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는 웃은 만큼만 돈을 내면 되는 극장이 있다. 영화를 보고 ‘돈 아깝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매년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준 영화가 있기 마련이다. 훌륭한 배우들이 ‘왜 하필 이런 영화에 출연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선정한 올해 돈 주고 보기 아까운 영화 베스트5.
◆패션왕
패션왕(감독 오기환)은 학교폭력에 고통 받는 우기명(주원)이 이른바 ‘간지’(패션감각을 의미하는 네티즌 신조어)에 눈을 뜨면서 멋진 남자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해 관심을 모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하였다. 에피소드들은 ‘오글’거리고 흔히 말하는 ‘병맛’ 코드도 주요 타깃인 10대층에게 외면당했다. 결국 총 관객 수 59만2982명에 그쳤다. 손익분기점(130만명)에 한참 못 미친 채 극장에서 내려갔다.
베스트 댓글: 주원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길. 안 그럼 버틸 수가 없다.
◆덕수리 5형제
덕수리 5형제(감독 전형준)는 만나기만 하면 물고 뜯고 싸우는 5형제가 부모님 실종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합동 수사 작전을 벌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그런데 5형제 캐릭터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윤상현은 이번에도 바른생활 사나이로 분했고, 송새벽은 맡 끝마다 욕하고 싸우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소소한 장점을 가진 영화지만 전체적으로 촌스럽다. 애니메이션 ‘독수리 5형제’ 주제가가 나올 때는 헛웃음이 나오곤 한다. 오히려 엔딩크레딧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안영미, 닉쿤, 김광규 등이 웃음을 줬다. 4일 개봉한 영화는 20만을 겨우 돌파했다.
베스트 댓글: 가족끼리 볼 수 없는 가족영화
◆마담 뺑덕
마담 뺑덕(감독 임필성)은 고전 심청전을 현대로 옮겨와 치정 멜로로 재탄생시켰다. 심청전 속 무능한 아버지 심봉사는 더 강한 욕망을 갈망하며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옴므 파탈 학규로 변신했고, 사악한 악처로만 그려졌던 뺑덕어멈은 사랑에 버림받고 복수를 꾀하는 악녀 덕이로 부활했다. 발상은 새롭지만 욕망이라는 주제를 영화 속에 잘 담아내지 못했다. 정우성은 데뷔 20년 만에 처음으로 수위 높은 베드신을 선보였다. 하지만 정우성의 외모와 연기력만으로 빈약한 스토리를 채우긴 역부족이었다. 누적관객 수 47만 1165명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베스트 댓글: 이솜 예쁘다 끝
◆피끓는 청춘
피끓는 청춘(감독 이연우)은 1980년대 충청도 시골 마을 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인 중길(이종석)과 영숙(박보영)은 세월이 흘러 어색한 사이가 됐고, 두 사람 사이에 소희(이세영)와 광식(김영광)이 끼어들어 펼쳐지는 4각 로맨스를 그렸다. 남녀주인공 모두 영화 내내 치고 박고 싸우다 끝이 난다. 80년대 양아치들의 로맨스로 보면 되지 않을까. 박보영의 연기 변신은 칭찬할 만하지만 스토리와 캐릭터 모두 식상하게 다가왔다. 다행히 관객 167만6040명을 모아 손익분기점 150만 명을 넘었다.
베스트 댓글: 영화 내내 치고 박고 싸우다 끝남.
◆조선미녀삼총사
조선미녀삼총사(감독 박제현)는 현상금 사냥꾼인 진옥(하지원) 홍단(강예원 ·가비(손가인)가 조선의 운명을 가를 십자경을 찾아달라는 왕의 밀명을 받고 떠나는 모험을 그렸다. 조선시대라는 배경을 제외하곤 할리우드 영화 ‘미녀 삼총사’와 스토리, 구성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역사적인 배경과 코미디 사극이라는 장르적 특색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억지스러운 설정 탓인지 캐릭터와 이야기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7광구’ 이후 하지원의 작품 선택을 다시 한 번 의심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영화는 48만361명을 모아 손익분기점 200만에 한참 못 미쳤다.
베스트 댓글: 7광구 이후 또 한번의 악몽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