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LNT요? 내 땅도 아닌 곳에서 염치라도 차려야죠!”

[쿠키人터뷰] “LNT요? 내 땅도 아닌 곳에서 염치라도 차려야죠!”

기사승인 2014-04-01 14:49:01


해먹 캠핑 전문가 백패커 정의석

[쿠키 생활] 지난 22일, 경기도 인근 캠핑장으로 야영을 떠나는 정의석(40)씨의 등짐은 단출했다. 그가 등에 짊어진 50L 들이 배낭의 무게는 10㎏을 넘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짐으로 어떻게 산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까? 정씨가 대답했다.

“저는 캠핑할 때 해먹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짐이 많지 않습니다. 텐트보다 훨씬 가볍고 설치하기도 편해요. 해먹에서 잔다고 하면 사람들이 십중팔구 허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물론 전혀 아프지 않아요! 자다가 굴러 떨어진 적도 없고요.”

정의석씨는 국내 유일무이한 해먹(hammock) 캠핑 전문가다. 그는 나무기둥 사이에 천이나 그물을 걸어 침상처럼 쓰는, 일명 ‘그물침대’를 이용해 캠핑을 즐긴다. 해먹을 단시간 휴식용, 장식용, 놀이용으로만 사용하는 일반 캠퍼들과 달리 해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해먹이 정씨의 애장품이 된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해먹을 이용해 캠핑을 할 경우 바닥상태 정리가 숙영지 마련을 위한 고려사항 중에서 가장 후순위가 됩니다. 이는 한국적 실정에서 매우 알맞다고 할 수 있죠. 국내 대부분의 산지는 평평하고 고른 땅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텐트를 이용하거나 비박을 하려면 사이트를 만들어야 하죠. 해먹을 이용하면 그럴 필요가 아예 없습니다.”

정의석씨에 의하면 해먹을 이용하면 여러 이점이 있다. 우선 짐의 부피가 작을 뿐만 아니라 가볍고, 무엇보다 빠르게 설치할 수 있다. 또 짐 정리를 속된말로 배낭에 ‘쑤셔 넣는 것’으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 게다가 모든 것이 지면에서 떨어져 있기에 오염에 대한 우려가 덜 하고 악천후가 닥쳐도 나를 지지하는 나무나 구조물에 이상이 없으면 비교적 안전하고 쾌적하게 머물 수 있다. 또 해먹 캠핑은 자전거 라이딩 또는 카약킹, 하이킹 등 다른 종목과의 접목이 매우 용이하다.



정의석씨는 해먹 캠핑에 대한 정보를 외국에서 처음 접했다. 10여 년 전 군 제대 후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 외국인 친구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 해먹을 치고 야영하는 모습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해먹을 이용하면 과연 편할까? 처음엔 저도 반신반의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해먹 아래쪽의 단열 문제만 해결하면 큰 이점이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6년 전부터 해외 사이트를 뒤져서 연구한 뒤 하나씩 시도해보면서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형태의 야영이 2000년대부터 일반화 됐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정씨는 해먹 캠핑과 관련된 장비들을 하나씩 갖췄고 언제 어디서나 안락하게 보낼 수 있는 방도도 깨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해먹 캠핑 전도사가 됐다. 그에게서 노하우를 전수받으려는 ‘문하생’들까지 생겼다.

“한때 엔지니어가 꿈이었어요. 관련 업종에서 직장생활을 조금 하다가 채질에 맞지 않아 금방 관뒀습니다. 그때의 열망이 지금의 취미생활로 옮아온 것 같아요. 밖에 나와 이것저것 만들고 설치하는 게 무척 재미있습니다.”

현재 그는 약 10년째 호주 유학원을 경영하고 있다. 평일에는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할 정도로 바쁘다. 그러나 주말에 혼자 즐기는 캠핑 덕분에 그나마 삶이 즐겁다고 정씨는 말한다.

“캠핑장에 홀로 있을 때 솔직히 별 생각은 안 합니다.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주중에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편입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제 삶의 가치부여가 명료해지기도 해요. 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해서 결국 캠핑을 즐길 시간이 없다고 억울하거나 힘들진 않아요. 일하는 시간이 노는 시간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더 즐겁게 캠핑을 즐길 수 있지 않겠어요?”

끝으로 그에게 최근 유행하고 있는 백패킹에 관련된 생각들을 물었다. 특히 최소한의 장비만 들고 다니며(BPL, Backpackig Light) 머문 자리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LNT, Leave No Trace)에 대해 들려줄 게 있을 듯 했다.

“사실 어떻게 배낭을 싸도 내 한 몸을 지탱하고자 하는 물건들과 내용물을 챙기려면 무겁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무릎 관절의 소모성을 생각한다면 BPL은 슬로건이 아니라 뜻이 맞는 이에겐 당위의 문제입니다. 좁게 봐도 LNT라는 건 나의 사유지가 아닌 곳에 가는 이의 염치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혼자 놀러가면서 이런 곳에서라도 염치는 차려야죠!”

국민일보 쿠키뉴스 윤성중 기자
sjy@kukimedia.co.kr

윤성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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