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연예] “욕망을 주셨으면 재능도 주셔야지….”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시기 질투한 작곡가 살리에리의 명대사다. 이 영화는 신동 모차르트와 2인자 살리에리의 애증을 그린 작품으로, 살리에리는 평생 모차르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다 결국 그를 독살하고 만다는 내용을 그렸다. 물론 실제 인물을 배경으로 한 픽션이다.
이후 살리에리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이를 질투하는 인간의 표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2인자 심리상태를 이르는 용어로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말이 탄생됐고 지금까지도 광범위하게 쓰인다. 끝내 1인자가 되지 못한 상처와 비애를 가진 인물을 말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엇갈린 운명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는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동시대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천재를 만남으로써 불가항력의 운명과 마주 하게 되고, 갈등하고 고뇌한다. 드라마 속 2인자는 언제나 1인자를 시기 질투하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심지어 악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단순한 악역이 아닌 나름대로의 이유와 상황 설정을 부여함으로서 극의 개연성을 높이고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MBC 주말드라마 ‘신들의 만찬’은 궁중요리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의 연출을 맡은 이동윤 PD는 “전반적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이야기가 깔려 있다”라며 “기본적으로 재능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에 대한 대결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신들의 만찬’은 한국 최고의 한식당 아리랑을 배경으로, 한번 먹으면 그대로 맛을 낼 줄 아는 타고난 미각의 소유자 준영과 천재적인 재능은 없지만 체계적인 교육과 이기고 싶은 욕망으로 거칠 것이 없는 인주가 요리를 두고 경쟁하며 운명에 도전하는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준영(성유리)는 극중 절대 미각과 남다른 재주를 지닌 천재 요리사다. 배운 것은 없지만 한번 맛을 보면 그대로 음식을 뚝딱 만들어내는 요리 신동이다. 반면 인주(서현진)는 요리에 대한 애착과 욕심이 남다르지만 준영을 마주한 후 2인자가 될까 전전긍긍하며 계략을 서슴지 않는다. 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준영과 최고의 자리를 쥐려 안간힘을 쓰는 인주. 가진 자의 여유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만족도는 더 가지려 하는 자가 더 낮다.
KBS 월화드라마 ‘드림하이2’의 리안(지연)은 이러한 살리에리 증후군의 가장 극명하게 드려내고 있는 인물이다. 아이돌 허쉬의 멤버인 리안은 춤과 랩을 담당하면서 연기를 병행하고 있지만, 사실상 노래도 연기도 어느 것 하나 변변치 않아 늘 열등감을 안고 산다. 화려해보이지만 날카롭고, 많은 것을 지닌 것 같지만 ‘발연기’라는 혹평에 무너지기도 한다.
해성(강소라)에게 따귀를 때리고 때때로 독설도 마다않는 악녀로 그려지지만, 알고 보면 끝없는 열등감에 시달리는 캐릭터다. 자신보다 잘난 이들에게 대한 질투 그리고 인기에 대한 민감함, 그 이면에서 비집고 나오는 외로움은 참을 수 없이 혹독하다. 알고 보면 리안은 사실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이다. 늘 화려해보이지만, 부족한 재능을 지녔음에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운명을 안고 산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윤보경(김민서)는 중전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자신이 2인자라는 사실에 견딜 수 없이 괴로워한다. 바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열등감 때문이다. 그는 세자빈이 돼 훤(김수현)의 곁에 있고 싶다는 바람은 이뤘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 연우(한가인)에게 빼앗긴 왕의 마음은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이에게 빼앗기는 이의 분노는 드라마에서 흔한 만날 수 있다. SBS 일일드라마 ‘내 딸 꽃님이’도 마찬가지다.
극중 윤혜진(정주은)는 오랫동안 구재호(박상원)의 곁을 지키며 결혼을 꿈꿨으나 재호의 마음이 30년 전 첫사랑 장순애(조민수)에게만 향하자 평정을 잃고 분노하며 악행을 계획한다. 아버지의 재력을 이용해 재호 회사의 자금줄을 쥐고 흔들며 “순애와 헤어지지 않으면 멈추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결국에는 재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그 사람이 가진 걸 모두 빼앗고 껍데기만 안고 살게 만드는 게 사랑일까요?”라고 물었던 순애의 말을 떠올리며 여행을 떠난다.
이러한 살리에리 증후군을 지닌 캐릭터는 드라마의 극적인 요소와 재미를 위해 극단적인 성향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살리에리 캐릭터는 천재적인 주인공보다 더 현실성 있는 인물이다. 위기가 닥쳐도 뜻밖의 은인이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주고, 느닷없이 불가능한 일이 기적처럼 일어나는 일은 어쩌면 판타지에 가깝다. 시청자들은 오히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살리에리 캐릭터를 응원하고 지지를 보내기도 한다. ‘해품달’은 김민서의 뛰어난 연기력으로 한가인을 능가하는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신들의 만찬’은 노력파 인주(서현진)에 공감하며 “인주가 너무 안쓰럽다. 너무 불쌍하게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끝내 1인자가 되지 못한 2인자, 살리에리. 그의 애증과 모략에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늘 승리자가 되길 꿈꾸는 우리네 삶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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