 증세가 보이면 바로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이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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