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회 비리와 전쟁 중인 김부선을 응원합니다.”
네티즌들이 이웃 주민과 난투극을 벌인 배우 김부선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유명인이 구설에 휘말리면 보통 지탄을 받죠. 그런데 이 경우는 어째서 응원을 받을까요.
서울 옥수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김부선은 지난 12일 폭행 혐의로 경찰에 신고를 당했습니다. 신고한 이웃 주민 A씨는 “김부선이 안건에 없던 아파트 증축을 주장해 이를 중단하려 했더니 자신을 때렸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영화 애마부인에 출연한 이력과 높은 수위를 넘나들었던 언행 때문일까요. 처음엔 많은 매체에서 김부선이 A씨를 폭행한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김부선은 가만히 당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A씨가 먼저 폭행을 했을 뿐 아니라 협박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까지 했다”고 받아쳤습니다. 또 폭행당한 부위를 찍은 사진과 난방비 납부 내역 사진을 올리며 “난방비를 안 낸 이웃들이 나를 집단 폭행했다. 난방비 비리를 2년 동안 쫓아다닌 끝에 밝혀냈다. 서울시 감사결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총 536가구 중 300건은 0원, 2400건은 9만원 미만이다. 동 대표, 아파트선관위원장들은 지난 17년간 난방비를 한 푼도 안 냈다. 이것이 사건의 본질이다”라고 폭로했습니다.
김부선은 2012년 2월에도 난방 비리 관한 장문의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김부선의 아파트에서 2011년 11월 난방비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가구가 100가구가 넘었습니다. 같은 아파트 주민도 거들었습니다. 그는 “김부선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관공서로부터 개별난방 건축 허가를 받아냈고, 난방비가 나오지 않은 가구에겐 소명서를 제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알렸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커진 상태에서 김부선이 공사 얘기를 꺼냈다가 폭행 사건이 터졌다는 것입니다.
네티즌들은 김부선을 편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아파트 부녀회 비리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는 겁니다. 한 네티즌은 “얼굴이 알려진 분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다니, 참 대단하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다른 네티즌은 “아파트 단지는 해 먹을게 엄청 많은 곳”이라며 “부녀회 대표와 관리소장이 작당하면 난방비, 관리비 등뿐만 아니라 아파트 유지보수 공사나 공동시설 관리 등에서 이권을 챙길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또 “1억원 이상 횡령해도 뉴스조차 안 된다더라” “우리나라 정치권을 빼다 박은 것 같다” “그것도 감투라고 난방비를 빼먹다니” 등의 댓글을 달며 분노를 표했습니다.
일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경험한 일을 옮기기도 했네요. 한 네티즌은 자신의 아버지가 비리 잡겠다고 나섰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렸다는 사연을 올려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와 관련 서울시 주택정책실 관계자도 16일 “난방비 비리가 이미 확인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뉴스Y에 출연한 백성문 변호사는 “김부선이 폭로한 것과 비슷한 생활 비리는 굉장히 많다”며 “일부 아파트는 전기세 등의 관리비가 개개인 부과가 아니라 공동으로 부과한다. 누군가 안 내면 다른 사람에게 전가되는데 절도죄가 성립된다. 대부분 계량기를 조작한다. 17년 동안 한번도 안 냈다면 절도죄 유무를 떠나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쉬쉬하고 넘어가던 아파트 관리비 착복 문제가 유명인이 나서면서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이를 기회로 일부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리 행위가 근절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요즘 가장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은 배우 김부선(53·사진)씨입니다. 또 김씨와 같은 이웃 주민 간의 폭행 공방으로 촉발된 아파트 ‘난방비 비리’ 논란은 최고의 화제 중 하나입니다.
김씨는 24일 자신의 폭행 피소 건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한 경찰서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 난방비 문제를) 무던히 언론에 알렸는데 언론들은 외면했다”고 말했습니다. 뜨끔했습니다. 제가 바로 김씨를 외면한 그 언론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이 열리던 올해 2월 초였습니다. 과거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이 김씨의 사연을 제보하며 연락처도 알려줬습니다. 김씨는 오랜 시간 아파트 일부 주민들과 겪어온 갈등에 힘이 들었는지 언론의 취재 전화가 오자 반가워했습니다.
김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난방비 문제 관련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말해줬습니다. 난방비가 0원인 가정이 수십 가구에 이른다는 등 최근 언론사들이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들이 다 있었습니다. 확인을 위해 직접 방문하겠다면 언제든지 오라고도 했습니다.
충분히 기사가 될 만한 내용이라고 판단했고, “요즘 올림픽 때문에 시간이 여의치 않다. 올림픽이 끝나면 바로 다시 연락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올림픽이 끝나기 전 아파트 ‘난방비 복불복’ 논란이 새로운 이슈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됐습니다. 2011년 국정감사에서 거론이 됐고, 이미 다른 매체에서도 비중 있게 다뤘더군요.
기자들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핸디 빠졌다’는 은어로 표현합니다. 기사가 될 만한 아이템이 이후 새롭게 확인된 어떤 사실로 가치가 깎였다고 생각되는 상황입니다. 이미 여기저기서 다뤄져 기사를 써봐야 ‘재탕’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핸디 빠진’ 아이템이 돼 버린 겁니다.
그래서 김씨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많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감감 무소식이냐”는 김씨의 전화가 한 차례 왔습니다. 그리고 김씨도 눈치를 챘는지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 됐습니다.
아마 이 기사를 포기한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이유였을 거라 생각합니다. 언론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시의성’이 떨어지거나, 이미 다른 곳에서 나온 내용이라 언론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독’도 못 된다는 거죠.
그렇게 법에 이어 언론에까지 외면당한 김씨는 외로운 싸움을 계속 하다 폭행 공방에까지 휘말리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파트 난방비 문제가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 것을 목격하면서, 당시 너무 구태의연한 원칙에만 빠졌던 건 아닌지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해당 ‘팩트’가 대중에게 전달할만한 가치만 충분하다면 그게 재탕이라고 무작정 외면하는 게 아니라 더욱 발전된 내용으로 취재해 써 보려고 고민해야 한다는 당연한 도리를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4년 전 국정감사나 다른 매체 1~2군데에서 먼저 나왔다고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게 아닙니다.
종이신문은 지면, 방송뉴스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선택되는 아이템의 가치가 제한되고 그만큼 엄격해 질 수 밖에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무한 플랫폼이 허락되는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환경에서는 안 통합니다. 뉴미디어 시대에 ‘기레기(기자+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기사 가치에 대한 언론의 사고도 유연해져야 되겠습니다.
글 : 김현섭 김민석 기자 afero@kmib.co.kr
정리 : 김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