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전적 독학 화가 이상원 화백 고향 춘천에 미술관 건립 '자연속 아날로그 미술관'

입지전적 독학 화가 이상원 화백 고향 춘천에 미술관 건립 '자연속 아날로그 미술관'

기사승인 2014-10-17 10:27:56
미술관 전경

이상원 화백

미술관 전경

이승형 대표

이상원 화백 작품

‘입지전적인 독학 화가’의 꿈이 마침내 이뤄졌다.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화악산 자락에 전면이 유리로 된 둥근 고리 모양의 건물이 들어섰다. 깊은 산세와 계곡의 물소리가 어우러져 ‘자연 속 아날로그 미술관’을 표방하는 이상원미술관이다. 18세 때 혼자 상경해 그림을 그린 이상원(80) 화백이 고향을 떠나온 지 60여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18일 개관한다.

춘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 화백은 1952년 화가의 꿈을 품고 홀로 서울에 올라와 20년 가까이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벤허’ 등 1960∼70년대 영화의 주요 극장 간판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인물 묘사에 탁월한 실력을 지닌 그는 맥아더 장군 초상화 등을 그리면서 점차 유명세를 탔다.

1970년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영정 초상화로 이름을 알린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해 해외 국빈을 위한 선물용 초상화를 도맡아 그렸다. 그러다 상업 초상화 제작을 중단하고 순수미술로 돌아섰다. 이후 작품은 국내외 미술관 소장품 외에 거의 팔지 않았다. 지난 40여년의 작업이 미술관 건립의 기반이 됐다.

미술관 건립은 서울 인사동과 팔판동에서 갤러리 상을 운영했던 이 화백의 아들 이승형(48) 대표가 추진했다. 대지면적 1만5737㎡(전시장 4789㎡)에 작가 스튜디오와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5층 규모다. 미술관 입지 조사부터 설립까지 10년이 걸렸고, 총 180억원이 투입됐다.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개인이 이런 규모의 미술관을 지역에 건립한 것은 드물다.

개관전 ‘버려진 것들에 대한 경의’에는 하찮은 것들을 한지에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 60여점을 선보인다. 이 화백은 “고향에 미술관을 세운 것이 꿈만 같다”며 “예술과 자연이 주는 풍요와 치유를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미술관은 앞으로 국내 작가 중심의 기획전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힐링 프로그램 등을 마련한 계획이다.

이상원미술관은 이 화백의 작품 2000여점과 동시대 작가들의 회화 작품 1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소장품의 99%가 국내 작가의 작품이다. 이승형 대표는 “자연 속 미술관에 굳이 외국 작가의 작품을 걸고 싶지는 않다”며 “이후에도 국내 작가의 기획전을 위주로 미술관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연이 좋으니 풍부한 감성으로 그림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술관은 2000년 춘천으로 귀향해 14년째 거주하며 작업 중인 이 화백의 자연에 대한 애정과 감사의 정(情)이 섬세하게 반영됐다. 예술과 자연, 인간이 어우러져 치유와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문화공간이다. 아름답고 청정한 강원도 자연의 품에 감싸인 채 예술품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원형 모양의 미술관은 전면 유리로 된 구조물로 미술관 안과 밖 모두에서 자연의 실루엣을 고스란히 담았다. 계곡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공방 및 아트스테이 5개동은 무성한 나무와 피어오르는 물안개, 시원한 바람등과 어우러져 건물이 놓인 전체 풍경에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수묵화의 전경 같다. 입구에서부터 등산하듯 자연과 호흡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코스가 좋다.

미술관은 1층 로비층을 비롯하여 2~4층의 넓은 전시공간과 5층의 수장고, 사무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술관 건물 모든 공간에서 자연채광을 받아들여 전시 공간 안에서도 작품과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을 벗 삼아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자연의 품 안에서 다양한 예술을 체험하고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상원 화백은 1935년 강원도 춘천시 유포리에서 태어나 평범한 시골 농촌의 학생으로 지내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전장을 겪고 포탄의 흔적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 20세가 되기 전 화가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홀로 서울인 타지로 상경하였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일념으로 극장 간판장이와 상업초상화를 그리며 청년기를 보냈다.

초상화가로 활동하던 중 1970년에 건립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의 영정초상화를 그린 것을 계기로 상업초상화가로서 입지는 더욱 굳어졌다. 그 당시 이화백은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초상화를 비롯하여 해외국빈을 위한 선물용 초상화를 도맡아 하다시피 하였다. 돈도 많이 벌었다. 신문지에 두툼하게 싸서 건네는 돈다발을 받기도 했다고.

국내외에서 초상화 의뢰가 빗발치며 경제적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던 70년대 중반, 이 화백은 돌연 모든 상업 초상화 주문을 중단했다. 순수미술 작업을 위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후 70년대 후반 소위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과 대비되는 민전(동아미술제, 중앙미술대전)에 출품한 작품(‘시간과 공간’)이 잇따라 수상하면서 ‘입지전적인 독학 화가’ ‘극장 간판장이에서 순수 화가로 성공한 인물’로 불렸다.

1999년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국립러시안 뮤지움에서 전시를 성황리에 마쳤고 2005년 이어진 모스크바 국립 트레차코프 미술관 초대전시에서도 많은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작품이 지닌 한국적인 소재와 표현은 그의 작품이 가진 특수성으로 여겨졌다. 반면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모든 고귀한 예술이 지향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애를 담고 있기에 국적을 불문하여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번 개관전에서는 1977년 공모전에서 입상했던 초기작부터 미발표된 근작까지 총 60여점을 전시한다. ‘시간과 공간’ ‘동해인’ ‘영원의 초상’ ‘투(鬪)’ ‘마대(麻袋)의 얼굴’, ‘막(膜)’ 등 초기작, 호박을 그린 최근작 ‘대자연’ 등을 선보인다. 전시는 2015년 3월 29일까지. 매주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오후 6시(5시까지 입장 마감). 관람료 일반 6000원, 초중고 학생 4000원(033-255-900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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