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년 1월 19일 개봉하는 정지영 감독의 영화 ‘부러진 화살’은 5년 전 벌어진 석궁테러 사건을 통해 사법부의 문제점을 통렬하고도 유쾌하게 꼬집는다.
‘부러진 화살’은 동명의 르포소설을 바탕으로 대학 입시시험에 출제된 수학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부당 해고당한 김경호 교수(안성기)의 이야기를 담는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는 담당판사를 찾아가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석궁으로 위협한다. 복부 2cm의 자상과 부러진 화살을 수거했다는 증언이 나오며 사법부는 김경호의 행위를 테러로 규정해 엄중 처벌한다. 하지만 김 교수는 활을 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변호사 박준(박원상)과 치열한 법정 싸움을 이어간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지만,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의 내공은 무거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순식간에 흡입시켜 버렸다.
그동안 ‘남부군’ ‘하얀 전쟁’ 등 영화 속에 통렬한 사회 메시지를 담아왔던 정 감독은 13년 만에 들고 온 작품에서도 이 같은 날카로운 시선을 내려놓지 않았다.
27일 오후 서울 경복궁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흥행을 거두는 문제작을 만드는 것에 대해 “내가 그런 쪽을 좋아하는 것 같다”면서도 “왜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덜 쓰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부러진 화살’은 올 9월에 개봉해 한국 사회를 뒤흔든 영화 ‘도가니’와 일면 닮아있다. 11년 전 청각장애학교인 광주 인화학교에서 실제 벌어진 아동 성폭행 사건을 그려낸 ‘도가니’는 국민을 분노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일명 ‘도가니 법’이라고 불리는 성폭력 범죄 처벌 특례안이 발효되기도 했으며, 인화학교는 폐교조치가 진행 중이다.
사법부를 통렬하게 꼬집는다는 점에서 ‘가진 자들의 부패’를 드러내며 비판한 ‘도가니’와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 둘을 비교하기도 하고, 혹자는 ‘도가니’가 ‘부러진 화살’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정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영화 촬영이 다 끝나고 ‘도가니’가 개봉했어요. 어느 트위터에서 보니까 정지영 감독이 영화 제작을 못 하다가 ‘도가니’가 히트하는 것을 보고 돈을 구해 만든 영화라는 말이 있더라. 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난 뒤 ‘도가니’가 개봉한 거예요. 사실 도가니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면이 있어요.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그렇지 않아요. 적절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고 진지하면서도 가볍다. 그런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해요.”
실제 영화는 관객들에게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런 웃음 코드는 의도한 것이 아닌 원래 캐릭터의 성격일 뿐이다.
“영화 속 대사를 (일부러 꾸몄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한테는 책으로 나온 ‘부러진 화살’을 사보라고 추천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가 훨씬 사실적으로 느껴질 겁니다. 심지어 안성기 씨가 판사를 향해 ‘재판하기 싫죠?’ ‘이게 재판이야 개판이야’라는 말까지 모두 사실입니다”
제작비 5억 원의 저예산 영화임에도 안성기, 문성근, 김지호 등 주연 배우들의 면면은 매우 화려하다. 적은 돈으로도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캐스팅 할 수 있던 비결을 털어놨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안성기 씨를 캐스팅 할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시나리오를 보더니 ‘이 역을 할 사람은 안성기 씨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한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에 안성기 씨를 찾아갔습니다. 이미 전작을 두 편이나 함께한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안성기 씨를 만나 차비밖에 못 준다고 말했고 ‘이 작품을 안성기 씨와 함께하면 전작들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안성기 씨가 시나리오를 보고 다음날 바로 함께 하자고 하더군요. 안성기 씨가 캐스팅되는 바람에 다른 캐스팅은 훨씬 수월했습니다.”
판사 역으로 등장하는 문성근도 이 작품과 연이 깊다. 정 감독은 우연한 기회에 문성근이 추천해준 ‘부러진 화살’ 책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막연히 문성근을 주연감으로도 생각했다.
“문성근 씨는 자기가 추천한 작품이기에 돈을 많이 못 줘도 기꺼이 함께 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때는 정치하느라 너무 바빠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원래 문성근 씨가 주연이었는데 안성기 씨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웃음).”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의 권력 남용과 비상식을 향해 쓴소리를 가한다. 정 감독은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사법부 관계자들을 따로 시사회에 초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보면 아플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주변에서 이 작품을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괜찮겠어?’라는 말을 많이 듣기도 했단다. 정 감독은 이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우리 현 사회를 대변해 주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우리는 이런 영화를 만들 때 ‘두렵지 않은가’ 혹은 ‘무사히 개봉할 수 있나’라는 질문을 받아야 하나. 냉정하게 볼 때 우리는 아직 덜 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헌법이 우리의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는데도 왜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지 이상하다.”
그는 이 영화를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와주길 희망했다. 그들이 이 영화를 보고 주눅이 들지 말고 어깨를 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스펙 쌓기, 취업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우리 선배들이 그런 사회를 만든 것인데 활기를 찾고 기지개를 켰으면 좋겠다. 몇 년간 학교에서 강의 하며 느낀 것은 학생들이 활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힘을 얻길 바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