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강원도 양양에 사는 골수 서핑 마니아

[쿠키人터뷰] 강원도 양양에 사는 골수 서핑 마니아

기사승인 2014-02-27 11:32:01

제주도, 부산, 강원도 양양 누비며 서핑 전도하는 고성용 서퍼스 대표

[쿠키 생활]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앞바다. 영하의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바다 속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 놓은 채 물 위에 동동 떠 있다. 이들 중 파도를 능숙하게 잡아타며 유난히 돋보였던 이가 있었다. 바로 고성용(32) 서퍼스 대표다.

“장비를 갖추고 타면 그렇게 춥지 않아요. 겨울엔 오히려 물속이 더 따듯하죠. 찬바람 쌩쌩 부는 산꼭대기에서 스키를 타는 것과 같다고 보면 돼요.”

고성용씨에게 겨울바다는 낭만의 대상이 아닌 도전 욕구를 해소하는 곳이다. 또 바다는 그의 일터이기도 하다. 고씨는 3년째 이곳에서 ‘서퍼스(SURFFERS)’라는 서핑 관련 용품점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 양양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서핑천국으로 불리게 된 데는 그의 역할이 나름 컸다.

고씨의 고향은 제주도 중문. 어렸을 때부터 아침이면 바다로 산책을 가고, 방학이면 그곳에서 일을 해 돈을 벌었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 사는 사촌형이 서핑장비를 갖고 종종 찾아왔는데, 그때마다 그는 그 위에 올라타 놀곤 했다. 서핑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살 때부터다. 미국에서 300달러짜리 중고 보드를 구해온 후 홀로 연습하거나 당시 제주도에서 서핑을 즐기던 지인들과 함께 기술을 연마했다.


고씨는 이른바 대한민국 서핑 1.5세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핑을 시작해 이어진 그의 경력은 10년쯤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치러진 각종 서핑대회에서 수십 차례 우승했고 지금은 이 분야 최고 실력자로 손꼽힌다. 이만하면 프로 서핑 선수로 나서도 될 법한데 고씨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나라는 아직 프로 서퍼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닙니다. 일본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하와이나 호주처럼 큰 파도가 몰아치지 않는 게 가장 큰 이유예요. 서핑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겠다 싶어 대학 졸업 전부터 관련 업종을 찾아 일을 시작했어요.”

고씨는 2008년 제주도에서 무작정 상경해 평택의 한 스포츠용품 멀티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어 서핑 관련 의류 브랜드를 취급하는 대기업에 입사해 1년간 회사생활을 했다. 그러나 직장은 그의 이상과 차이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서핑을 단지 마케팅 수단으로 여기더군요. 서핑 마니아들이 요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회사가 운영됐어요. 그런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각박했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제주도로 내려온 고씨는 6개월 고심 끝에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서핑 메카였던 제주도와 부산을 피해 새로운 대상지 개척도 할 겸 강원도 양양에 발을 디뎠다.

“사업 자금은 지인에게 빌리거나 대출을 통해 마련했어요. 돈이 한 푼도 없었거든요. 서핑 마니아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데이터가 있었는데 그걸 믿었어요. 2~3년 뒤면 먹고 살 정도는 되겠다 싶어 서핑 숍을 차리기로 했습니다. 현재 수입은 대부분 서핑 스쿨에서 벌어들여요. 초보자들을 위한 강습을 하거나 장비를 빌려주는 식이죠. 그래도 시작할 때보다 형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법규제가 한국 서핑 문화 발전 저해= 고성용씨는 4계절 내내 서핑만 한다. 스키나 스노우보드, 자전거 등 다른 종목에는 일체 눈을 돌리지 않는다. 학창시절에는 씨름과 육상, 농구에도 취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로지 서핑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서핑의 매력은 무엇일까?

“서핑은 바다와 맨몸으로 부대끼는 자연친화적인 스포츠입니다. 집채만한 파도를 오로지
인간의 힘으로 상대한다는 데 큰 매력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순간 자연의 위대함을 깨우칠 수 있고 자연을 대할 때마다 늘 겸손하게 됩니다. 물론 파도 위에서 보드를 타고 일어섰을 때의 쾌감은 더할 나위 없고요.”

한국 서핑의 역사는 고작 10년 정도다.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약 30년은 뒤쳐졌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파도가 적은 환경적인 영향 탓이다. 하지만 고성용씨는 한국 서핑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또 다른 원인으로 법 규제를 들었다.

고씨에 따르면 불과 3~4년 전만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파도가 치는 날 서핑을 할 수 없는 나라였다. 법적인 제재 때문이었다. 바다에 풍랑주의보 발효 시 입수를 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지금은 입수신고서를 쓰면 주의보 시에도 서핑을 할 수는 있지만 아직도 해경의 통제 하에 있다. 그러나 주의보가 조금 강한 수준이라던가, 경보일 경우에는 여전히 서핑을 할 수 없다.

“‘사고 시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라는 고질적인 문제에 대해 법적으로 선을 그을 수 없는 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1년에 며칠 안 되는
집채만한 좋은 파도가 오는 날은 바다에 들어가 서핑을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고성용씨는 앞으로 매장 운영에 더 매달릴 작정이다. 수입이 뚜렷하지 않으면 좋아하는 서핑조차 마음껏 즐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는 서핑 문화 부흥과 저변 확대를 위해 외국의 자료를 수집, 일반인들이 쉽게 서핑을 접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서핑에 대한 외국 자료들은 많이 있지만 대부분 높은 수준이거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역학과 메커니즘에 대한 자료들이 대부분입니다. 국내 수준에 맞게 한국에 필요한 자료를 하나씩 만들고 일반인들이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또 더 많은 서핑 이벤트를 개최하고 지원하며, 연예인팀이나 유소년팀도 만들 예정입니다.”

담담한 말 사이에도 고씨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큰 파도가 치면 다시 바다로 뛰어 들어갈 태세였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윤성중 기자
sjy@kukimedia.co.kr
윤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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