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역시 김명민이었다. 어느 작품 어느 역을 맡든 그 배역을 200% 소화해내는 배우. 이번에는 영화 ‘페이스메이커’를 만나 달리고 또 달렸다. 그가 맡은 주만호는 30km까지는 누구보다 잘 달리지만 그 이상 달리지 못하는 페이스메이커다.
페이스메이커는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경주나 자전거경기 따위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로 영화는 평생 다른 선수의 페이스 조절을 위해 뛰어온 마라토너가 생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한 42.195km ‘꿈의 완주’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내사랑 내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로 분한 그는 당시 20kg을 감량하는 죽음의 다이어트를 해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라톤 연습에 열중하다 보니 무려 7kg이나 체중이 줄었고 어수룩한 캐릭터를 표현해내기 위해 인공치아를 끼고 촬영에 임했다. 영화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김명민을 만났다. 하루 종일 영화 홍보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해왔기에 지칠 법도 했지만 “처음 하는 인터뷰처럼, 처음 하는 말처럼 하겠다”며 “첫 인터뷰라 설렌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인터뷰를 오랜 시간 하다 보면 비슷한 질문에 같은 대답을 수차례 반복하기 일쑤. 배우와 기자 모두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명민은 ‘진짜’ 첫 인터뷰인 것처럼 질문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 답했고 적절한 유머를 섞어가며 인간미를 보였다.
“페이스메이커, 하늘이 점지해 준 작품”
매번 팔색조 같은 연기변신을 하는 ‘배우’라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우 김명민. 그의 작품 선택 기준은 무엇일까.
“이건 ‘내가 해야 하는 거다’라는 느낌이 드는 게 있습니다. 마치 하늘이 점지해준 작품 같은 거죠. ‘페이스메이커’ 대본의 첫 장을 넘길 때 설렘은 대단했습니다. 마치 소개팅에 나온 여성과 첫눈에 반한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대본을 읽으며 머릿속에 만호의 모습이 그려졌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정도 되면 누가 뭐라고 해도 가는 겁니다. 제가 꼭 해야 하는 거죠.”
마라토너 주만호 역. 고생길이 눈에 훤히 보이는 역할인데 그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까 그 소개팅 여성과 비유하자면, 두 번째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현실적인 게 보입니다. ‘뛰어. 또 뛰어. 무지하게 뛰네. 연기하기 힘들겠네’라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첫눈에 반했는데 가족이 반대하든 조건이 안 맞든 그땐 이미 늦은 겁니다. 무조건 해야죠. 수많은 시나리오 중 내게 왔고, 내 마음을 흔들어놨으니까요. 아마도 전생에 저와 인연이 있었던 작품 같습니다.”
김명민은 인공치아를 끼고 등장해 극중 인물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 대본을 읽는 순간 말의 형상이 떠올랐고 그것을 본떠 인공치아를 끼기로 결심했다. 부정확한 발음과 돌출된 모습에 ‘멋있어 보이는 것’은 자연스레 포기해야했다.
“발음이 부정확해져 어려움이 컸지만 연습해서 안 되는 것은 없더군요. 감독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습니다. 노메이크업에 치아까지, 너무 주만호라는 캐릭터를 망가트리는 것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시나리오에서 보이는 주만호는 밋밋한 캐릭터였기에 인공치아가 꼭 필요했고 이미 이 작품에 빠져들었으니 일류 요리사가 된 기분으로 캐릭터를 요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망가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죠.”
과감히 외모를 포기하는 것은 배우이기 이전에 연예인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실제 영화를 보고 난 직후 “화면에 너무 못생기게 나와 속상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인공치아를 낀 내내 치아가 눌리고 시린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발음연습에 매진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가 스스로 ‘고통’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연기하면서 매번 다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그 인물이 되자는 것입니다. ‘페이스메이커’에서는 주만호란 인물이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저는 그 사람의 인생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제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정말 미안한 것이니 더욱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아들은 절대 배우 안 시켜. 왜?”
그는 연기가 자신의 인생이자 삶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아들에게는 죽어도 연기를 시키고 싶지 않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 아들에게 아빠가 걸어온 길을 또 걷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혼자 내버려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도와주는 이 없이 카메라 앞에서 혼자 해내야 하니까요. 그런 고행 길을 아들에게 가게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들이 정말 배우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때도 말릴 셈일까. 그는 “일단은 무조건 반대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배우의 길을 타고났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반대할 겁니다. 집에서 밀어주면 의지가 약해지니까요. 재능이 있을수록 더욱 강하게 키워야죠. 그렇게 되면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쓰러지지 않을 테니까요.”
연기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독하고 강인하지만 집에서는 어떤 아빠일지 궁금했다. 그는 혼낼 때는 엄청 무섭지만 놀아줄 때는 확실히 놀아주는 중간이 없는 아빠라고 스스로를 설명했다.
“잘못했을 때는 ‘아빠’라는 말만 들어도 떨 정도로 무섭게 혼냅니다. 하지만 놀 때는 아들에게 맞으며 놉니다. 아빠와 아들 사이의 부정이 흐른다는 것이죠. 칭찬할 때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칭찬합니다. 평소에는 엄마를 자주 찾고 따르지만 진짜 힘들 때는 절 찾습니다. 영양가는 제가 있는 거죠(웃음). 한번은 아들이 무언가에 찔려 눈에서 피가나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에 가는 내내 저를 찾았다더군요. 촬영 때문에 함께 있지 못했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실제 만나본 김명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고 자상했다. 까칠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하지만 그는 일부러 그런 이미지를 깨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 않아 좋고, 일부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배우이기에 자신의 실제 성격을 감추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그의 변신이 기대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islandcity@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