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와 임세령 대상그룹 상무의 데이트 사진이 공개돼 새해 첫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그중에서도 임 상무가 입고 있는 패션 아이템의 가격에 이목이 쏠렸죠. ‘임세령 재벌룩’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게시물엔 ‘재킷 한 벌, 가방 하나가 수천만원에 달한다’는 놀라운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자 언론 매체들도 “임 상무가 착용한 의상의 가격을 모두 합치면 6000만원을 호가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걸어 다니는 전셋값’ ‘한 번 움직이면 억 소리’ ‘코트가 3700만원?’ 등 자극적인 제목이 잇따랐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심하게 과장됐거나 터무니없는 헛소문이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의문 제기도 네티즌들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이들은 “에르메스, 버버리 등 유명 브랜드도 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름이 있어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확인해보니 ‘걸어 다니는 전셋집’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적혀있는 가격은 대부분 ‘허구’였습니다.
우선 ‘미놀로×힐피거’ ‘골로친스키’ ‘브라운토닉’ ‘릴리 마들레디나’ ‘에크니스 울프릭’ 등의 이름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 브랜드로 확인됐습니다. 유명브랜드 이름에서 앞뒤를 떼어내 조합하거나, 그럴싸하게 지어낸 이름입니다. 따라서 네티즌들이 달아 놓은 ‘미놀로X힐피거 워크 문 430만원’ ‘골로친스키 블랙 밴딜 진 740만원’ 등은 허위 가격표입니다.
그중 ‘미놀로 블라닉’은 유명 구두 브랜드 ‘마놀로 블라닉’을 잘못 쓴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썼다고 한다면 네티즌들이 써 놓은 가격 420만원이 맞을까요. 미국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살펴보니 저렴한 구두는 600~700달러, 값나가는 구드는 1150~1400달러 정도였습니다. 환산하면 최고 160만원 선입니다. 국내로 들여올 때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점을 고려해도 420만원엔 턱없이 못 미치는 가격이군요.
또한 임 상무가 입고 있는 갈색 코트 역시 ‘버버리 본 보이지’라는 설명이 무색할 정도의 다른 브랜드 상품이었습니다. 발렌티노의 2014년 Pre-Fall 콜렉션에서 선보인 코트로, 약 400만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부 매체는 3700만원짜리 코트라고 보도했습니다.
정리하자면 네티즌들이 장난삼아 만든 게시물이 뉴스보도로 이어진 겁니다. 일부 매체들은 뒤늦게나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정정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을 다룬 기사가 지금도 인터넷을 떠돌고 있습니다.
최근 대부분 매체들은 누가 더 선정적인가를 겨루기라도 하듯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무분별하게 찍어내고 있습니다. 임 상무가 입은 옷의 가격을 밝히는 게 뉴스가치가 있는 사안인지도 의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단어가 일상어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조롱과 비난을 당해도 딱히 할 말이 없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2015년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