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4
[친절한 쿡기자] 두 달 넘게 기다렸지만 가라앉은 배에서 단 한 명의 친구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처를 가진 세월호 탑승 단원고 2학년 학생 72명이 25일부터 다시 학교에 갑니다. 등교에 앞서 친구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부담스럽게 하지 말아주세요.”
학생들의 호소문은 23일 SNS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경기도 안산 곳곳에 뿌려진 유인물로도 볼 수 있습니다. A4용지 한 장입니다. 살아남은 학생은 75명이지만 2명은 미리 학교를 다녔고, 1명은 아직 병원에서 치료 중입니다. 그래서 72명의 목소리입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저희는 단원고 2학년 학생입니다. 또한 저희는 세월호 사고의 생존학생들입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이 넘은 지금 사람들은 이제 저희가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직도 함께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들을 생각할 때마다 먹고, 자고, 웃고, 떠드는 모든 일들이 죄짓는 일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듣고도 선실 밖으로 나왔고, 이 때문에 살아남은 학생들은 자신들을 놔두라고 합니다.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네요. 그들은 “괜찮냐고, 힘내라고, 고맙다고, 아무것도 말하지도 묻지도 말아 주세요”라고 합니다. 또 “불쌍하고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시선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말아주세요”라고 당부합니다. 그저 자신들을 평범한 고교 2학년 학생들로 봐달라고 합니다. 어디를 가든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면서요.
글에는 ‘학교에 돌아갈 때 두려운 것들’이란 것이 나열돼 있습니다. 모두 6개 항목입니다. 교복, 2학년 이름표, 체육복 등 단원고 학생을 드러내주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버스에서의 시선, 영화관에서 학생증 보여줄 때, 동네에서 단원고 2학년이라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 그리고 기자들. 웃고 싶을 때 웃고 싶다고도 합니다. 결론은 평소처럼 대해달라는 겁니다.
호소문은 심리치료 전문가 정혜신 박사가 참여해 아이들이 모두 함께 만들었습니다. 정 박사는 세월호 참사 후 아예 안산으로 집을 옮겨 생존자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 박사는 페이스북에 “사고 이후 세상으로 첫발을 내딛는 이 아이들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이 이 글을 쓰게 한 동력”이라고 했습니다. 또 “이 아이들의 편지를 한 단어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어 달라”고 당부합니다. 살아온 아이들을 다시 사지로 모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면서요.
호소문을 읽은 네티즌들은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SNS에도, 댓글에도 한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학생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18세 소년 소녀들,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로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세월호 사고’를 잊지 말아주세요.”
“우리 딸이 살아있었다면 더 어려운 희생자에게 전했을 겁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 돈은 다른 피해자에게 주세요.”
세월호 침몰 때 학생들을 구하다가 끝내 숨진 승무원 고(故) 박지영씨 어머니가 대학생들이 모은 성금을 사양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아리 ‘미크모’(미대 크리스천 모임) 회원 30여명이 모금한 200만원을 전달하려 했지만 박씨의 어머니는 학생들의 선의를 간곡히 사양했습니다.
박씨 어머니는 “우리는 장례라도 치렀지만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도 있는데 이 돈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며 “사정이 더 어려운 가족에게 전달해 달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미크모 소속 학생은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박씨 또래 학생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은 결국 박씨의 이름으로 세월호 침몰사고로 부모와 네 살 많은 형을 잃은 조모(7)군에게 전달됐습니다. 조군 가족들도 처음에는 “우리가 이 돈을 어떻게 받느냐”며 거절했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사양’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연이 인터넷에 퍼졌고 네티즌들은 “인품은 역시 부모를 담나 보다” “나이도 어린데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를 보니 그럴만했다”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벗어줬다 결국 돌아오지 못한 고(故) 정차웅군의 아버지가 저렴한 장례용품만을 고집한 사연도 함께 거론됐습니다. 정부에서 국가 예산으로 학생들 장례비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자 정군 아버지는 ‘세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가장 싼 값의 수의와 관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 어머니에 그 딸’이고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할만 합니다.
박씨를 의사자로 지정해야한다는 여론은 더욱 커졌습니다. 8일 오후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6만5000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박씨를 의사자로 지정해줄 것을 청원하는 글에 서명했습니다. 이 서명을 제안한 황창하씨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세태 속에서 박지영씨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고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고자 의사자로 추천한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박씨의 주소지인 경기 시흥시에서도 박씨에 대한 의사자 지정을 준비 중입니다.
