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건축학개론’에 납뜩이가 있었다면, ‘코리아’에는 김재화가 있다. 의도적인 코믹한 장면이 아닌데도 이상하리만치 그들만 등장하면 관객은 ‘빵빵’ 터진다.
‘코리아’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며 관객 2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명품 조연’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김재화를 만났다. 쫙 찢어지고 부리부리한 큰 눈은 보자니 그가 출연했던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 되며, 인터뷰 도중 여러 번 웃음이 터졌다.
“옛날부터 제가 뭐만 하면 사람들이 다 웃었어요. 덩아령이라는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덩아령은 영화에서 무시무시하고 나쁜 역으로 보일 수 있지만, 주위에서 평을 좋게 해주셔서 ‘호감형의 악당’이 됐다고 생각해요. 좋게 생각하면 귀여운 악역이랄까요.”
지난 3일 개봉한 ‘코리아’는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최초로 결성되었던 남북 단일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김재화는 극 중 주요 시합인 한·중전 때마다 등장하며 극적인 긴장감을 배가 시키는 중국 대표선수 덩야령 역을 맡아 괄목할 만한 연기력으로 주목 받았다.
실제 중국인이 출연했다고 믿을 정도로 언어며 비주얼까지 완벽히 중국 탁구선수로 분한 김재화는 다른 배우들보다 많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며 스크린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었다.
영화를 보며 어딘가 낯이 익다 싶었다면, 영화 ‘하모니’에서 “메조가 뭐냐니까”라는 간단한 대사를 어록으로 남긴 여자 죄수를 떠올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 ‘하모니’와 ‘퀵’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김재화는 충무로에서는 다소 늦깎이 배우 축에 끼지만 중앙대학교에서 연극학을 전공, 수년간 연극 무대서 내공을 다져온 연기파 배우다.
그가 연기한 덩아령은 중국 내에서 줄곧 탁구로 1등밖에 한 적 없는 엘리트이지만, 실제 김재화는 영화 속 인물과 사뭇 다른 길을 걸었다. 안양예고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다닐 때만해도 그는 덩아령처럼 두려운 것이 없는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니는 내내 선배는 물론 동기들까지 ‘연기를 제일 잘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콧대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고. 하지만 시련은 곧 찾아왔다.
“졸업하니까 할게 없는거예요.(웃음) 3년 동안 무대에 오르기는 했지만 탈만 썼어요.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내로라하는 학교에서 ‘잘한다’는 소리 듣고 졸업했는데….”
영화 데뷔는 ‘하모니’가 처음이다. 연극 무대만 고집하는 언니를 보고 여동생이 “꿈이 세계적인 배우이면서 왜 영화에는 도전 안하느냐”라며 한 마디 했다. “아 맞다, 영화를 해야 레드카펫도 밟을 수 있구나” 싶어 나이 서른을 코앞에 두고 영화판에 문을 두드렸다.
“재미있고 독특한 캐릭터를 주로 맡게 되지만, 전 그래서 좋아요. 개성 있는 연기가 더 재밌잖아요.”
김재화는 이번 영화에 캐스팅이 되자마자 탁구와 중국어 대사를 위한 연습에 몰두하며 캐릭터에 완벽히 녹아 들기 위한 맹훈련에 돌입, 세계 랭킹 1위의 탁구 선수 덩야령 역을 완벽히 소화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선수인만큼 당당한 시선처리와 말투, 표정 등 세밀한 부분까지 연구한 덕분에 싱크로율 100%라는 찬사를 받았다.
“크고 쫙 찢어진 눈, 꼿꼿이 허리를 세운 당당하고도 도도한 자세 그리고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는 자신감이 덩아령의 모든 것이에요. 쫙 찢어진 눈을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바짝 묶어 눈꼬리가 올라가게 했죠. 감독님이 ‘대놓고 잘난 체 해도 된다, 덩아령은 평생 살아오면서 1등밖에 안 해봤다’며 응원해주셨죠.”
탁구를 제일 잘쳐야 하는 역이었기 때문에 영화 촬영 전 가장 먼저 탁구 연습에 돌입했다. 당시 탁구를 가르쳐줬던 국가대표선수들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김재화는 “실업팀임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탁구 선수는 통금 시간이 남아 있더라”라며 “그 귀한 시간을 내서 우리에게 가르쳐줘서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탁구는 1대 1 게임이기 때문에 박자가 잘 맞아야 해요. 스탭과 스윙 등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었죠. 또 탁구는 심리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 선수들만의 느낌이나 포스, 아우라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어요. 얼굴은 우락부락해보일지 몰라도 승부욕 하나는 못이기는 그런 디테일을 살려냈죠. 특히 현정화 감독님의 생생한 이야기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극중 덩아령이 1등 자리에 오를 때 중국 국가를 부르는 장면은 그가 꼽은 명장면이지만 아쉽게도 편집돼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 중국어 가사를 열심히 외웠지만, 저작권 때문에 뺄 수밖에 없었던 것. 너무 자신감 넘치게 국가를 불렀기 때문일까. 그 장면을 찍을 때 스태프들이 배꼽을 찾느라 분주했단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웃긴 애’로 통했다. 학창시절 반장을 도맡아 했는데, 공부보다는 인기 덕이었다. ‘오락부장’ 같은 반장으로 유명했다. 그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사람들이 막 웃었다. 어릴 때부터”라며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제가 ‘차렷, 경례’만 해도 여기저기 친구들 웃음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만들다보니 한국 사람들이 느끼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강화시켰기 때문에 다소 중국 선수가 악역처럼 비춰진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극의 재미를 위해 탁구공을 발로 밟는 장면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너무 얄밉다’ 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실제 중국선수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을텐데. 하지만 귀여운 악역처럼 표현이 된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아요.(웃음)”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며 기사와 블로그의 포스팅, 카페 게시판까지 꼼꼼히 읽는다고 자랑(?)했다. ‘코리아’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에 자신의 이름이 상단에 있는 것도 자신이 수없이 검색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는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석자는 몰라도 ‘코리아의 중국선수 너무 연기 잘하더라’라는 글귀를 발견하는 것이 요즘 그의 일상에 가장 큰 기쁨이다.
“가장 해보고 싶은 역은 영화 ‘마더’의 김혜자 선배님 같은 캐릭터예요. 하지만 배우는 선택되어지는 거니까요, 언제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모르죠. 유해진 선배님이 감초 역으로 시작해 점점 인정받으며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신 것처럼 저 또한 조금씩 연기를 인정받고 싶어요. 어떤 역이든 잘 표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음 작품에서는 영화에 일어나는 사건에 적극 가담하는 역을 해보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비중 있는 역을 해보고 싶다는 거죠. 하하.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박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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