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담배 왕국을 꿈꾸었다”

“정조는 담배 왕국을 꿈꾸었다”

기사승인 2015-04-02 11:15:55
"할아버지 강백년(1603∼1681) 79세, 아버지 강현(1650∼1733) 84세, 아들 강세황(姜世晃.1713~1791) 79세. 이들이 산 때가 조선 중기임을 고려할 때 기록적인 수명을 향유한 3대다. 아마도 장수 집안이었나 보다.

핏줄 말고 3대를 잇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골초라는 사실이다. 담배가 수명을 단축한다는 의학 쪽 연구성과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이들을 보고는 무엇이라 할지 모르겠다. 혹시 ""담배를 안 피웠으면 더 장수했을 것""이라고 할까?

반면 담배를 금지하는 집안도 있었다. 성호 이익 역시 가풍이 그랬기 때문인지 금연론자였다. 그의 친형으로 이해(李瀣)라는 사람이 있다. 그 역시 담배는 피우지도 않으면서 불과 12살인 1658년 '남초가'(南草歌)라는 담배 예찬가를 지었다.

""어느 날 담배가 바다 건너 팔도에 두루 퍼졌으니, 영웅이 때를 기다려 나타난 것과 똑같음을 알겠노라.""(一日渡海遍八荒 亦知英雄得時見)

남초는 말할 것도 없이 그 풀이 들어온 통로가 남쪽 일본이라 해서 붙은 담배의 별칭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정벌한 스페인을 통해 세계로 퍼진 담배가 정확히 언제 조선에 상륙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610년 무렵이었음은 여러 기록이나 정황으로 봐도 대과가 없다.

애초 전공은 한문학도지만 한국문화사로 영역을 확장한 안대회(53) 성균관대 학문학과 교수가 최근 '담바고 문화사'(문학동네)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대학 1~3학년 때 담배를 피우다가 무지 고생해서 끊었다""는 안 교수는 정조 연간에 주로 활약한 문필가 이옥이라는 사람이 담배를 성인의 경지로 끌어올려 그에 대한 것을 정리한 연경(煙經)을 2003년 발굴한 데 이어 2008년에는 그 역주본을 낸 인연이 있다.

이를 계기로 담배에 관한 기록이라면 닥치는 대로 모으는 그에게 이번 책은 그 중간 결산물이라 할 만하다. 1600년 이래 커피에 밀려나기 시작한 100년 전까지 담배가 걸은 역사를 대단히 평이한 필체로 정리했다.

담배를 빼고는 ""문화를, 취향을, 문물의 전파와 정착을, 사회상을"" 말하기 어렵다는 안 교수는 담배가 ""17세기 초기 이래 한반도의 절대다수가 즐긴 기호품의 제왕이자 경제의 블루오션이었고, 일상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었다""고 말한다.

그에 걸맞게 이번 책은 담배의 온갖 측면을 정리한다. 예컨대 담배를 지칭하는 여러 명칭 중에서 남쪽에서 온 신비한 풀이라는 뜻의 남령(南靈) 혹은 시름을 잊게 한다는 의미인 망우초(忘優草)는 초창기 담배가 실은 약재의 일종으로 수입된 정황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담배 예찬론은 끊임없었다. 정조와 정약용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담배에 엄격한 할아버지 영조와는 달리 줄 담배인 정조는 온 인민이 담배를 즐기는 국가를 꿈꾸었다. 신하들에게 담배 예찬론을 지어 올리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애착이 오죽하겠는가?

담배는 조선후기 동아시아 경제를 논할 때도 매우 중요한 주제다. 담배는 널리 알려졌듯이 동래 왜관을 통해 일본에서 수입됐으며, 그렇게 상륙한 조선 담배는 자생력을 갖추어 이번에는 중국으로 치고 들어갔다.

병자호란의 그 유명한 만주족 장군 용골대는 담배라면 환장했으니, 조선에 참전한 군인들을 통해 중국땅으로 담배는 급속도로 퍼져 나간 것이다.

하지만 담배가 기호식품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동시에 그 해악을 경계하는 움직임도 끊임없었다. 금연론 역시 그만큼 거세게 일어난 것이다.

나아가 담배 예절도 생겨났다. 지금의 우리에게 익숙한 담배 예절로 어른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예절도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후기에 닿는다. 그러니 임금 앞에서 신하들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됐다. 이는 동시대 중국이나 일본 담배문화와는 확연히 다른 대목이다.

안 교수는 이번 책에서 '담배와 경제'라는 장을 별도로 할애하는데, 이 부분은 담배가 단순히 기호식품에 그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회경제를 움직이는 한 축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담배를 끊은 지 오래라 ""이제는 담배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안 교수는 이런 문화사 정리가 자칫 담배 예찬론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담배 예찬론과 담배 문화사를 구별하지 못할 독자는 없을 것이므로 괜한 기우처럼 들린다.

478쪽, 3만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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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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