의사자 지원제도는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숨진 사람의 유가족을 지원하는 것으로 의사자로 지정되면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사자의 유가족은 교육급여, 취업보호, 보상금 지급 등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자격도 얻습니다.
박씨는 2012년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청해진해운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다 변을 당했습니다. 박씨는 배가 침몰하는 급박한 상황에서 단원고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며 “승무원들은 마지막까지 있어야 한다. 너희들 다 구하고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생존 승무원의 증원에 따르면 박씨는 선장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해 ‘뛰어내려라’라고 방송했습니다. ‘살신성인’의 자세입니다.
“세월호 성금 모금 반대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한 네티즌이 SNS에 올린 글입니다. 이 글처럼 28일 인터넷에서는 ‘이상한’ 운동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를 위한 성금을 내지 말자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하지만은 않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금양호 선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보상금청구 소송에서 패소한 사건이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금양호는 2010년 천안함 폭침 당시 수색작업에 투입됐다가 침몰해 선원 9명이 사망·실종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함상훈)는 지난 2월 금양호 선원들의 유족 12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의사자보상금청구 소송에서 “이미 의·사상자에 준하는 보상을 받은 만큼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습니다. 여기서 보상은 유족들이 국민성금으로 희생자 1인당 2억5000만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재판부는 “의사자보상금까지 받는다면 천안함 희생자 유족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네티즌들은 국민들이 성금을 걷으면 정작 사고대응 과정에서 실망감만 안겨준 정부는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한 푼도 주지 않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이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다는 거죠. 그래서 ‘성금 반대’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이 힘을 얻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아직 100명이 넘는 실종자가 있다’는 겁니다. 지난 24일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군청 범정부사고대책본부 상황실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면담을 가졌습니다.
한 유족이 정홍원 국무총리가 성금 모금을 지시한 것으로 거론하며 “우린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첫 번째는 아이들 사지가 멀쩡할 때 끌어내는 것이고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찬가지다. 총리와 대통령에게 전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장관도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구조에만 온 힘을 쏟아 부어도 모자랄 정부가 왜 원하지도 않는 다른 얘길 꺼내느냐는 거겠죠. 구조 과정에서 유족과 국민에게 ‘불신’만 안겨주고 있는 정부가 갑자기 성금을 운운하니 ‘책임 덜어내기’ ‘여론 돌리기’로 밖에 안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정말 성금에 관심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따르면 28일 오전 9시 기준으로 세월호 성금 모금액은 약 23억6800만원, 기탁 건수는 19만2000건입니다.
얼핏 이상해 보이는 네티즌들의 “성금 안 내겠다”는 외침, 여기에 담긴 속뜻은 이렇게 들립니다. “아직 실종자 구조,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보상 등 정부가 해야 할 그 무엇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정부가 현재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길 바란다. 성금 모금은 국민들이 뜻을 모아 알아서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열심히 할 거다. 이 시점에서 정부가 나서서 꺼낼 사안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 수색작업에 나섰다 숨진 민간잠수사 이광욱(52)씨의 영결식이 지난 10일 그가 살던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있었습니다. 범시민 추모 영결식이었습니다.
영결식장엔 박근혜 대통령, 정홍원 국무총리,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등이 보낸 조화가 세워졌습니다. 식장 뒤쪽에 이씨의 고교 친구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지켜보고 있었지요. 숭고한 죽음이 그저 안타까운 그들이었습니다. 이씨가 사망한 뒤 친구들은 빈소를 지켰습니다.
이씨는 전남 진도 구조현장으로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오랜만에 애국하러 간다’는 문자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됐습니다. 생업인 횟집 일을 식구에게 맡기고 출발했습니다. 아들의 친구도 세월호에서 희생당했기에 마음은 더 급했을 겁니다.
고교 동창들은 “평소에도 팔당호에서 숨진 억울한 죽음들을 두려움 없이 건져 내던 용감한 친구”라고 합니다. 남양주시 소년소녀가장 돕기에도 앞장섰고요.
그런데 동창들이 지키던 빈소에는 조화가 숲을 이루고, 기자들로 북적댔지만 정작 관련기관 인사의 조문은 뜸했답니다. 그나마 몇몇 관련 기관장이 조문을 오면 그를 모시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어서 친구들은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습니다.
