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 ‘스물’로 돌아온 배우 김우빈(본명 김현중·26)을 다시 만났다. 첫 주연작 ‘기술자들’(2014) 이후 3개월 만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안녕하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눈길이 닿자마자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은 그대로였다.
테이블에 마주앉았는데 붉게 충혈 된 그의 눈에 먼저 시선이 꽂혔다. 연일 빡빡한 홍보 일정을 소화하고 있기에 그럴 만도 하다. 인터뷰를 시작하며 “이렇게 바쁘셔서 어떡하나”라고 걱정했더니 그는 “괜찮아요”라며 함박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다른 작품을 하고 있지 않아 예전보다 훨씬 여유가 있다고 했다. 이런 밝고 경쾌한 면은 영화 속 치호와 얼핏 겹쳤다.
스무 살이 된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 ‘스물’에서 김우빈은 이성에만 관심이 많은 치호 역을 맡았다. 그저 “숨 쉬는 게 목표”인 치호는 아직 꿈을 찾지 못한 백수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만화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우(이준호), 대기업 입사를 꿈꾸며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나가는 대학생 경재(강하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실제 스무 살 때 김우빈과도 비슷한 구석이 별로 없다. 당시 그에겐 모델이라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대학도 모델학과로 진학한 그는 “드디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됐다”는 행복감에 밤낮 연습과 공부에 매달렸다. 그런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치호의 마음을 왠지 더 알 것 같았다”고 했다. 그때 느낀 운명 같은 끌림이 이 영화 출연을 결정한 이유가 됐다.
“처음에 시나리오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일정상 사실 무리였긴 했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꼭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만약에 다른 배우 분께서 하셔서 개봉한 걸 보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은 거예요. 후회할 것 같아서 무리해서라도 하자 싶었죠. 딱 한 번 읽고 치호 하겠다고 바로 사무실에 전화했어요.”
자신이 겪은 이야기이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김우빈은 “경재 대사 중에 ‘스무 살이 좋은 때라고들 하는데, 피부가 좋다는 건지 뭐가 좋은 건지 모르겠다’는 말이 가장 공감이 갔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도 (스무 살 때) 그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며 “딱 19~21세 이맘때 많이들 헷갈리는 부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땐 그렇잖아요. 내가 진짜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데 답은 안 내려지고. 연애를 하면서도 ‘이게 사랑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렇게 감정을 헷갈려하는 풋풋한 스무 살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던 ‘친구2’(2013) ‘기술자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가벼워졌다. 보다 현실적인 캐릭터였기에 그랬을까. 작품 자체가 워낙 코믹·발랄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힘을 뺀 그의 연기가 한층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스물’에서 보여준 연기에 대한 칭찬들이 많다는 말에 김우빈은 “그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일단 저는 제 연기를 편하게 못 본다”며 “보면서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싶다”고 쑥스러워했다. 오히려 호흡을 맞춘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선배님들도 마찬가지라고들 하시지만, 전 제가 연기했던 거 보면 오그라들더라고요. 너무나 못 봐주겠고(웃음). 다행히 경재와 동우가 좋은 그림을 만들어 줬어요. 대본에 없는 부분들까지 많이 고민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다행이었고, 고마웠어요.”
김우빈은 이번 영화에서 “정말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고 했다. 강하늘과 이준호는 빠른 1990년생이지만 ‘쿨’하게 친구가 되기로 했다. 또래들이니 금세 친해졌고, 만나면 그렇게들 수다를 떨었다. 촬영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해 NG가 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편안하게 뛰놀 수 있는 판을 짜준 이병헌 감독 역할도 컸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현장 분위기는 김우빈에게 ‘힐링타임’이었다. 그런 인연들 덕에 ‘스물’은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도 매일 단체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어요. 요즘엔 매일 12시 지나면 (박스오피스) 스코어 확인하고 그 얘기하고(웃음). 또 각자 스케줄들이 있으니까 서로 파이팅 해주고 그래요. 만나면 그렇게 시끄러워요. 할 말도 많고. 자꾸 보고 싶고 오래 보고 싶어요. 너무 좋은 친구들을 얻었죠. 참 고맙고 감사한 작품이에요.”
여러 선배들과 함께했던 ‘기술자들’ 때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김우빈은 “그땐 (연기) 수업을 받은 느낌이었다면 여긴 놀러온 느낌이었다”며 “거창한 표현이긴 하지만 정말 친구들이랑 즐거운 여행 다녀 온 느낌이 든다”고 전했다. ‘원톱’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점도 달랐다. 그는 “그런 부담감은 좀 덜한 게 사실”이라면서 “작품을 고를 때 분량에 대해선 전혀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은 그냥 느낌이 참 좋았다”며 웃었다.
어느 덧 연기 경력은 4년을 넘었다. 모델 생활을 하다 출연한 2011년 KBS2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시작이었다. 당시엔 살짝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도 했다. “스스로 고민해서 연기한다기보다 그냥 연습한 거 감독님께 검사 맡는 느낌이 컸다”고 그는 회상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마음속으론 ‘제발 오케이(OK) 나라’ ‘또 시키지 마’라고 수없이 외쳤단다.
현장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건 KBS2 ‘학교 2013’(2012)였다. 또래 배우 이종석 등과 함께하면서 조금씩 변했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훨씬 더 편안해졌다. 이젠 카메라 앞이 무섭지도 않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연기는 “못 봐 주겠다”고 그는 얘기한다. “편안한 건 있는데 연기를 잘해야 문제죠. 편안하다고 되는 게 아닌데(웃음). 일단 열심히는 하고 있어요.”
배우로서의 성장만 있었던 건 아니다. SBS ‘상속자들’(2013) 이후 그에겐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해외에도 수많은 팬을 거느린 한류스타가 됐다. 그럼에도 김우빈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다.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다짐이 있어서다.
“뭔가 자꾸 불편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익숙해지는 게 좀 무섭더라고요.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익숙해지니까 당연하게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것 같아서 자꾸 익숙함을 불편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예전보다 지금 더 누리고 있는 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려 하고요. 그래서 감사일기도 적으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에 그렇게 갈구했던 시기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더 감사함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 마음을 놓치고 싶지도 않고요.”
감사일기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렸다. 김우빈은 “그냥 제가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이라며 “길게 쓰는 건 아니지만 일주일에 3~4번 정도는 쓰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담기는 내용들이 참 바람직하고 귀엽다.
“오늘 감사했던 것들을 적어요. 정말 특별한 일 없었으면 하다못해 ‘오늘 늦잠을 안 자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든지(웃음) 그런 거라도 적으려고 하고요. 근데 요즘엔 사실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그런 것보다 일에 대한 것들이 많이 적혀있죠. 영화에 관련된 것들.”
기억나는 문장을 하나 소개해달라고 했다. ‘기분 좋은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듣자마자 ‘김우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그이기 때문이다.
“‘스물’이 많은 관심을 받고, 많은 관객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그러다 보니 괜히 손익분기점을 넘는다거나 하는 상상을 하게끔 되더라고요. 그런 것에 대한 감사함이 커요. 그리고 바로 개봉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참 감사하고요. 열심히 찍어놔도 바로 개봉 못하는 영화들이 많기 때문에 그 시기가 어떻게 됐든 참 감사하죠.”
다행히 영화는 3일 손익분기점(160만)을 넘어섰다. 그의 ‘기분 좋은 상상’들이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걸까. kwonny@kmib.co.kr, 사진=박효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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