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걷는 꿈이 현실로… 정말 행복해요”

“두 발로 걷는 꿈이 현실로… 정말 행복해요”

기사승인 2012-12-18 13:04:00

[쿠키人터뷰] 한국서 희망 찾은 러시아 환자 ‘세르게이’ 어머니 ‘나보제이코 안토니나’씨

[쿠키 건강] “걷을 수 있다면 걷는 것을 보는 게 가장 큰 바람이에요. 하지만 지금 현재도 정말 행복해요. 지금 세르게이는 일자로 설 수 있고 다리를 양 옆으로 벌릴 수도 있어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아요.” 세르게이의 어머니 나보제이코 안토니나씨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아들 세르게이를 보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안토니나씨는 아들의 수술 후 가장 먼저 자전거를 구입했다고 했다. 러시아로 돌아가 아들의 물리치료를 위해서란다.

2009년 당시 학생이었던 루카소브 세르게이(20)는 한 괴한으로부터 금품을 탈취 당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 당시 세르게이는 부상으로 인한 의식불명상태로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다행히 1개월 후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았지만 세르게이는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사고 후유증과 긴 시간 동안의 침대 생활로 관절은 망가지고 왼쪽은 전신마비 상태였다. 심지어 사고 당시 뇌에도 타격을 입어 지적발달 장애가 나타나 언어구사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러시아 병원에서 퇴원할 당시 오른쪽 손 이외의 온 몸은 움직이지 못했었고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어요. 의사들은 희망이 없다고만 했고 요양원으로 보내야 한다며 강제 퇴원을 시켰어요. 세르게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내가 우리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에 절망했고, 생활 또한 엉망이 됐습니다. 세르게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없었고, 갈수록 생활고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안토니나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세르게이는 건강하고 공부도 곧 잘했다. 철도전문대학교를 다니며 수시로 아르바이트를 해 가계에 보탬을 주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또한 축구, 배구 등 운동에도 능하고, 사교적 성격으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그날 사고는 세르게이 가족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퇴원 후 1개월이 되던 날, 안토니나씨는 친구의 소개로 아들 세르게이와 함께 중국 하얼빈으로 갔다.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바라노오렌부르스코이에서 하얼빈은 기차로 24시간 정도 걸려요. 금전적인 문제로 하얼빈에서 계속 지낼 수 없었기 때문에 2개월은 중국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 2개월 지내고 또다시 중국으로 가는 생활을 반복했어요. 사고가 있은 후 2년 반 동안 총 11개월을 중국에서 치료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세르게이의 건강을 호전시키지 못했다. 이때 세르게이를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마을 사람들이었다. 세르게이가 살고 있는 마을(바라노오렌부르스코)은 전체 가구가 7개에 불과한 열악한 시골마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성의를 모아 척추관절 종합병원인 부민병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러시아에서 알던 사람이 40일간 무의식 후 걷지도 못하고 다리도 벌릴 수 없었는데, 한국에서 수술하고 오더니 다시 걷고 다리를 벌리는 것을 봤어요. 이때 세르게이를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사연을 접한 부민병원은 세르게이의 치료를 위해 주민들이 모은 성금 이외의 나머지 모든 의료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방한 당시 이동의 불편함이 없도록 공항에서 병원까지 앰블런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간이 넓은 특실에서 휠체어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난달 12일 부민병원을 찾은 세르게이는 걷거나 서지도 못했고 혼자 거동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또 다리 벌리기가 어렵고 통증 또한 심했다. 지적 수준은 당시 사고 후유증으로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했다. 치료를 맡은 손명환 부민병원 관절센터 소장(고관절 전문의)은 정밀검사 후 ‘양측 고관절 다발성 골극’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즉각적인 고관절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치료는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세르게이의 혈액형이 희귀 혈액형인 RH- O형으로 혈액을 구하는 데 어려움 겪은 것이다. 다행히 3일 후인 15일 기적적으로 RH- O형 혈액을 확보한 병원측은 곧바로 고관절 치료를 위해 ‘골극절제술’을 시행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수술 후 세르게이는 다리 벌림과 일자로 서는 것이 가능해졌고, 의료기기를 의지해 조금이나마 걸을 수 있게 됐다.

손명환 소장은 “수술이 잘 돼 현재 혼자 일어나 서있을 수 있게 됐고, 약간의 보행도 가능하다”며 “워낙 처음 상태가 좋지 않아 일반인처럼 걷기는 힘들겠지만 다리는 뒤쪽, 옆으로 벌릴 수도 있게 됐다”고 말했다.

손 소장은 또 “앞으로 자전거 등을 이용해 꾸준한 재활운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뼈가 강직될 수 있기 때문에 집이나 전문병원에서 체계적인 재활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민병원은 러시아 우스리스크 르네상스 21병원과 협력체계를 갖추고 있어 화상회의를 통해 의료진과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재활치료를 부민병원이 끝까지 관리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서 간호사로 일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민병원에 왔을 때 보통 사람들 보다 더욱 세심하게 병원을 관찰했죠. 부민병원의 의료기술은 놀라울 정도예요. 세르게이는 수술 후 다음날부터 앉고 운동하고 물리치료도 받았습니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어려운 광경이었죠. 병원 전체의 분위기도 너무 따뜻하고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정말 대단합니다.” 어느새 안토니나씨의 얼굴에 희망이 넘쳤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주호 기자 epi0212@kmib.co.kr
박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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