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부담 없이 오세요!” 국내 드레스코드 파티 문화 이끄는 두 주인공들

[쿠키人터뷰] “부담 없이 오세요!” 국내 드레스코드 파티 문화 이끄는 두 주인공들

기사승인 2014-07-08 18:41:55

시어서커 데이/컬처 앤 라이프 행사 기획자 황재환, 서현보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거리에서 마주친다면 기분이 어떨까? 무안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할 테다. 그런데 만약 수백 여명이 똑같은 옷을 입고 한 곳에서 만난다면? 무안하기는커녕 유쾌하고 즐거울 것이다.


같거나 비슷한 옷을 맞춰 입고 모이는 행사, 일명 ‘드레스 코드 파티’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5일과 28일 서울 이태원과 역삼동에서 열린 ‘시어서커 데이(seersuker day)’와 ‘컬처 앤 라이프(Culture and Life)’행사에는 각각 500여명이 몰렸다.


시어서커 데이의 드레스 코드는 여름용 옷감인 ‘시어서커’였고, 컬처 앤 라이프 행사의 드레스 코드는 파란색과 흰색이 들어간 클래식 복식 차림이었다. 국내 대중들에게 이런 ‘드레스 코드 파티’문화는 아직 낯설다.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업체 관계자나 유명인인 경우를 봐도 그렇다. 그럼에도 시어서커 데이는 올해로 3회를 맞았고 컬처 앤 라이프 행사는 이미 아홉 번째 열렸다.

인지도와 상관없이 해마다 꿋꿋하게 행사를 준비하는 황재환 (주)베스티스 과장(시어서커 데이 기획)과 서현보 라끼아베 대표(컬처 앤 라이프 기획)를 만나 그들이 주최하는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드레스 코드 행사를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황재환(이하 황) : 시어서커 데이는 처음 별도의 홍보비를 집행하지 못하는 작은 업체들의 홍보를 위한 행사로 기획했습니다. 이들 업체들은 대중들의 인기와 상관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제품을 취급하는 곳이라 소수의 패션 마니아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고요. 그래서 주변엔 옷 잘 입는 멋진 사람들이 많았죠. 행사의 성패는 참가자들이 ‘얼마나 멋있게 차려입고 오느냐’였는데 첫 행사 때 비교적 잘 이뤄졌죠. 그로부터 행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서현보(이하 서) : 컬처 앤 라이프 행사는 멋진 남성들의 건전한 교류가 주가 되는 파티입니다. 단순히 먹고 마시기만 하는 소비성 파티가 아닌, 패션과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이 모여 서로를 알아가고 남성들의 문화를 배워나가는 그런 건전한 문화의 장으로써 열립니다. 주로 클래식 복식 차림의 드레스 코드를 고수하고 있고요. 저는 클래식한 패션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패션 공부를 했는데, 멋진 옷을 막상 입고 보니, 그런 복장으로 남성들이 갈 곳이 너무도 한정돼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더라고요. 멋지게 입은 남자들 셋이 모여도, 결국 가는 곳은 호프집이나 삼겹살 집 같은 술집들 뿐 이었습니다. 아무리 멋을 부려봤자 그 복장으로 갈 곳과, 그 복장을 알아줄 사람들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았죠. 남성들의 패션을 이해하고 인정해줄 수 있는 문화 자체의 기반 설립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런 일을 시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이 참에 내가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제는 남성 패션과 문화로 잡았고요.

△드레스 코드가 왜 하필 시어서커와 클래식 복식이었나? 다른 재미있는 복장도 많았을 텐데

-황 : 행사를 기획하기 전 여름을 대표할 수 있는 소재를 찾았습니다. 시어서커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재였기에 마케팅에 수월했습니다. 시중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느끼겠지만 이미 모든 남성복 브랜드에서는 시어서커 대신 ‘지짐이’라는 이름으로 시어서커 아이템들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서 : 제가 클래식 복식을 좋아하니까요. 너무 간단한가요? 세상에는 다양한 복식문화가 있지만, 결국 나이가 들수록 가장 오랫동안 입게 되고 활용도가 높은 복장은 클래식 복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클래식 복식이라고 하면 흔히들 무거운 정장차림을 떠올리게 되지만, 클래식은 말 그대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다양한 복식이 그 안에 혼재하고 있어요. 주말 복장, 외출 복장, 비즈니스 복장 모두 클래식 복식 내에서 해결될 수 있죠. 평범한 사람을 가장 멋지게 변화시킬 수 있는 복식이 바로 클래식 복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클래식 복식을 통해 그렇게 변했고요.

