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행복’과 ‘우울’이 공존하는 배우 이나영에 주목하라

[쿠키人터뷰] ‘행복’과 ‘우울’이 공존하는 배우 이나영에 주목하라

기사승인 2012-02-14 10:28:00

[인터뷰] 배우 이나영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상당히 독특하다. ‘네 멋대로 해라’(2002)의 전경은 팩소주를 마시며 터벅터벅 한강 다리를 건넜고 ‘아는 여자’(2004)의 이연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순수한 스토커였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속 문유정은 세 번의 자살 시도에 실패한 후 고모의 손을 따라 교도소에서 교도수를 만났다. 심지어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2009)의 지현은 커트 머리에 콧수염을 붙인 트랜스젠더였다.

이나영은 다양한 작품들을 거치면서, 무미건조한 말투와 어딘지 모르게 주춤거리는 행동들, 조용하지만 내면에 쌓여있는 반항기 어린 모습들을 선보이며 이나영 표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열혈 여형사로 자신의 캐릭터 영역에 또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추가했다.

오는 16일 개봉하는 영화 ‘하울링’에서 이나영은 바이크 신은 물론 액션 신까지 모두 소화하는 등 기존에 보여줬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를 만들었다.

하얀 눈이 뒤덮은 지난 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나영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수가 적어 인터뷰하기 힘든 배우라는 선입견을 뒤집었다. 인형 같은 외모에 한번 놀랐고 털털한 성격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모습은 색다른 놀라움을 줬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저는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특히 주제를 가지고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죠. 단점이 있다면 간단하게 말을 못해서 방송에서는 많이 편집되기도 하고요(웃음). 어떻게 답해야 하나 고민하는 모습들이 많이 나오다 보니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오해하는 것 같아요.”



“기존의 형사 캐릭터 버렸죠…형용사가 없는 인물이에요”

‘하울링’은 승진에 목말라 사건에 집착하는 형사 상길(송강호)과 사건 뒤 숨겨진 비밀을 밝히려는 신참 형사 은영(이나영)이 늑대개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하며 벌이는 범죄 수사 드라마다.

대부분 형사가 등장하는 영화에서는 주로 남성이 드라마를 이끌고, 여성은 보조하는 역할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하울링’은 이나영이 주축이 돼 사건을 파헤친다. 송강호는 그녀의 뒤를 돕는 조력자 정도다.

여형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야상에 짧은 머리. 욕설이 담긴 거친 말투 등이다. 하지만 ‘하울링’ 속 이나영에게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는 남자들 사이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고 억센 캐릭터를 가진 여형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은 여형사의 모습을 만들고자 했죠. 이미지 면에서도 튀지 않고 얌전히 묻어가도록 설정했어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형용사가 없는 캐릭터에요. ‘열정적이에요’ ‘애교가 있어요’ ‘터프해요’ 등 어떠한 말로도 은영을 수식할 수 없죠. 마음속에 열망과 강인함은 가득 차 있지만 힘껏 눌러서 겉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 인물이에요.”

겉으로 드러내는 연기가 아닌 억눌러 표현하는 연기는 곱절 힘들다. 특히 기존에 이나영이 ‘잘’ 하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상황이었기에 이 같은 내외적인 표현 수위 조절은 더욱 어려웠다. 그 때문이었을까. 촬영하는 매 순간이 싸움의 연속이었다고 고충을 토로할 정도다. 물론 이 과정이 끝난 후 이나영의 연기 스펙트럼은 한층 더 넓어졌다.

“슬프면 눈물로 표현하면 되고 화나면 소리치면 되는데 은영은 그런 캐릭터가 아니었어요. 촬영하는 내내 답답했고 모든 감정을 다 채워 눌러 담은 뒤 담백하게 표현해야 하는 것이 쉽지 않았죠. 물론 그런 것이 내공일 수도 있겠죠. 매 순간 저 자신과 싸움의 연속이었고 선배님들과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늑대개 무섭지 않았어요, 귀엽던걸요”

송강호와 이나영 외에 또 다른 주인공은 늑대개 시라소니다. 늑대와 개의 혼혈인 늑대개. 매서운 눈과 날카로운 이빨로 보기만 해도 섬뜩하다. 하지만 이나영은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 오히려 귀여웠다고.

“늑대개와 함께 촬영할 시간이 많았어요. 둘이 갇혀있는 신도 있었는데 늑대개가 눈은 무섭게 생겨도 상당히 온순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도 서로 촬영 파트너라는 것을 알아봤는지 절 잘 따라줬고요. 덕분에 함께 촬영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죠.”

하지만 동물과의 촬영은 역시 쉽지 않았다. 늑대개가 만족할 만한 모습(연기)을 보여줄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땀구멍이 없는 늑대개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늑대개의 장면부터 잡아야 하니까 배우와 스태프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어요. 새벽 2~3시까지 기다리다가 오케이 컷이 나면 그때 투입돼 저희 분량을 찍어야 했죠. 정말이지 기다림의 연속이었어요. 또 개는 땀구멍이 없으니까 더우면 혀가 나오고 헉헉 거립니다. 무서워 보여야 하는 늑대개가 카메라에서 헤헤 거리고 있으니 정말 귀여워 보이더군요. 때문에 세트장에서도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놨고 저희는 두꺼운 옷을 입고도 덜덜 떨어야 했어요.”



“긍정과 부정, 행복과 우울을 동시에 갖춘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9등신을 넘어 10등신에 가까운 작은 얼굴과 큰 키. 모두들 부러워할 만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그는 “원래 화장하면 누구나 예뻐요”라며 겸손해했다. 그만의 미모 유지 비결은 뻔한 말일 수도 있지만 ‘마음’에 있었다.

“갈수록 삶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마음이 아름다운 외모를 만든다’라는 느끼한 말은 결코 아닙니다(웃음). 하지만 생각과 사고방식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무시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관리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배우라서 그런지 ‘긍정과 부정’을 늘 같이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행복과 우울’을 동시에 가진 것 처럼요. 개인적으로 긍정적으로 살자는 말은 상당히 부담스러워요. 그렇다고 감히 ‘부정적으로 사세요. 나빠지세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긍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무감과 한계가 있는 것 같아 그 단어를 잘 안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는 내면에 가진 여러 모습을 끄집어내 이나영 만의 색으로 대중에게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하울링’을 촬영하며 군대식 말투인 ‘다나까’를 많이 썼다며 이제는 여성스러워져야겠다고 웃어 보이기도 했다. 애교가 없어 무뚝뚝할 것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애교 넘치는 역을 맡는다면 충분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낼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최근에 가장 해보고 싶은 역은 영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루니 마라 역이란다. 루니 마라는 영화에서 피어싱에 용 문신을 한 천재 해커 리스베트로 등장해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펼친다.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정말 재밌게 봤어요. 영화 보는 내내 ‘루니 마라 역을 내가 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했죠. 심지어 저희 집에 루니 마라가 입었던 스타일의 옷들이 가득하고요 예전에 독일에서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루니 마라처럼 눈썹을 염색하고 찍었거든요. ‘저 모습 그대로 하고 바로 튀어나올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화 보는 내내 루니 마라가 그렇게 부러웠어요.(웃음).”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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