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영화] ‘돈 돈 돈…’ 거리는 세상에서 돈 없이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돈이 없어 불행할 수도 있지만 돈이 많아 불행하기도 하다. ‘돈의 맛’을 잘못 본 이들은 돈으로 파멸의 길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 ‘돈의 맛’은 바로 이런 사람들에 주목한다.
재벌가의 돈과 욕망에 대해 그린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이 15일 언론시사회를 갖고 베일을 벗었다. 일찌감치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주목받았고 윤여정, 김효진 등 여배우의 노출이 담긴 파격적 포스터가 공개돼 기대를 모았다.
영화는 임 감독의 전작 ‘하녀’에 이어 재벌가의 속내를 그린다.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저택에서 그만큼이나 화려하고 굉장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들여 놓은 카메라는 또 다른 진실을 포착한다. 권력에 대한 더러운 욕망과 죄악을 냉소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앵글이 주시하는 주인공은 ‘돈=권력’인 자본주의 한국 사회에서 최고의 부를 가진 백 씨 집안사람들이다. 세상과 남편과 자식을 쥐락펴락하는 표독스러운 안주인 금옥(윤여정)과 돈의 맛에 빠져 살았지만 그런 삶을 모욕적으로 느끼기 시작한 백옥의 남편 윤 회장(백윤식). 백 씨 집안의 뒷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는 비서 영작(김강우)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며 다가서는 장녀 나미(김효진)와 돈으로 만들어진 자리를 돈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아들 윤철(온주완). 그 곁에는 절대 백 씨 집안에 속할 수 없는 존재이면서도 점차 돈의 맛을 알아가며 갈등하는 영작이 그림자처럼 함께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멋대로 주무르고 통제하는 금옥의 아버지(권병길)가 권력의 정점이다.
여섯 인물을 중심으로 돈의 맛을 알거나 알게 된 재계와 법조계 사람들의 얽히고설킨 권력과 욕정이 임상수 감독 특유의 에로티시즘으로 펼쳐진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한국사회의 폐부를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돈세탁과 재벌가 상속 이야기, 연예인 성 상납, 청부살인 등 실제로 벌어진 바 있는 사건들을 투영해 한국 사회에서의 ‘돈의 의미’에 대해 되새김한다.
그렇다고 무겁고 어둡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곳곳에 웃음 코드를 배치해 적절히 긴장을 풀어 준다. 정색하고 한국 사회에 메스를 대는 정면돌파의 부담감을 덞과 동시에 관객과의 소통 지점, 대중성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임 감독이 그간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하녀’ 등을 통해 불친절하고 암시적이며 냉소적인 영화를 고수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조금 어깨의 힘을 뺀 느낌이다. 자신의 스타일은 유지하되 웃음과 섹시코드를 결합시켜 관객에게 한 발 더 다가섰다. 이러한 선택이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불러올지 흥행에 미치는 유효성은 어느 정도일지 자못 궁금하다. 오는 17일 개봉.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