그 무렵 MBC 한 간부가 이씨의 죽음과 다이빙벨 투입실패를 놓고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왜 잠수부를 빨리 투입하지 않았느냐며 떠민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라고 뉴스시간에 말했습니다. 친구들은 실소를 했습니다. 이 간부는 앞서 유가족을 폄하해 MBC노조로부터 지탄을 받은 바 있었습니다.
동창들은 “우리 친구 광욱이는 결코 떠밀려가지 않았다. 조그마한 힘이라도 되겠다고 사비 들여 그 멀리까지 간 것이다. 그런데 그 순수성이 그렇게 곡해할 수 있나”라며 분을 삭였습니다.
이씨는 UDT 출신 아버지에게서 잠수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 친구들에게 아버지는 부끄러운 존재였다고 합니다. 팔당호와 한강에서 아버지가 사체를 건지는 걸 자주 봤기 때문이죠. 수해, 사고, 자살 등 이러저런 이유로 숨진 사람은 누군가 건져 가족의 품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씨 아버지는 그 일대에서 몇 안 되는 전문가였습니다.
이씨는 철이 들고,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분임을 알게 됐습니다. 팔당호와 한강에서 인명구조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자 가족에게 아버지는 신과 같은 존재였던 겁니다.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이씨는 횟집을 하며 아버지의 대를 이었습니다. UDT 전우회에서도 수상구조 전문가였던 이씨 부자는 잘 알려졌습니다.
이씨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세상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우리들의 선한 이웃입니다. 이들을 위해 네티즌들은 “당신이 하신 일을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감사하고 있습니다”라는 댓글로 응원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지 7일로 22일째지만 인터넷에는 여전히 후폭풍이 거셉니다.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은 유사 이래 최악의 인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면서 보혁 논쟁이 실시간으로 벌어집니다. 각종 망언을 쏟아낸 사람들의 순위를 매기는 투표가 등장할 정도로 여론 재판도 뜨겁습니다. 해양경찰청과 민간 구난업체 언딘, 다이빙 벨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합니다.
파문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번지는 분위기입니다. 지난달 23일 미주 인터넷 커뮤니티인 ‘미시USA’ 게시판에는 “뉴욕타임스(NYT)에 한국 정부의 나태·무능·언론통제를 고발하는 광고를 내자”는 글이 올라왔었습니다. 순식간에 조회수는 폭증했고 크라우드 펀딩업체 인디고고를 통한 광고비 모금이 시작됐습니다. NYT 흑백 전면광고는 약 6만 달러(약 6200만원)가 필요한데 모금 첫날인 지난달 29일에만 5만 달러가 모였습니다. 6일까지 모인 액수는 무려 13만 달러가 넘습니다.
인터넷에 공개된 광고 시안은 세월호가 거꾸로 바다 속에 침몰한 그림과 함께 ‘Sewol Ferry has sunk, so has the Park Administration(세월호와 함께 박근혜 정부도 침몰했다)’을 제목으로 담고 있습니다. 시안에는 476(탑승객 인원) 324(안산 단원고 학생 인원) 120(구조를 위해 기다린 시간·분) 1(왜 사고 첫 날 구조하지 못했나) 0(실종자 중 구조된 인원) 등 이번 참사와 관련된 상징적인 숫자들이 적혀있습니다.
광고 캠페인을 주도한 측은 “대부분의 한국 국민들은 사실을 은폐·왜곡 보도하는 주요 방송과 대형 일간지들에 의해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세월호 침몰로 드러난 현 정부의 언론 탄압과 반민주주의 행보를 규탄하고자 한다”고 밝혔습니다.
상당수 네티즌은 광고 시안에 동감하는 분위기지만 세월호 희생자 추모보다 박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점 때문에 역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삐뚤어진 애국심’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누워서 침 뱉기’ ‘한국 정부 비판이 핵심이라면 한국 매체에 광고를 싣자’ 등 다양한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한 외국인이 SNS에 올린 글이 며칠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이번 참사로 한국의 국론은 확실히 분열된 것 같다. 상처가 치유되는데 아주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온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46일째인 28일 단식을 중단했습니다. 큰일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하루빨리 건강을 되찾길 바랍니다.
세월호 유가족대책위원회는 김씨가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광화문 농성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가족의 간곡한 요청으로 잠시 중단한 것이라는군요. 동조 단식에 나선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지지자들은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문재인 의원은 김씨를 따라 단식을 중단했네요.
