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히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대회(ASCO 2025)가 막을 올렸다. 항암제 시장의 판도를 바꿀 항체약물접합체(ADC)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주요 임상 결과가 대거 발표될 예정이다. 글로벌 빅파마 등과 기술 이전, 협업 논의도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업계와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된다.
30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ASCO 2025’는 이날부터 6월3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된다. ASCO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세계 3대 암학회로 꼽힌다. 특히 ASCO는 허가 및 상업화에 근접한 임상 2·3상 단계 신약 후보물질들의 연구 결과가 주로 공개되고 전 세계 의약품 시장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실제 유한양행과 미국 존슨앤드존슨이 개발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의 병용요법이 지난해 ASCO에서 최우수 연구 결과로 선정된 뒤 두 달 만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다.
올해 가장 관심받는 발표는 미국 머크(MSD)와 미국 길리어드 사이언스가 공동 진행한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TNBC) 병용요법 3상 중간 분석 결과다. 이번 연구는 PD-L1 발현 양성이면서 수술이 불가능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유방암 환자 443명을 대상으로 면역항암제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MSD)와 TROP2 표적 ADC 치료제 ‘트로델비’(사시투주맙 고비테칸, 길리어드)를 병용했을 때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키트루다·트로델비 병용 1차 치료에서 생존 개선 효과를 보인 만큼 그동안 치료 옵션이 거의 없던 TNBC의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디트마르 베르거 길리어드 최고의학책임자는 “해당 연구 결과는 전이성 유방암 초기 치료에서 ADC·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최초의 사례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ADC 대세를 이끌고 있는 일본 다이이찌산쿄의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트라스트주맙데룩스테칸)를 활용한 추가 임상 연구 결과도 관심을 모은다. 미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는 인간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2(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엔허투와 표적 유방암 치료제인 ‘퍼제타’(퍼투주맙, 로슈)를 같이 사용한 임상 3상(DESTINY-Breast09) 연구(LBA1008) 중간 결과를 공개한다.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 1157명이 참여한 이 연구는 1:1:1 비율로 △엔허투 단독요법군 △엔허투·퍼제타 병용요법군 △탁산 계열 항암제·‘허셉틴’(트라스투주맙, 로슈)·퍼제타 병용요법군으로 나눠 진행됐다.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HER2 양성 진행성 위암 환자를 대상으로 엔허투 2차 치료 효과를 평가한 임상 3상(DESTINY-Gastric04) 연구(LBA4002) 결과도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 해당 연구는 엔허투 단독요법과 기존 HER2 양성 위암 2차 치료의 표준요법인 ‘라무시루맙’(제품명 사이람자, 일라이 릴리)·‘파클리탁셀’(탁솔, BMS) 병용요법을 비교한 것이다. 아울러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는 엔허투 후속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TROP2 표적 ADC 치료제 ‘다트로웨이’(다포토파맙 데룩스테칸) 후속 임상 결과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다.
항암 후보물질 임상 결과 줄줄이 공개
유한양행, 일동제약, 리가켐바이오, LG화학 등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도 ASCO에 대거 참가한다. 유한양행 자회사 이뮨온시아는 CD47 타깃 면역항암 후보물질인 ‘IMC-002’의 임상 1b상 중간 결과를 공개한다. 이뮨온시아는 앞서 지난달 30일 폐막한 ‘AACR 2025’에서 IMC-002 비임상 결과를 공유했다. 해당 연구 초록에 따르면, ‘렌바티닙’(제품명 렌비마, 에자이)과 IMC-002를 병용한 불응성 간세포암종(HCC) 환자 13명은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빈혈은 단 한 명의 환자에서 관찰됐으며, 호중구·혈소판 감소증은 보고되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이번 발표를 통해 기술 수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동제약의 신약 개발 전문 회사인 아이디언스는 PARP 저해제 계열 항암 신약 후보물질인 ‘베나다파립’과 미국 화이자의 항암제 ‘이리노테칸’을 병용해 전이성 위암 치료제로 개발하는 1상 중간 결과를 공개한다. 이원식 아이디언스 대표는 “임상 종양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회에서 발표 주제로 선정됐다는 점에서 베나다파립의 경쟁력과 신규 항암 치료법 개발에 대한 가능성을 한층 더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가켐바이오는 B7-H4 표적 ADC ‘LNCB74’의 용량 증량과 확장 단독 투여 1상 진행 상황을 발표한다. LNCB74는 넥스트큐어가 개발한 B7H4 단백질 표적 항체와 리가켐바이오의 차세대 ADC 플랫폼을 결합한 항암치료제다. 유방암과 난소암, 자궁내막암 등 부인과암종을 포함한 다양한 고형암을 주 적응증으로 설정했다.
LG화학의 자회사인 아베오온콜로지는 신장암 표적치료제 ‘포티브다’(티보자닙)에 대한 임상 3상 결과를 내놓는다. 포티브다는 2021년 FDA로부터 신장암 3차 치료제로 허가 받았다. 3상 결과는 포티브다 단독요법뿐만 아니라, 면역관문억제제 ‘니볼루맙’과의 병용 가능성을 함께 조명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앱클론은 중국 파트너사인 헨리우스 바이오텍과 공동 개발 중인 항체 위암 치료제 ‘AC101’(HLX22)의 3상 중간 결과를 소개한다. 제일약품 자회사인 온코닉테라퓨틱스는 차세대 이중표적항암제 신약 후보물질인 ‘네수파립’의 췌장암 임상 1b 및 2상, 자궁내막암 대상 임상 2상 등의 내용을 공개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ASCO는 ADC와 면역항암제 병용요법 등 차세대 항암치료 전략이 실제 환자에게 어떤 임상적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라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사들과 함께 공동 연구나 라이선스 아웃을 적극적으로 타진할 것으로 보이며, 실질적인 협업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