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정치] 남북이 12일 열린 고위급 접촉에서 13시간30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가진 것은 서로가 내놓은 의제 중 어느 것도 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남북은 자정이 넘어서 서로 악수도 하지 않고 헤어졌다.
◇오전은 부드러운 분위기=통일부는 13일 양측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만나는 첫 고위급 만남인 만큼 초반에는 탐색전에 주력했다고 전했다. 먼저 통일 정책과 남북관계 개선 방법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우리 측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취지를 북측에 설명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차질 없는 개최가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임을 강조했다. 북측은 지난달 16일 국방위원회가 발표한 중대제안을 남측이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또 원칙적인 입장에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선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중지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오전까지 북측은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 진행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측은 아울러 자신들의 소위 ‘최고 존엄’과 ‘체제’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를 문제삼으면서 우리 정부에 대해 “언론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측은 “언론에 대한 정부의 통제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북측은 우리의 비핵화 결단 촉구에 논의할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한발 비켜갔다. 남북은 또 서해 5도 지역에서의 군사적 대치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1차 전체회의는 상대방의 입장과 의견을 듣는 자리였던 만큼 원만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20분 정도 이뤄졌다. 1차 전체회의를 마친 후 남측에선 공동선언문 채택이 가능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우리 측이 합의를 보려했던 공동보도문은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원만한 진행과 포괄적인 남북 현안에 대한 대화 재개 등이 주 내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부터 속내 드러내며 기싸움=그러나 오후부터 상황이 반전됐다. 북한은 점심식사를 가진 후 연 2차 전체회의에서 갑자기 이산가족 상봉을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연계시켰다. 이달 24일 시작될 키 리졸브 연습을 20∼25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뒤로 미루라는 주장을 갑자기 들고 나왔다. 이에 우리 측은 “이산가족 상봉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계하는 것은 순수한 인도주의적 문제와 군사적 사안을 연계시켜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맞섰고 북측의 훈련 연기 요구를 일축했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요구로 남북은 2차 전체회의를 마친 후 3시간 이상 정회했다. 이 시간 동안 남북 대표단은 서로의 요구에 대한 진의를 파악하고, 상부의 지침을 하달받은 것으로 보인다. 남북은 오후 7시15분부터 수석대표 접촉을 가지며 이 문제에 대해 격론을 벌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남북은 오후 9시45분 수석대표 2차 접촉이 끝날 때까지 현안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남북은 결국 오후 11시35분 연락관을 통해 접촉 종료에 합의했고, 자정을 10분 넘긴 시각에 북측 대표단은 판문점을 떠났다. 대개 남북회담 때 별다른 합의사항이 없더라도 종결회의를 열어 악수를 나누고 공식적으로 대화를 끝맺는 것과는 달리 이날 접촉은 상당히 차가운 분위기 속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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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