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누구라도 분노할 만한 사연이 인터넷에 올랐습니다. 교차로에서 구급차에 길을 비켜주기 위해 정지선을 넘었다가 벌금을 물게 됐다는 내용이었죠. 글 작성자 이모(25)씨는 그림을 그려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대한법률구조공단과 경찰청 민원실로부터 답변을 받아내기도 했는데, 사실 “과태료 처분을 피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네티즌들이 공분하게 만든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은 이씨가 정성을 쏟아 억울한 심정을 알리고 있는 점을 들어 이 사연이 사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 몇몇 매체가 기사화했고, 쿠키뉴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12일 ‘구급차 진로 양보했다 벌금 먹은 사연에 공분’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사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었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날 인터넷엔 ‘구급차 진로 양보했다 벌금 먹은 사연’ ‘구급차 비켜줬더니 과태료?’ ‘생명보다 법이 우선인가 네티즌 조롱해’ 등의 제목으로 많은 기사가 올랐습니다. 해당 사연은 크게 이슈화됐습니다.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켰죠. 이씨가 올린 글만 보면 앞뒤가 꽉 막힌 ‘탁상행정’에 ‘모세의 기적’이 위협받을 형국이니 오죽했을까요.
이들은 “길을 비켜줘도 벌금, 안 비켜줘도 벌금이면 어쩌란 말이냐?” “앞으로 한 사람의 생명이 위급 상황일지라도 법은 꼭 지켜겠습니다” “난 오늘부터 절대 양보 안 해 준다” 등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 네티즌은 “공무원들이 괜히 일 복잡해지니까 귀찮아서 저렇게 답변하는 거 아니냐”며 불신을 드러냈죠.
하지만 경찰이 확인에 나선 결과 이씨가 올린 사연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거짓 글을 올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경찰청은 14일 “이씨가 올린 글은 모두 거짓”이라고 밝히는 자료를 보내왔습니다. 경찰청이 확인한 결과 이씨는 구급차에 진로를 양보하기 위해 신호를 위반한 게 아니라 적색 신호를 무시하고 교차로(편도 4차선)를 통과하다가 무인단속 카메라에 촬영됐습니다. 즉, 기사들의 소재가 된 이씨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작된 글이라는 겁니다.
경찰은 인터넷 사이트에 처음 글을 올린 네티즌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일부를 가린 차량 번호를 알려왔습니다. 그는 왜 거짓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일까요? 설마 거짓 글을 통해 과태료를 면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2012년 이후 과속·신호위반 등 상습적으로 교통법규를 위반했다”며 “무인단속 카메라에 신호위반으로 단속된 경우는 이번에 논란이 된 1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구급차에 진로를 양보하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142조 규정에 의해 과태료 등 벌과금이 면제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과태료 걱정 없이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라는 말로 풀이됩니다. 또 거짓글을 올린 이씨는 경찰과의 통화에서 “더 상황이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답변을 했다는군요.
언론매체들은 인터넷에 오른 글에 대해 사실 확인을 확실히 거치지 않고 보도해 사회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쿠키뉴스 역시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갔습니다. 뒤늦게나마 잘못된 사실임을 인지하고 AS뉴스를 만들게 됐습니다.
다만 대한법률구조공단과 경찰청 민원실에서 나온 안일한 답변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 같은 일이 발생했다 해도 “정지선을 넘을 것까지 요구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과태료 처분은 피하기 어렵습니다”라는 이상한 답변이 올 것 같기 때문이죠. 성숙한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만큼 성숙한 행정이 펼쳐지길 바랍니다.
김민석 강창욱 기자 ideae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