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 궁성의 마지막 흔적’…문화재청 경주 월성 본격 발구조사

‘신라 천년 궁성의 마지막 흔적’…문화재청 경주 월성 본격 발구조사

기사승인 2015-03-18 11:46:55

[쿠키뉴스=송병기 기자]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12일 고유제를 시작으로 조사한 사적 제16호 ‘경주 월성(慶州 月城, 이하 월성)’ 중앙지역(5만7000㎡)의 시굴조사 성과를 공개했다.

이번 시굴조사는 지하 매장구조의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하고자 실시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건물지와 담장의 흔적들은 유적 내 최상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삼국 시대에서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친 토기와 기와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 시대 월성의 마지막 단계의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조사지역에서는 기단, 초석, 적심 등 건물지 6동과 담장 12기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 중 정면 12칸, 측면 2칸의 3호 건물지(28m×7.1m)는 적심 위에 초석을 올렸고 담장과 배수로가 딸려있다.

유물은 고배, 병, 등잔, 벼루, 막새기와, 귀면기와, 치미 등 통일신라 시대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토기에는 ‘井’, ‘口’자 형태의 음각기호가 새겨진 것도 있고, 월성의 해자와 안압지에서 이미 발견된 적이 있는 ‘儀鳳四年 皆土(의봉4년(679년) 개토)‘, ’習部(습부)‘, ’漢(한)‘자명의 평기와도 있다.

경주 월성 조사는 천년 고도 경주의 역사정체성을 규명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인 ‘경주 역사문화 창조도시 조성(왕궁 복원)’의 이행을 뒷받침한다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그리고 1914년 일제가 남벽 부근을 처음 파헤친 지 100년 만에 우리 손으로 실시한 최초의 내부조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월성은 신라 천년 수도의 궁성(宮城)으로, 서기 101년 파사왕(婆娑王)이 처음 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삼국유사에 신라의 국보였던 전설의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국가의 중요시설로 알려져 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성과를 토대로 월성 정밀발굴조사의 전환을 오는 20일 개최될 문화재위원회에 부의할 예정”이라며 “조사품질 향상을 위해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서울 풍납토성과 경복궁, 익산 왕궁리유적, 강릉 굴산사지 등 주요 국가사적을 조사한 인력을 대거 투입해 조사단의 구성을 적극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songbk@kukimedia.co.kr
송병기 기자
songbk@kukinews.com
송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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