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짧은 머리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저도 몰랐어요.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아요. 털털하고 조심스럽게.”
이렇게 매력적인 곰과(科) 여성이 또 있을까. 청순가련형을 꼽는 여배우에 늘 이름을 올렸던 조윤희는 요즘 사랑스럽고도 보이시한 매력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KBS 주말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하 ‘넝굴당’)에서 조윤희는 상대 배우 이희준과 알콩달콩하면서도 파란만장한 열애를 시작하며 드라마의 윤활유 같은 존재감으로 큰 인기를 구사 중이다.
“사랑스럽다는 말 너무 좋아요. 항상 다른 여배우의 기사를 읽으며 ‘나도 그런 말을 좀 들어봤으면…’ 했었으니까요. 그간 긴 머리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주위에서 ‘사실 너 긴 머리할 때 너무 우울해 보였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렇게 짧은 머리가 마음에 들 줄 누가 알았겠어요.”
조윤희는 극중 차윤희(김남주)의 시누이이자 방귀남(유준상)의 여동생인 방이숙 역을 맡았다. 방귀남을 잃어버리는 날 태어나는 비극적 운명 탓에 평생 생일 축하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며 집안의 아들 노릇을 하며 자란 인물. 기존의 도회적이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벗어나 털털하고 보이시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조윤희는 ‘넝굴당’이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2010년 ‘황금물고기’와 지난해 ‘내게 거짓말을 해봐’등 매년 꾸준히 안방 시청자들을 만나왔지만 인지도에 비해 지명도에 있어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도 적은 편이다. ‘넝굴당’이야 말로 ‘조윤희=방이숙’을 자동 인식하게 해준, 가장 강렬하고 인상 깊은 캐릭터를 만들어준 작품인 셈이다.
“성격도 변했어요. 점점 이숙이와 비슷하게 변하는 것 같아요. 저에게 알게 모르게 새침데기 같은 이미지가 있었나 봐요. 요즘 ‘드라마처럼 성격이 털털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은 거 있죠.”
이번 드라마를 통해 ‘재발견’이라는 말을 듣기까지 조윤희는 많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왔다. 변화되지 않은 자신의 모습에 매너리즘을 느꼈고 늘 부족하고 발전이 없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연기에 임했다. 늘 제자리에서 맴돌던 이러한 아쉬움은 ‘넝굴당’을 만나면서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조윤희가 방이숙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단순히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리기 때문만은 아니다. 방이숙의 남자 같고, 뻣뻣하고, 눈치 없고, 사랑을 받을 줄도 할 줄도 모르는 어리숙함을 지닌 복합적인 이미지를 조윤희는 용케 균형감 있게 만들어냈다. 한편으로는 여리고 순수하고 안쓰러운, 결코 단순하지 않은 방이숙의 면모 또한 조윤희와 높은 ‘싱크로율’을 빚어낸다.
“사실 우리끼리 대본만 봐도 너무 재미있다고 막 즐거워하고 그래요. 배우들은 마치 독자처럼 작가님의 글에 울고 웃고 그러죠. 대본이 완벽하고 배우 캐스팅도 너무 좋고, 드라마가 잘될 수밖에 없어요. 제 주위의 드라마 안 보는 분까지 너무 재미있다고 해주시니 ‘국민 드라마’의 힘은 다르구나 실감해요.”
요즘 인기를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광고계의 러브콜이 들어오면서부터다. 데뷔 이래 첫 커플 CF를 찍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희준과 함께 CF를 찍으며 드라마의 인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단다. 조윤희는 “이희준 씨를 보면 결국 실력 있는 사람은 언젠가 인정받는 것 같다”라며 “내공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빛을 보게 돼 너무 기쁘고, 덕분에 나까지 빛을 보는 것 같다”라며 흐뭇해했다.
지금이야 이희준이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개성 있는 말투로 인기를 얻으며 ‘대세남’ 대열에 합류했지만, 처음 파트너가 된 것을 알았을 때 조윤희로서는 우려 반 걱정 반이었다. 대표작으로 꼽을 만한 작품도 없었고, 드라마에서는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배우였기 때문.
“이희준 씨가 연기하는 작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그저 ‘연기 잘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했죠. 일부러 그가 출연한 단막극을 찾아 봤는데, 너무 매력적이어서 예감이 좋았어요. 이희준 씨 덕분에 제가 더 사랑받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결국 실력 있는 사람은 언젠가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깨닫게 됐어요.”
이희준의 실제 모습도 극중 캐릭터와 비슷한 점이 많아 현장은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윤희의 설명이다. 그는 “실제 모습도 위트 있고 재밌고 따뜻하다”라며 “앞으로 이희준 씨 같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차기작에서 이희준 씨를 파트너로 만나는 여배우는 참 복 받은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너무 잘 어울리는 드라마 속 커플이다보니 ‘실제로 만나보라’는 주위의 부추김도 여러 번 있었다. 다행히(?) 이희준이 연인을 공개하면서 이러한 어색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해소됐다. 조윤희는 “너무 극구 손사래 쳐도 실례인 것 같고, 애매하게 말을 흐려도 오해를 살 수 있어 난감했었다”라며 “드라마에 몰입하시는 증거인 만큼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며 금세 환한 얼굴로 돌아왔다.
극중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규현(강동호)의 구애와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의 사장 재용의 해바라기 같은 사랑을 동시에 받는 조윤희지만, 일각에서는 ‘방이숙이 너무 눈치 없는 것 아니냐’는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재용과 이숙이 커플로 맺어지길 바라는 애청자들의 애정 어린 응원이기도 했다. 재벌 아들인 재용의 가족들로부터 수난을 받은 이숙이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게 될지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이숙이는 사랑을 받은 적도 없고 사랑해본 적도 없어서 누가 자기를 사랑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해요. 늘 집안에서는 아들 노릇을 했어야 했기 때문에 남자처럼 변했고요. 어찌 보면 되게 안쓰럽고 순수한 거죠. 그러다가 두 남자의 사랑을 받게 돼 믿기지 않는 거예요. 재용과 이숙의 파란만장한 연애사가 펼쳐지는 만큼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극중이지만 두 남자의 사랑을 받아 사실 너무 행복했답니다.(웃음)”
어릴 때부터 큰 키 덕분에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조윤희는 지난 2002년 연기자로 데뷔하면서도 수없이 자신의 끼를 의심해왔다. 유명한 스타가 되고자 하는 욕심보다는 주위의 추천과 격려 덕분에 지금의 자리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욕심 없는 배우다. 하지만 요즘의 조윤희는 분명 달라졌다.
“다음 캐릭터는 분명 이숙이와 다를 거예요. 순해 보이는 이미지와 다른, 강렬한 악역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고요. 사극도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어느덧 데뷔 10년을 넘긴 조윤희는 어쩌면 이제 막 연기에 꽃을 피웠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방이숙 캐릭터를 발견했듯 새로운 그 무언가를 또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두정아 기자 violin80@kukimedia.co.kr 사진 이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