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글로벌 항암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세계 3대 암 학회 중 하나인 미국암연구학회(AACR)에 출전한다. 이들은 글로벌 빅파마의 이목을 끌 연구 성과를 선보이며, 파트너십 기회를 확보할 계획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오는 25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AACR 2025에 출사표를 던졌다. AACR은 세계 최대 규모의 암 연구 학회로 매년 과학자와 제약업계 전문가, 의료진이 모여 최신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신약 개발 기업에게는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글로벌 협력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올해는 약물항체접합체(ADC), 이중항체 등 차세대 항암신약을 활용한 임상 1상 및 전임상 연구에 대한 내용이 잇따라 발표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학회에서는 기존에 공개된 적 없는 신약 후보물질이 처음으로 소개돼 참가자들의 높은 관심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전통 제약사 중에서는 대웅제약, 한미약품, 제일약품(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 유한양행 등이 AACR 2025에 참여한다. 대웅제약은 항암제 신약인 ‘DWP216’, ‘DWP217’, ‘DWP223’ 등 3개 파이프라인의 전임상 결과를 포스터 발표 형태로 공개한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해당 파이프라인들은 최초 발굴된 신약물질로 퍼스트인클래스(First-in-Class)에 해당한다.
DWP223의 경우 난소암, 유방암 등 BRCA 돌연변이 암에서 암세포 생존에 필수적인 DNA 복구 경로를 차단한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키는 합성치사(Synthetic Lethality) 기전의 항암제다. 기존 항암제에 잘 반응하지 않거나 내성이 생긴 암종에 효과를 보일 수 있는 차세대 물질로 주목받고 있으며, 올해 임상시험계획(IND) 신청을 목표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이번 AACR 발표 자료는 대웅의 신약 개발 경험과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퍼스트인클래스 항암제 개발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라며 “항암 분야에서도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약품은 비임상 연구 11건을 포스터로 발표한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연구 성과를 내보인다. 표적 항암신약부터 이중항체까지 파이프라인이 다양하다. 표적 항암신약인 ‘HM97662’, ‘HM100714’, ‘HM100760’, ‘HM101207’ 등을 비롯해, 북경한미약품이 개발 중인 이중항체 플랫폼 ‘펜탐바디(Pentambody)’ 기반의 ‘BH3120’ 관련 연구 2건 등 총 7개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비임상 성과가 공개된다.
STING(Stimulator of IFN genes) 단백질을 직접 발현시켜 강력한 항암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STING mRNA 항암 신약은 처음으로 공개된다. STING 단백질 활성화는 다양한 면역세포의 종양 내 침투를 촉진하고, 항암 면역 반응을 강화해 암의 진행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EZH1·2, 선택적 HER2 등 특정 암의 유전자 변이를 표적하는 차세대 항암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번 AACR에서 다양한 항암 파이프라인 성과를 밝히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외국 대기업과의 협력 기회를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유한양행과 함께 개발하고 있는 이중항체 항암제 ‘YH32364’(ABL104)의 비임상 연구 데이터를 내세운다. YH32364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와 면역세포 활성인자인 4-1BB를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항체로, 에이비엘바이오의 독자적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 T’ 기술이 적용됐다. 양사는 이 이중항체를 통해 종양세포가 존재하는 암 미세환경(TME)에서만 T세포를 선택적으로 활성화해 치료 효능을 극대화하고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발표는 국내 기술 기반의 이중항체가 면역항암제 분야에서 글로벌 가능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YH32364는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임상 1·2상을 허가 받았다.
이 외에도 리가켐바이오는 면역항암제로 개발 중인 STING 작용제 ‘LCB39’를 포함해, ADC 플랫폼 기술이전으로 도출된 후보물질 등 총 5건의 파이프라인에 대한 전임상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한 면역관문억제제 등 다양한 기전의 항암제와 병용투여로 시너지 효과를 입증한 데이터를 함께 발표한다. 압타머사이언스는 Trop2 단백질을 표적으로 하는 압타머 약물 접합체(ApDC) 항암 후보물질 ‘AST-203’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선보인다. 온코크로스와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인공지능(AI) 신약 플랫폼을 토대로 발굴한 항암 후보물질의 전임상 연구 성과를 보여줄 방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제약산업의 성공 요인이 기술 경쟁력으로 옮겨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재부상 가능성 등은 국내 제약사 입장에서 위협 요인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글로벌 임상 및 기술 수출 확대를 위한 전략적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AACR 2025와 같은 세계적 학회는 기술 역량을 입증하고 글로벌 제휴를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교류의 장”이라며 “지난해 AACR에서 기술이전과 파트너십 사례가 이어졌던 만큼 올해 기업들의 관심과 참여도는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