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은 뒤엔 평안하길 바랐습니다. 고(故) 신해철의 고통은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까요. 고인의 사망을 둘러싼 의문은 여전히 안개 속에 있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은 지쳐갑니다.
신해철의 장협착 수술을 집도한 S병원과 유족 사이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K원장은 수술이나 내원 당시 문제가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신해철 측은 의료과실 여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호소합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그런 중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 네티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과거 S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고 주장하는 한 네티즌이 11일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게재했습니다. 아이디 ‘Pro***’는 “신해철과 그 가족들의 억울함을 달래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글을 올린 이유를 밝혔습니다.
내용은 다소 충격적입니다. 이전에도 위밴드 수술을 받았던 다른 환자가 사망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 환자도 신해철씨와 같은 증상으로 내장을 세척하고 꿰매다 결국 사망했는데 병원 측은 유족에게 현금을 주고 합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병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경찰이 추가로 조사해야할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글쓴이는 “S병원은 복강경 수술 시 스트라이커(Stryker)라는 장비를 사용한다”며 “이는 저장을 따로 하지 않아도 14개까지 수술기록이 복원되는 장비이기 때문에 속히 전문가를 섭외해 동영상을 복원해야 한다”고 지적했죠.
확인해보니 ‘스트라이커’는 의료기기 제조업체 이름이었습니다. 스트라이커가 특정 기능을 가진 장비의 종류처럼 설명을 해 석연치는 않지만, 장비에 붙은 회사명을 보고 착각했을 가능성도 없는 건 아닙니다.
이 네티즌은 S병원에서 이뤄지는 보통의 수술 상황이라면서 전한 내용도 놀랍습니다. 그는 “K원장은 위밴드 수술이 언제나 위장 천공의 위험성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수술 중 천공이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내시경은 K원장의 부인인 내과원장 K씨가 진행한다”고 적었습니다. 해당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들 전부를 소환해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익명성이 보장되니 거짓으로 꾸며 글을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장난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글쓴이가 밝힌 이유 때문입니다. 그는 “용기를 얻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고 했습니다. 추후에 S병원 측으로부터 보복성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지만 수사에 도움이 된다면 직접 경찰에 제보하고 진술도 하고 싶다는 겁니다.
글은 게재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추천 수 1000여 건을 기록했습니다. 글쓴이를 향한 네티즌들의 지지로 보입니다. 댓글에는 “용기에 감사하다”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 “응원한다”는 등의 응원이 가득합니다.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들이 아닐까요.
신해철 변호인 측에 이 글쓴이에게 접촉해 볼 의향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증인 확보 차원에서 말이죠. 하지만 변호인 측은 “아직 그 정도까지는 계획이 없다”며 “현재는 소장 접수 전 기록들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신해철의 부인 윤원희씨는 전날 초췌한 얼굴로 경찰에 출석했습니다. 고소인 자격으로 조사에 응했지요. 조사가 끝난 뒤 취재진 앞에 선 그는 더욱 힘겨워보였습니다. 입장을 적어놓은 글 읽다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관계에 거짓이 있어선 안 된다는 그의 호소가 귓가에 맴돕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