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전지현이 확 변했다.
대중들에게 인식된 전지현은 큰 키에 청순한 외모, 그리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며 베일에 싸여있는 인물이었다. 15년차 배우로 톱스타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국내활동이 뜸했고 CF나 일부 매체를 통해 접하는 파파라치 사진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가 영화 ‘도둑들’(감독 최동훈, 제작 케이퍼 필름)을 통해 4년 만에 대중에게 돌아왔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솔직하고 거침없이.
조곤조곤하게 필요한 이야기만 하고 곤란한 질문에는 미소로 대신할 것 같았던 그녀. 하지만 지난 10일에 열린 영화 ‘도둑들’ 언론시사회에서 이런 편견은 완벽히 깨졌다. 김혜수와의 미모 대결에 대한 질문에 “가슴 사이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한 것. 이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지난 1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꾸밈없는 진짜 전지현을 만날 수 있었다. “저도 재미없으면 제 영화 안봐요” “제가 순진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죠” “예니콜처럼 발라당 까지진 않았어요” “남편이 너나 잘하래요” 등 가식 없는 말들로 베일에 싸인 이미지를 벗고 한걸음 더 대중에게 다가왔다.
“‘도둑들’ 붕붕 떠있다 땅으로 내려온 기분이에요”
최동훈 감독의 신작 ‘도둑들’에서 전지현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 또 한번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었다.
영화는 마카오 카지노에 숨겨진 희대의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을 훔치기 위해 한 팀이 된 한국과 중국의 프로 도둑 10인이 펼치는 범죄 액션 드라마.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수현 등 쟁쟁한 스타 속에서 단연 눈에 띄는 역은 전지현이 맡은 예니콜이다.
미모를 겸비한 줄타기 도둑으로 등장하는 그는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매력과 특유의 장난기로 극 중 캐릭터를 120% 소화해냈다. 화려한 와이어 액션과 거침없는 입담도 덤으로 볼 수 있다.
“기존에 선보인 작품들이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이젠 땅으로 내려오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중 최동훈 감독님을 만났고, 예니콜 캐릭터를 통해 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죠. 하지만 실제 저는 예니콜처럼 발라당 까지지는 않았어요(웃음).”
극 중 ‘미모’를 담당하는 줄타기 도둑 예니콜은 줄 하나에 의지한 채 건물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와이어 액션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와이어에 의지하고 뛰어내리는데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두세 번 뛰다 보니 두려움이 배가되는 거예요. 그 공포감을 아니까 더 못 뛰어내리겠더라고요. 눈물이 찔끔 나고 정말 못 할 것 같았는데 최 감독님을 믿고 뛰어내렸어요. 극 중 ‘내 인생을 걸고 던진다’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말을 되뇌며 제 인생을 걸고 했죠.”
“현장 분위기 단연 최고…청소는 제 담당”
톱스타가 두 명만 모여도 묘한 경쟁심에 현장 분위기는 살벌해진다는데 ‘도둑들’에는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한다. 과연 이들이 모인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워낙 많은 스타들이 등장하다 보니 오히려 그런 것이 더 없었던 것 같아요. 현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이 멤버들과 ‘도둑들’ 2편을 다시 하고 싶을 정도예요. 특히 마카오 촬영장에서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어요. 김윤석 선배 방이 아지트였는데 사람이 많다 보니 라면을 하나 끓여도 물의 양부터 시작해서 말들이 많았어요. 정말 재밌는 추억이죠.”
배우들이 해외에서 촬영하게 되면 으레 그에 맞는 대접을 받게 된다. 그런데 ‘도둑들’ 출연 배우들은 의외로 함께 음식을 해먹으면서 더욱 돈독해졌단다.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로 김윤석과 김혜수가 요리를 하고 전지현이 설거지와 청소를 담당했다.
“제가 원래 정리를 잘하는 성격이에요. 가만히 있어야 할 곳에서도 자꾸 치워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때가 있죠. 이번 촬영 때도 선배들이 요리를 하면 제가 치웠어요. 김윤석 선배가 워낙 요리를 잘해 보쌈을 주로 해주셨고요, 김혜수 선배도 옆에서 뚝딱뚝딱 음식을 잘 만들어주셨어요.”
같이 호흡을 맞춰야 하는 배우들이 MT 분위기로 친해졌으니, 그 다음은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 서로 주고 받은 농담은 고스란히 스크린에 투영됐다.
“촬영할 때도 ‘연기파는 뭐 먹어요?’ ‘스타파는 이런데…’라는 농담을 주고받았죠. 이런 자연스러운 것들이 영화 속에 잘 녹아든 것 같아 매우 만족하고 있어요. 또 연령대가 있다 보니 야한 농담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땐 결혼 전이었는데 ‘처녀도 있는데 왜 이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곧 적응했죠. 제가 그런 말을 이해 못할 만큼 순진한 나이는 아니잖아요(웃음).”
“엽기적인 그녀의 업그레이드판? 절대 아냐”
15년째 배우 생활을 하고 있지만 단 8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엽기적인 그녀’ 이후 택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며 ‘엽기적인 그녀’는 꽤 오랫동안 그녀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선보이는 발랄하고 통통 튀는 캐릭터는 ‘엽기적인 그녀’속 그녀의 성장판이라는 평을 듣는다. ‘견우야 미안해’를 외치던 그녀가 이제는 ‘키스할 때 입술에 힘 좀 빼’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지현은 전혀 다른 역할이고 ‘엽기적인 그녀’의 업그레이드판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동안 ‘엽기적인 그녀’를 뛰어넘을 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못 만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작품이 업그레이드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전혀 다른 캐릭터니까요. 전작들이 계속해서 흥행에 실패했는데 전 매번 ‘대박날거야’라는 생각에 작품을 택했어요. 그럼에도 아쉽게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 했던 거죠. ‘엽기적인 그녀’ 캐릭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부담감도, 잊고 싶다는 압박도 전혀 없었어요.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고마운 캐릭터죠.”
②편 에 계속.
국민일보 쿠키뉴스 한지윤 기자 poodel@kukimedia.co.kr/ 사진=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