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일당 5억 황제노역’ 제도개선 착수… “국민 납득하게 법 개정 등 모든 수단 강구”

대법원 ‘일당 5억 황제노역’ 제도개선 착수… “국민 납득하게 법 개정 등 모든 수단 강구”

기사승인 2014-03-26 00:18:00
[쿠키 사회]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자 대법원이 개선책 마련에 나섰다.

윤성원 대법원 사법지원실장은 25일 “허 전 회장에 대한 과다한 환형유치 금액 판결로 국민 우려를 일으킨 점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노역제 기준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오는 28일로 예정된 전국 수석부장판사 회의에서 최우선 안건으로 노역제 기준마련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앞서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장병우 현 광주지법원장)는 2010년 1월 탈세·횡령 혐의로 기소된 허 전 회장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 미납시 일당 5억원의 노역장 유치를 명해 논란이 됐다.

현행법은 ‘벌금을 납입하지 않는 자는 1일 이상 3년 이하의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하루 일당을 얼마로 정할지는 재판부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벌금 5000만원을 선고받아도 재판부가 하루 노역수당을 5만원으로 정하면 당사자는 1000일을 노역장에서 일해야 한다. 반면 허 전 회장처럼 노역일당으로 5억원이 책정되면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고도 50일만 일하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항소심 재판부가 허 전 회장을 선처하려 했던 것 같은데 일당으로 5억원을 책정한 것은 재량권 남용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벌금액에 따라 노역일수 하한선을 기준으로 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예를 들어 벌금이 100억원을 넘어서면 최소 1년 이상 노역하도록 노역일당을 정하는 식이다. 지난 21일 열린 중앙형사법관 워크숍에서도 이 같은 방안이 논의됐다. 그동안 법원은 재판부마다 노역일당을 정하는 기준이 상이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범죄액이 높은 재벌 비리도 마찬가지였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벌금미납시 노역일수가 1000일(일당 50만원)이었지만, 이재현 CJ 회장은 260일(일당 1억원)이었다.

독일식 ‘일수벌금제’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독일은 벌금 총액수를 정하기 전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노역해야 할 기간을 먼저 정한다. 그 기간에 피고인이 실제 벌어들이는 일당 중 벌금으로 낼 수 있는 금액을 곱해 벌금 총액을 결정한다. 일단 벌금 총액을 먼저 정하고 노역일당을 정하는 우리와는 순서가 반대다. 일수벌금제 방식을 따르게 되면 벌금과 노역의 총액이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된다. 허 전 회장의 경우처럼 터무니없이 높은 일당이 정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범죄자가 ‘벌금 납부하는 대신 몸으로 때우는 쪽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줄어든다.

일수벌금제는 현재 국회에서 발의돼 계류 중이다. 윤 실장은 “일수벌금제는 피고인의 경제력을 정확히 판단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 우리 사법부에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이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현수 나성원 기자 jukebox@kmib.co.kr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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