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멀쩡 속은 악마 ‘사이코패스’ 자가 진단법

겉은 멀쩡 속은 악마 ‘사이코패스’ 자가 진단법

기사승인 2012-09-16 19:50:02

겉은 멀쩡, 속은 잔혹… 섬뜩한 사람들이 활보한다

[쿠키 과학]
# 잘 생기고 화술이 능란한 회사 대표

얼굴이 귀공자처럼 생긴 30대 중반의 K씨. 옷차림도 말쑥하고 화술도 능란했다. 교양도 있어 보인다. 명함을 보니 모 회사 대표다. 의사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가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부인과 형제들을 만나본 뒤에야 그가 ‘반사회적 인격 장애’임을 확진하게 됐다.

가족은 그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아내를 구타하고, 충동적이며,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그의 아내는 “겉으로 보면 매력적으로 보이겠지만, 짐승보다 더 못한 인간이다. 그 인간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지옥 생활과 다름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 여성에게 인기 많은 말끔한 인상男

실직 상태 중 마약을 운반하다가 적발된 27세 S씨. 조사 과정에서 우울, 불안, 분노 조절의 어려움 등을 호소해 경찰에 의해 모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검진 의뢰됐다.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들의 물건과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교칙을 자주 어기고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위협하는 일도 잦아졌다. 결국 고교를 중퇴한 그는 폭력 조직에 들어가 소매치기, 강도, 성폭행 등의 문제로 수차례 법적 처벌을 받았다.

S씨는 말주변이 좋고 겉보기에 말끔한 인상이어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여자 친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치는 등 착취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동시에 여러 여성을 만나는 등 성적으로 문란한 생활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자녀들을 자주 구타했다고 한다. 그는 의사에게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불법 행위 및 타인에게 끼친 피해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으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가족과 사회에 돌렸다.

말끔한 인상의 마약 운반책 S씨와 화술이 능란하고 잘 생긴 회사 대표 K씨. 이들은 무고한 사람을 폭행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인면수심의 중죄인이라는 사실 말고도 공통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 즉 사이코패스(psychopath) 진단을 받았다는 점. 사이코패스는 남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해 반사회적 범죄를 일으키기도 하는 인격 장애를 일컫는 용어다. 흔히 ‘양복을 입은 뱀’으로 묘사되는 사이코패스, 그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사이코패스는 양심이 실종된 사람들=최근 언론을 통해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범 고종석의 잔혹한 사건 소식을 접하고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 어린 아이를 상대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흉악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라며 혀를 찼다.


평범한 환경에서 자란 인간도 사회성이 결여된 연쇄살인, 아동 성폭행 등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저지를 수 있을까. 고종석 사건은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돼 온 사이코패스의 ‘선천성’과 ‘후천성(환경적 요인)’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사이코패스는 1801년 프랑스 정신과 의사 필리페 피넬이 ‘정신병 증상이 없는데도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위험한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에게 붙인 말이다. 이들은 양심이 결여돼 있고, 충동적이라서 원하는 것을 즉시 얻기 위해 타인을 해치거나 괴롭히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또 대가를 얻거나 복수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보다는 폭력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는 경우가 많다.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 교수는 “자기중심적이라 타인을 괴롭히거나 지나친 요구를 하고도 미안해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거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도 사이코패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들과 긴밀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결혼 생활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없는 게 문제=정신과학자들은 사이코패스를 만 18세의 나이를 기준으로 구별한다. 타고난 기질이 상대적으로 많이 작용하는 18세 이전에는 ‘품행 장애(conduct disorder)’, 그 이후에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로 각각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아청소년기와 성인기의 질환을 구별하기 위해 임의로 나눈 것일 뿐이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민수 교수는 “실제로 어린 시절에 품행 장애가 있던 아이들 중 반 이상이 커서 사이코패스로 이환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고 지적했다.

타고난 기질과 어릴 때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그만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정신과학자들은 반사회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양심이나 죄의식과 관련한 ‘초자아’ 형성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부모의 반사회적 행동을 보고 배웠거나 열악한 성장기 환경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죄의식이 내재화될 기회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12세 이전, 즉 사춘기 징후가 드러나기 전부터 동물을 학대하거나 다른 아이를 때리는 등의 파괴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타고난 기질이 작동한 것일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남자의 친척 중에는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5배나 많다는 보고도 있다.

문제는 아직 이를 현실에서 제어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사이코패스는 정신건강 치료보다는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교도소 행이 해결책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 교수는 “잃어버린 양심을 되찾아주면 될 텐데, 정신과학계는 아직 그 양심을 키울 도구를 찾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김상기 기자
ks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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