△그동안 여러 번 행사를 진행했다. 어려웠던 점은?

-황 : 가장 어려웠던 건 장소 선정이었습니다. 보통 300~500명 정도가 파티에 참석하는데, 이들을 수용할 만한 멋진 공간이 사실 많지 않았습니다. 공간이 확보되면 다른 준비들은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서 : 글쎄요. 우리 모임에 참석하려면 10만원의 회비를 내야 합니다. 당연히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많죠. 스폰서들의 후원금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회비를 줄이게 되면 행사 질이 낮아질 겁니다.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운 점은 남성 패션과 문화에 대한 대중적이지 않은 시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멋진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많은 분들의 인식 변화와 함께 과감한 투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이런 자리가 더욱 커져서 스폰서들이 늘어난다면 자연스럽게 참가비의 장벽도 낮춰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참가비를 좀 더 저렴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통해 얻은 성과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황 : 행사를 기획한 처음 의도대로 나름의 홍보 효과는 달성됐다고 봅니다. 그리고 시어서커라는 소재의 대중화, 남성들도 패션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밝힐 수는 없지만 사실 굴지의 대기업에서 제의가 있었습니다. 장소 및 일체의 비용을 모두 제공하겠다는 큰 조건이었고 행사가 커질 수 있는 기회였죠. 그런데 기획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처음의 생각과 달라지는 것을 경계했고 커지면 커질수록 실제 와야 하는 사람들은 못 오고 업체 관계자들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제의를 정중히 거절한 적이 있습니다. ‘큰 기업과 함께하면 멋이 없다’라는 나름의 고집도 있었고요.

-서 : 처음엔 이런 파티가 오래 가겠느냐는 주위의 회의적인 시선과 조롱섞인 의견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에 지금은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까페정모에서 시작한 파티지만, 지금은 남성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파티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패션 업계에서도 이 파티에 대해 알고 계신 분들이 상당히 많아진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연락을 받을 때면 놀라기도 합니다. 또 간혹 있는 일이긴 합니다만 파티 참가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다가 몰랐던 학연이나 지연 관계를 알게 돼 새로운 사업적 파트너나 친분관계로 이어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봤습니다. 세상 참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가장 재밌었던 에피소드는 파티에서 처음 본 두 분이 알고 보니 같은 건물에서 서로 다른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이었다는 거죠. 파티를 계기로 지금은 두 분이 절친이 됐답니다.



△남성들도 패션에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다. 현재 업계 상황은?

-황 : 제가 몸담고 있는 ‘바버샵’에는 마니아틱 한 상품들이 많습니다. 저는 주로 사전 지식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소비자들도 점점 더 알기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단순히 물건을 파는 시대는 지났고 이야기를 판매하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물건이 왜 좋고 왜 이 가격인지 이해시켜야만 하며 제품 외적인 스토리가 있어야만 판매가 됩니다.


-서 : 사실 국내 남성 클래식 복식 시장이 대중화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옷에 대해 관심을 가졌을 때만 해도 클래식 복식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같은 그런 느낌이었죠. 하지만 몇 년 새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고급 브랜드 뿐 아니라. 대중적인 브랜드부터 SPA 브랜드까지 다양한 업체들에서 클래식 복식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덕분에 클래식 복식 시장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죠. 하지만 국내 클래식 복식 시장은 너무 규모를 키우는 데만 집중한 나머지 그 내면의 깊이 있는 성장은 규모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규모라도 커진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긴 하겠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뭐, 제가 좀 더 열심히 남성 패션과 문화 자체에 집중해서 좋은 자리들을 많이 만들다보면 그런 내면적인 성장도 이뤄지지 않을까요? 이 문제는 저 뿐만이 아닌 이 업종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혹은 목표는?

-황 : 여름을 대표하는 소재가 시어서커라면 겨울을 대표하는 소재는 트위드입니다. 트위드는 양털을 꼬아 만든 실을 짠 모직물을 일컫는데 시어서커 데이를 처음 기획 할 때부터 여름에는 시어서커 데이 겨울엔 트위드 데이를 하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여건상 어려웠는데 올해에는 강력히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서 : 제 목표를 말씀 드릴게요. 저는 단순히 남성복에 국한된 것이 아닌, 남성들의 전반적인 문화 성장에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남성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제일 먼저 나올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활동과 파티를 통해서 앞으로도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여권신장이 대세인 시대이지만, 이런 남성들의 문화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윤성중 기자 sjy@kukimedia.co.kr
sjy@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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