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겨 있는 곳도…대피가 제일 어려운 비상대피소

잠겨 있는 곳도…대피가 제일 어려운 비상대피소

기사승인 2014-05-13 23:11:01
[쿠키 사회] 재난이나 전쟁 등 위급 상황 때 시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설치된 민방위 비상대피소가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표지판이 부실하거나 아예 문이 잠겨 있는 곳도 있어 비상시에 시민들이 제대로 대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비상대피소는 서울에만 4000여곳이 지정돼 있다. 수용인원도 서울 인구의 3배가 넘는다. 대피소는 소방방재청의 ‘민방위 시설장비 운영 매뉴얼’에 따라 즉시 대피할 수 있도록 개방된 상태에서 관리돼야 한다. 출입문 등 잘 보이는 곳에 대피소임을 알리는 안내표지판과 유도표지판도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팀이 직접 찾아가본 서울 시내 대피소 20여곳 중 이런 규정을 지켜 제대로 관리되는 곳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우체국. 이 건물 지하는 비상대피소로 지정돼 있지만 건물 정문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었다. 시설 관계자에게 대피소 위치를 묻자 “여기 대피소가 있느냐”고 되묻더니 “지하주차장을 말하는 것 같다. 그곳이 대피소인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주차장에 가니 그제야 입구에 붙은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건물 어디에도 이곳으로 유도하는 표지판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대피소로 지정된 인근 주민센터를 찾았다. 정문에 대피소 표지판은 붙어 있었지만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표지판에 나타난 화살표 방향에는 굳게 닫힌 철문만 있을 뿐 대피소로 안내하는 표시는 없었다. 철문에는 “시설 보안 관계로 출입을 당분간 중지한다”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주변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낡은 컨테이너 박스만 놓여 있을 뿐 대피소로 보이는 곳은 전혀 없었다.

지하철 신림역 인근의 주상복합 건물에는 아예 표지판조차 없었다. 건물 외벽에는 상가에 입주한 가게 간판만 붙어 있다. 건물 안에 들어가봤지만 역시 표지판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주민에게 대피소 위치를 물었더니 “주상복합건물에 무슨 대피소가 있느냐. 공공건물을 말하는 것 아니냐”며 “대피소가 있는지, 어떻게 대피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서울 강남구의 한 상가건물 입구에는 대피소 간판이 붙어 있지만 주변에 붙은 각종 전단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대피소 인근에 비상조명등이 설치돼 있었는데 너무 높아서 조작 스위치가 손에 닿지 않았다. 이곳이 대피소란 걸 아느냐는 질문에 주민 조모(32·여)씨는 “여기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비상대피소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대형 백화점에도 대피소 안내판은 없었다. 백화점 안전요원에게 대피소 위치를 묻자 “잘 모르겠다. 일단 백화점 안으로 대피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로비 안내데스크에서도 여러 곳에 전화를 돌리더니 5분이 지나서야 “백화점 뒤편 출입문으로 가면 된다”고 안내했다.

지하철역 또한 위급 상황 시 대피소로 활용되는 공간이다. 면적이 넓어 다수가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어 핵심적인 대피시설로 꼽힌다. 하지만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났다.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다른 출입구에는 모두 빛바랜 대피소 표지판이 붙어 있었지만 리모델링한 2번 출구는 공사 중 떼어버린 듯 표지판을 찾을 수 없었다. 역무실에 찾아가 관계자에게 비상 대피 시 대처 매뉴얼이 있냐고 묻자 “비상 상황에서는 직원들이 각 출구에 나가 안내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시민 모두 지하철역이 대피소인줄 알고 있고 직원도 잘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종 비상용품도 턱없이 부족했다.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은 비상시 3000명을 수용할 수 있지만 구호용품 보관함에는 방독면 15개와 화재마스크 40여개만 비치돼 있었다.

지하철역이 비상대피소임을 아는 시민도 드물었다. 매일 지하철로 출근한다는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어디로 대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다른 사람들 따라 도망갈 것 같다”고 말했다. 지하철역에 아이들과 현장학습을 나온 유치원 교사 이모(22·여)씨도 “이곳 주민이 아니라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어디로 가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김현섭 기자
jse130801@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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