그런데 이번 단식에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여야의 정쟁 속에 김씨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단식을 비난하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급기야 자유대학생연합이라는 대학생 단체는 페이스북을 통해 “28일 광화문 KT 사옥 앞에서 ‘생명 존중 폭식 투쟁’을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삼각김밥 400여개와 생수를 준비해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하겠다는 겁니다.
공지문엔 “죽음의 상징, 네크로필리아들의 단식 투쟁에 맞서는! 생명의 상징, 바이오필리아들의 삶의 향연, 폭식 투쟁”이라고 적혔습니다.
단식 농성장 앞에서의 폭식 퍼포먼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단식 참가자들을 조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네티즌들은 “어이없는 짓을 벌이려 한다”며 질타했습니다. “나라가 어찌 되려고 대학생들이 저러나” “손가락질하러 가야겠다”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짓인가” “어떻게 저런 인성을 가질 수 있느냐”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단식은 되고 폭식은 왜 안 되냐”라거나 “전경들 눈앞에서 햄버거 흔들던 건 착한 퍼포먼스였나”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씨가 단식을 중단하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피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대련 김상훈 대표는 “서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오후 5시 예정됐던 폭식 투쟁이 성명서 낭독으로 변경됐다”고 알렸습니다. 그는 또 “탈 없이 단식을 중단해 다행이다. 이번 행사는 목숨을 위협하는 단식을 멈추게 하기 위함이지 세월호 유족을 비하하고 조롱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언젠가부터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막말을 뱉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전쟁터가 된 트위터와 뉴스 댓글창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죠.
김씨를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가 과하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단식을 반대하고 비판할 수도 있죠. 왜 저렇게 벼랑 끝에 선 사람처럼 행동하나 궁금해 하고, 단식의 이유를 이해한 후라면 더 좋겠지만요. 문제는 인간에 대한 예의입니다. 자식을 잃고 절규하는 한 인간의 개인사를 파헤치고, 목숨을 건 행동을 조롱하는 건 정도를 벗어난 것 아닐까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간다면 우리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더 이상 시청률이라는 알량한 숫자에 취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보도원칙이 망가지는 모습을 외면한 것에 대해 뼈저린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보도해온 방송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7일 KBS 내부 게시판에는 세월호 참사 보도를 비판하는 입사 초년생 기자들의 글이 이어졌습니다. ‘반성합니다’란 말머리가 달린 글을 통해 이들은 “뉴스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목소리가 있었다” “재난주관방송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보도를 했는지 반성해야한다” “침몰하는 KBS 저널리즘을 이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고 토로했습니다. “유가족들이 구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울부짖을 때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었다” “현장에서 우리는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중의 기레기였다”는 자기비판의 글도 함께 올라왔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수를 교통사고 사망자 수와 비교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김시곤 보도국장이 지난 9일 의혹을 부인하면서 길환영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보도국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며 자리를 내놓은 것은 공영방송의 정확한 보도에 최소한의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습니다. 12일부로 KBS 보도국장은 백운기 시사제작국장으로 교체됐지만 논란은 계속될 듯합니다. KBS 기자협회는 이날 오후 8시 긴급 기자 총회를 열고 외압의 실체부터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의 임명동의제와 임기 등을 논의했습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이날부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자성의 목소리는 MBC에서도 이어졌습니다. MBC 기자회 소속 121명의 기자들은 이날 자사의 세월호 보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모욕하고 비난했다”면서 “취재를 지휘해온 전국부장이 직접 기사를 썼고 최종 판단해 방송이 나갔다. 이는 보도참사였다”고 꼬집었습니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충실하게 보도했고, 해경의 초동 대처와 수색·재난 대응체계 등 정부의 책임과 관련해서는 소홀했다는 자평이 이어졌습니다.
12일 사고 발생 27일째. 대한민국은 여전히 침몰중입니다. 국가 재난 관리 시스템이 침몰했고, 이를 움직여야 할 리더십이 실종됐고, 무너지는 온 국민의 마음처럼 사회 곳곳이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나락으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침몰 중인 대한민국은 이제야 진짜 민낯을 돌아보는 아픔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기레기의 몸부림, 이들의 SOS 사인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인터넷에서 노란 리본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의 SNS나 인터넷·모바일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에 걸린 노란 리본을 이미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봤다면 자신의 프로필 사진에도 노란 리본을 걸어볼만 합니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온라인 캠페인이기 때문이죠. 정치적이거나 상업적인 목적이 없고, 누군가 강요하지도 않은 네티즌의 자발적인 캠페인입니다.
