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거주하며 남편을 따라 성까지 바꾼 김경숙(81)씨는 23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단체상봉을 통해 북쪽의 오빠 전영의(84)씨를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미국에 있던 딸도 엄마가 평생 만나길 소원한 삼촌을 보기 위해 이틀 전 한국으로 들어와 동행했다. 김씨 일가는 6·25전쟁 당시 집이 경북 안동이었지만 오빠인 전씨만 서울에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오빠 전씨에게 “적십자사에서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화통을 붙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오빠랑 초등학교 같이 다닐 때 내가 ‘전영의의 동생’으로 불린 것 기억이 나냐”고 물었다. 또 “전쟁이 끝나도 오빠가 고향에 안 돌아와서 죽은 줄 알았다”며 “그래서 큰 오빠가 오빠 제사를 지내왔다”고 울먹였다.
캐나다에 사는 최정수씨도 전쟁통에 헤어진 언니 정애(79)씨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편으로 날아왔다. 언니는 당시 적십자병원에서 간호사로 있었는데 인민군이 내려오면서 강제로 병원일을 보다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끌려갔다. 정수씨는 “전쟁통에 언니가 학교에 갔다가 안 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며 “캐나다에서 올 때 힘들었지만, 언니를 봐야한다는 일념으로 이렇게 왔다”고 힘주어 말했다.
북쪽에 있는 아버지 남궁렬(87)씨를 만난 봉자(64·여)씨도 이번 상봉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아들과 딸을 불러들여 함께 금강산을 찾았다. 봉자씨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버지가 키도 크고 잘생겼다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며 아버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봉자씨는 “아버지 형제들은 다 돌아가시고, 고모만 계시는데 치매에 걸리셨다”며 “아버지를 3~5년 기다리다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홧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울먹이면서 가족들의 근황을 전했다. 봉자씨는 아들과 딸을 아버지에게 소개하며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이 미국에서 직접 잠바하고 남방을 사왔다”고 말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