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가게 영업을 그만두려 한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 동안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가게가 한가한 시간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만 손님이 많은 저녁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전부터 앉아 공부하는 학생들로 인해 자리를 찾지 못하고 나가는 손님이 부지기수다. 테이블 회전율이 높지 않아 매출은 계속 급감하고 있다. A씨는 “대학가에 위치한 자리라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시작했지만 도저히 가게 운영을 할 수 없을 정도”라며 “매장을 찾아준 손님에게 나가라 말할 수도 없고 골머리만 썩고 있다”고 토로했다.
#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매장 개점 시간에 들어와 커피 한 잔을 시킨 후 마감 시간까지 앉아 있는 손님도 있다”며 “점심, 저녁 시간에는 책이나 필기도구로 자리를 맡아 놓고 식사를 하고 오는 분들도 많다. 심지어 도시락을 싸와 먹는 분들도 있다”고 밝혔다. 개인의 문제라 볼 수도 없다. 관계자는 “스터디 그룹으로 보이는 단체 손님 경우에도 5~6명이 입장해 커피를 한 잔만 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개인 가게가 아니다 보니 해결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공부를 꼭 카페에서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털어놨다.
“공부할 공간이 정말 ‘카페’밖에 없습니까?”
큰 창이 있는 커피전문점에 앉아 책을 편다. 따뜻한 햇볕과 쌉싸름한 커피가 공부의 재미를 돋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거나 상상해 봤을 여유로움이다. 평온한 풍경만큼 대비되는 것이 있다. 카페를 운영하는 점주들의 마음이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한나절 이상 공부 하는 손님들이 몇 년 사이 부쩍 늘었다. 대학가는 더하다. 특히 시험 기간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손님이 많다는 건 어느 자영업자나 염원하는 그림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낮아도 너무 낮은 테이블 회전율에 울상을 짓고 있는 카페가 늘고 있다.
다른 손님들의 불만 사항도 적지 않다. 회사원 B씨는 “카페에 올 때마다 한 번씩은 공부하는 사람들을 본다”며 “수다를 떨다가도 옆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조용히 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또 “한 두 시간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을 넘는다면 수익이 나오지 않을 텐데 손님 입장에서 봐도 사장이 답답할 것 같다”고 전했다.
“떠드는 건 되고 공부는 안되나요?”
사업자들의 입장은 안타깝지만 사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들을 비판할 근거는 마땅치 않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돈을 지불하고 커피를 사 먹는 것은 여느 고객들과 다르지 않다. 오랜 시간 카페에서 머무르는 것도 그들만의 특징이라 보기 어렵다. 한 끼 식사에 육박하는 커피 값에 이른바 ‘자릿세’가 포함되어 있으며 카페는 커피와 함께 ‘공간’을 파는 곳이란 건 이젠 보편적인 생각이다.
아침 일찍 취재를 나가 대학가 근처 커피전문점을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카페서 공부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서울 한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 C씨는 “조용한 도서관이나 독서실보다 카페가 오히려 공부가 더 잘 된다”며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은 좀 그렇겠지만, 공부 자체가 타인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실제 도서관보다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말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백색소음’ 때문이다.
백색 소음이란 넓은 주파수 범위에서 거의 일정한 주파수 스펙트럼을 가지고 전달되는 소음을 뜻한다. 사람들이 잡담을 나누거나 찻잔이 부딪치는 소리 등이 이에 포함된다. 지난 2012년 미국 시카고대 소비자연구저널은 50~70데시벨(dB)의 소음은 완벽하게 조용한 상태보다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백색 소음이 되려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대학생 D씨 역시 “이런 논란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공부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다. 카페에서 떠드는 것은 되지만 공부는 안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주변에 시끄럽다고 조용히 해 달라는 것도 아닌데. 오래 앉아 있는 것도 비싼 커피값에 포함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카페 공부, 그 이유 있는 행동’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이재연 교수는 25일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를 공간심리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사람은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자궁과 비슷한 구석진 곳을 찾게 되고 큰 공간 보다는 작은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도서관 열람실과 같이 넓은 장소보다 작고 아늑한 곳을 선호하게 되는 건 당연한 이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계’ 설정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모든 사람이 공부하는 장소다. 자연스레 경쟁심리가 생긴다. 이로 인해 압박감을 느끼고 타인을 ‘라이벌’로 생각하게 되는데 개인 과외 등으로 혼자 공부하는 것에 익숙해진 요즘 세대들이 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결국, 경쟁심리를 떨쳐 버리기 위해 마음이 맞는 몇 명, 혹은 혼자서 라이벌이 없는 카페를 찾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여기서 남성과 여성에 따라 심리 분석이 또 달라지는데 남성은 타인과의 관계 형성이나 제한된 공간에 있어서 ‘파이터 근성’을 발휘한다”며 “결국 ‘저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충동이 일어나 라이벌이 없는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의 경우 두 명 이상이 같은 공간에 있다면 그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본능이 작용하는데 새로운 친구를 형성하게 되고 불필요한 배려심을 베풀지 않기 위해 도피하게 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