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대신 의용군에 끌려간 동생, 미안하다”=임금영(86)씨는 북측 동생 선영(83)씨의 손을 꼭 잡고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 살았을 때 인민군이 두 형제 중 한 명이 의용군으로 가야한다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이에 동생 선영씨가 “내가 형님 대신 가겠다”고 나섰고, 형 금영씨는 남쪽에 남게 됐다. 금영씨는 “그 때 네가 떠난 지 벌써 60여년이 지났다. 내가 21세였고, 네가 18세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형을 원망하지 않았는지 묻기도 했다.
북측에 있는 큰형 이선영(84)씨를 만난 두영(79)씨도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6·25전쟁 당시 고향이었던 경기도 화성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갑자기 인민군들이 들이닥쳐 의용군에 안가면 가족들을 몰살시킨다해서 강제로 징집된 후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이었다. 두영씨가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큰형을 보고 싶다고 매일 말씀하셨다”고 말하자 형 선영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동생 두영씨도 눈물을 흘리며 “나를 천영이라고 불렀던 것 기억하지. 형이 애명을 알 것 같아서 애명까지 적어서 상봉신청을 했다”며 “대장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는데 수술할 때도 큰형 생각이 많이 났다”고 토로했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줘서 고맙다”=남측 최고령자 이오순(94·여)씨로 북측 남동생 조원제(83)씨를 한 눈에 알아봤다. 이씨는 동생의 손을 부여잡고 “고맙다. 고맙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오열했다. 동생 조씨는 “누님, 누님, 이게 얼마만이오. 난 누님이 안계시는 줄 알았소. 누님”이라며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씨는 원래 조씨지만 어려서 아버지가 호적을 등록하지 않아 시집갈 때 다른 사람 밑으로 호적을 등록해 이씨가 됐다고 동생에게 설명했다.
18세에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오빠 류근철(81)씨를 만난 정희(69)씨도 “오빠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여기저기 찾으러 다니며 무당에게 점도 봤다”며 “사망신고까지 한 오빠가 살아서 우리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적 같았다. 아직도 죽었나 살았나 믿기지가 않는다”고 감격해 했다.
6·25때 헤어진 동생 방상목(84)씨를 만난 누나 례선(89)씨도 “죽은 줄 알고 지내다가 느닷없이 살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연신 반복했다. 전쟁통에 이별한 언니 박계화(82)씨를 만난 금화(78)씨도 언니에게 남측에 계셨던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내며 눈물을 쏟아냈다. 동생 금화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네 자매 중 큰언니만 전쟁통에 사라진 것을 평생 한으로 생각하고 자주 우셨다”고 언니에게 전했다.
◇북측 상봉자 88명 중 3분의 1 이상이 의용군=이번 2차 상봉에선 북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8명이 남측 가족 357명을 만났다. 특히 북측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88명 중 31명이 6·25 전쟁 당시 의용군으로 입대해 북으로 올라간 사연이 있었다. 의용군은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불리해진 전세를 만회하기 위해 급히 만든 부대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해지고 전쟁이 장기화되자 남쪽의 고교생 이하 청소년들까지 의용군으로 선발했다. 자발적 참여자도 있었지만 강제로 징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전문가들은 전쟁 당시 약 30만명 이상의 의용군이 징집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차 상봉에선 또 전쟁 당시 짐꾼 등으로 납북되거나 남측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북으로 간 경우도 각각 11명, 4명이나 됐다. 실제 이연숙(79·여)씨는 간호사 일을 하다가 북으로 끌려간 언니 임순(81)씨를 만났다. 언니는 전쟁 당시 시립간호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지만 인민군이 후퇴할 때 함께 북으로 잡혀갔다. 동생 연숙씨는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7년 정무 2장관을 지낸 특이한 이력이 있다.
한편 북한 매체들은 이산가족 상봉 1차 행사가 끝난 지난 22일 상봉 소식을 짤막하게 보도했다. 북한 매체들이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직접 보도한 것은 처음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금강산 발로 지난 20일부터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며 “우리 측 가족, 친척들은 남녘의 혈육들에게 김정은 원수님의 품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 대해 이야기했다”고 소개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