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은 한 가족 이야기다. 가족사진처럼 찍은 포스터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런데 단순한 가족영화는 아니다. 그 안에 역사가 있다. 비극적인 현대사를 겪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 담겼다.

그래서 영화엔 “그 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다. 내용을 정확히 요약하는 한 줄이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정진영)와 여동생과 헤어진 뒤 남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덕수(황정민)의 삶은 보는 이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북에 살다 피란을 내려온 덕수 가족은 부산 국제시장에 터를 잡는다. 장남인 덕수가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한다. 자신의 인생 따윈 내팽개치고 가족만을 챙긴다. 돈을 벌기위해 독일로 파견까지 간다. 고된 광부일을 하다 죽을 고비를 맞기도 한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 남은 여동생(김슬기)의 결혼 자금을 벌기 위해 베트남전에 참전한다. 전쟁 중 총을 맞은 덕수는 절름발이 신세가 돼 돌아온다. 잃어버린 아버지와 여동생에 대한 그리움은 평생을 안고 살아간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됐을 때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열성을 보인다.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 명확한 의도 아래 만들어졌다. 한국전쟁, 파독 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 네 가지 사건 모두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설정들이다. 아픈 현대사를 소재로 한 이유가 있다. 윤 감독은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구세대간의 이해를 돕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기성세대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는 것이다.

메시지는 영화에도 확실하게 담아냈다.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개인이 겪은 비극을 덕수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적으로 그려냈다. 유머를 곁들였으면서도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준다.

다만 연출 면에서 과했던 몇 부분이 아쉽다. 강조할 필요가 있는 장면마다 화면에 슬로우 효과를 줬다. 적당하면 감정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장치다. 하지만 과하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뚝뚝 끊기는 느낌까지 준다.

화면구성에도 공을 들였지만 이 역시 좀 과했다. 노인이 된 덕수의 현재와 과거가 전환되는 부분을 특별히 신경을 썼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에 포커스를 맞춘 상태로 배경만 달라지는 식이다. 덕분에 연결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수시로 등장하는 화면 전환은 관객의 집중을 또 흐린다.

디테일을 놓친 부분도 아쉽다. 특히 특수분장에서 그렇다. 손이나 목에 있는 주름은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그런데 얼굴 부분이 어색해 마치 인형탈을 쓰고 대사하는 듯하다. 젊은 배우들이 분장하고 노인으로 등장할 때마다 상영관 여기저기서 실소가 터져 나오는 이유다.

‘국제시장’에 대한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을 것이다. CJ가 올해 마지막 희망을 거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명량’이 누적관객 1760만명을 돌파하며 한국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운 뒤 CJ는 영 잠잠하다. 이후 내놓은 ‘두근두근 내인생’ ‘마담 뺑덕’은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다. 송혜교, 강동원, 정우성 등 톱스타들을 내세워 홍보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다음달 17일 개봉을 앞둔 ‘국제시장’은 연말 특수를 노려볼만 하다. 훈훈한 스토리는 가족단위 관객들의 발길을 끄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명량’도 중장년층 관객들이 움직이며 흥행 대기록을 세웠다. ‘국제시장’은 아픈 역사 속 아버지의 고뇌를 그렸다는 점이 ‘명량’과 닮았다. 흥행에 있어서도 그럴 수 있을까. 아쉬운 디테일을 극복하는 게 관건으로 보인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