캠페인은 22일부터 급물살을 탔습니다. 사고 발생 이틀 만인 지난 18일 한 대학생 단체가 블로그를 통해 배포한 그림이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으로 넘어가면서 네티즌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내리면서 참여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국을 위한 기도(#PrayForSouthKorea)’ 해시태그 운동과 함께 SNS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 캠페인입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인 리버풀은 공식 한국어 트위터 계정(@LFC Korea)에 노란 리본을 달고 “동참합니다”라고 적었습니다. 가수 심은진은 직접 디자인한 노란 리본 그림을 트위터에 올려 네티즌의 캠페인 참여를 독려했죠.
캠페인은 인터넷 공간에서만 맴돌지 않았습니다. 리본을 직접 제작해 캠페인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신원을 밝히지 않은 성인 남녀 5명과 어린이 1명은 이날 오후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 본사 주변에 노란 리본 120여개를 달았습니다. 이들은 “사고로 실종된 사람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희망하는 마음으로 리본을 달았다”고 말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은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원정경기에서 노란 리본을 유니폼에 달고 출전했습니다. 경기에서는 졌지만 많은 박수를 받았죠.
참여 방법은 간단합니다. 인터넷 어느 곳에서든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라는 문구가 적힌 노란 배경의 검정 리본 그림을 내려받아 자신이 이용하는 SNS나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등록하면 됩니다. 한때 인터넷에서는 “그림을 사용할 경우 저작권료로 500만원을 청구한다”는 유언비어가 떠돌았지만 그림을 배포한 대학생 단체는 블로그를 통해 비상업적 목적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노란 리본은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등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포로나 실종자의 생환을 염원하는 가족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과거 마을 어귀의 나무나 광장, 관공서에 물결쳤던 노란 리본이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온라인 캠페인 형태로 확산된 겁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서, 카카오톡 메신저의 친구목록에서 노란 리본이 늘어날수록 사고 책임자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에 대한 위로의 마음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여러분은 노래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신나고 흥겹죠. 각종 모임의 분위기를 띄우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래가 반드시 기쁠 때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망국의 아픔을 고스란히 상징한 ‘눈물 젖은 두만강’(1936)은 서민의 애환과 설움을 달래는 위로였고, ‘아침이슬’(1970)과 ‘상록수’(1977)는 군부 독재의 엄혹한 시대 속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이들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로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노래가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영 위치가 어정쩡합니다. 극장에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영화가 상영 중이고 TV에선 드라마와 예능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노래는 아직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가수들의 신보가 무더기로 연기됐고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은 아직 재개 날짜조차 잡지 못했습니다. 지난주 인디 가수들이 모여 진행하려던 ‘뷰티풀 민트 라이프’ 공연도 경기도 고양시 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하루 전날 밤 취소됐습니다.
갑자기 노래가 된서리를 맞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1990년대 이후 대형기획사 위주로 급속도로 재편된 가요계 문화와 연관이 깊습니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진 댄스·아이돌 음악은 노래의 기능을 축제와 소비 성격으로 굳어지게 했습니다. 슬픔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위로를 건네는 역할은 어느새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뷰티풀 민트 라이프’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을 부르려던 인디 가수들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동안 노래는 엄청난 재난 앞에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와 희망을 전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85년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 밥 딜런 등 뮤지션 50여명이 아프리카에서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부른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대표적입니다. 이 노래를 담은 싱글 음반은 ‘역사상 가장 빨리 팔려나간 앨범’이란 수식어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2000만장 넘게 판매되면서 80년대 최다판매 싱글 음반이 됐습니다. 국내에선 99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으로 뭉치자는 뜻을 담은 ‘지금 다시 하나 되어’를 50여명의 가수들이 함께 불렀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함께 슬퍼하고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면 절대 이겨낼 수 없습니다. 가요계가 합심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기억하는 마음으로, 또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노래를 한 번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곡과 가사를 만들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뮤지션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문화기업을 표방하고 있는 CJ나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등이 나선다면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겠죠. ‘위 아 더 월드’ 수익으로 장만한 구호물자를 실은 대형 화물기가 미국을 이륙하자 가수들이 눈물을 흘린 것처럼 노래 한 곡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글 : 전정희 김현섭 조현우 김철오 김미나 김민석 박상은 기자 jhjeon@kmib.co.kr
정리 : 김민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