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예 강태경은 남부럽지 않은 176cm 키의 소유자. 그러나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것. 다음 생에는 165cm의 아담한 키로 태어나는 것이 소망이라면 소망이다. “작은 체구의 분들이 너무 부럽고, 나도 힐을 맘껏 신어보고 싶다”며 조잘거리는 모습은 마치 몇 번쯤 마주했던 사이인 것만 같은 편안하고 익숙함을 느끼게 한다.
최근 KBS 월화드라마 ‘사랑비’에 출연하며 확실히 시청자들에게 얼굴 도장을 찍은 강태경은 연기라고는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무용학도였다. 우연히 출연한 CF로 조금씩 주목을 받더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장을 냈다.
“큰 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배구선수하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는데요, 그게 어린 마음에 그렇게 싫더라고요. 키 때문에 주위에서 이것 저것 추천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무용이었죠.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부모님 권유로 시작했다가 3개월 만에 콩쿠르서 좋은 성과를 얻게 됐었어요.”
무용을 하면서 ‘내 길이 아니다’ 결론을 내렸던 것은 대학 입학하자마자였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고민을 하던 그는 2008년 우연히 ‘CF 아르바이트 할 생각 없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당대 인기였던 이동통신 스카이의 메인 CF를 통해 데뷔를 하게 됐다. 그가 출연한 ‘오무려집게 편’은 지하철 ‘쩍벌남’의 다리를 집게로 사정없이 오무리는 여대생이 등장하는 재미있고도 통쾌한 내용을 그렸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CF모델이었는데,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연기를 할 줄 알았으면 뭔가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웠을텐데, 흘러가는 대로 지내다보니 어느 새 제가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그간 몇 개의 작품에 출연한 적은 있지만 이렇다할 작품명을 공개하기도 애매할 정도의 단역이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확실히 알리게 된 ‘사랑비’의 출연은 어떻게 성사됐을까. 장근석, 윤아 주연의 ‘사랑비’는 드라마 ‘가을동화’ ‘겨울연가’로 호흡을 맞춘 윤석호 감독과 오수연 작가가 9년 만에 의기투합한 작품.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주목을 받는 이들이 뭉친 드라마다.
강태경은 극중 도도한 톱 모델이지만 은근히 백치미가 있는, 서준(장근석)을 유혹하는 캐릭터로 등장했다. 작은 역이지만 극중 캐릭터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른, 그래서 튈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그는 “원래 없는 캐릭터인데 오디션 때 저를 보시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셨다고 하더라”라며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속상하기만 할뿐”이라고 말한다.
“원래 도도하고 섹시하고 백치미가 있는 캐릭터였는데, 감독님이 애드립을 좋아하세요. 촬영 당일 날 갑자기 ‘백치미로 가자’ 하시더라고요. 갑작스런 주문에 너무 힘들었죠. 신인이라 긴장은 되지, 피곤은 더 쌓이지, 계획하고 준비했던 리액션은 모두 무용지물이 됐고 덕분에 우왕좌왕, 대사도 뒤죽박죽…. 하, 정말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혹독한 연기 신고식을 치른 강태경은 그렇게 어려움을 갖고 난 뒤 조금씩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톱스타 장근석과의 호흡이 또다시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특히 일본에서 촬영할 때에는 ‘어부지리’로 일본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장근석과 옆에서 함께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의 강태경을 한국의 유명한 인기 여배우로 착각했던 것. 한국에서 몇 년간 했던 사인보다 일본에 며칠 머물며 했던 사인이 훨씬 많을 정도였다.
“장근석 씨의 첫 인상이요? 너무 차가웠어요.(웃음) 첫 느낌에 ‘내 스타일은 아니구나’ 싶었죠. 하지만 은근히 섬세했는데, 가량 먼지가 묻으면 직접 털어주고, 긴장하는 듯하면 말도 시켜주고 그랬어요. 연기할 때는 심오한데, 뭔가 다양한 매력이 있어요. 도대체 어떤 배우일까, 어떤 사람일까, 장근석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지더라고요.”
강태경에게 윤석호 감독은 “자상하고 푸근하고 아버지 같은 분”이다. 높지 않은 시청률로 현장 분위기가 의기소침할 만한데, 시청률에 따라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중요시하는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았단다. 그는 “‘사랑비’는 휴식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옛날을, 옛 사랑을 추억하게 하는 흔히 만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꼭 하고 싶은 캐릭터를 물었더니 “캔디 혹은 4차원 캐릭터”라고 답한다. 그는 “김선아 선배님을 좋아하는데, 그동안 보여주셨던 로맨틱 코미디 연기를 꼭 해보고 싶다”라며 “올해 목표는 시트콤 하나, 드라마 하나, 영화 하나!”라며 자신감과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솔직담백한 매력이 돋보인 강태경과의 인터뷰는 봄날의 새싹처럼 활기찼고 싱그러웠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중들에게 털털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 냄새가 나는 배우로 비춰졌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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