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권남영 기자] “모르겠어요.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친구 같기도 하다가 여행 같기도 하다가. 내 존재의 목적이고 이유이기도 하지. 음…, 때로는 나의 그리움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가, 또 어떤 때는 너무 싫을 때도 있어요. 나쁜 놈이라 그러기도 하죠. ‘넌 나쁜 놈이야.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니’(웃음).”
‘당신에게 영화란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강제규(53)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한 단어씩 떠듬떠듬 생각해 냈다. 애초에 한 마디로 정리될만한 질문이 아니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그의 19년 연출인생은 그렇게 파란만장했다.
데뷔작 ‘은행나무 침대’(1996)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신선한 내용을 완성도 있게 연출해낸 신인감독에게 충무로의 기대가 쏟아졌다. 두 번째 작품 ‘쉬리’(1998)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그리고 천만 영화 시대의 시초격인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나왔다. ‘강제규=흥행’ 공식이 성립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동안 그의 작품을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다. 이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강 감독은 대형 프로젝트를 들고 컴백했다. 제작비 280억원이 투입된 한·중·일 합작영화 ‘마이 웨이’(2011). 장동건·판빙빙·오다기리 조 등 세 나라 톱스타들까지 총출동했다. 그러나 최종 스코어는 고작 214만명. 그야말로 참혹했다.
‘마이 웨이’ 이후 3년 만의 장편이다. 지난해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을 내놨지만, 장편은 또 다르다. ‘폭탄 터뜨리는 영화’ 전문인 강제규 감독은 과감한 도전을 했다. 로맨스, 더구나 70세 노인 성칠(박근형)과 금님(윤여정)의 사랑이야기다. ‘장수상회’를 개봉하는 그의 마음은 어떨까.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 감독은 인터뷰 내내 평온해 보였다.
“부담이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가볍기도 해요. 전작들은 아무래도 제작비나 규모가 크니까 흥행에 대한 부담도 크잖아요. 엄청나게 흥행이 돼야 손실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이번 영화는 사이즈가 좀 작으니까 그만큼 부담이 줄었어요(웃음).”
이전과는 사뭇 달랐던 촬영장 분위기 영향도 컸다. 강 감독은 “내가 원하는 지점의 감정이나 느낌의 샷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건 똑같았지만 실질적으로 작업 환경 자체의 방향이 달랐다”며 “마치 소풍 온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동안은 어떤 중압감이나 부담감들이 날 지배하고 있었어요. 촬영장에 오는 사람들도 ‘어우, 전쟁터보다 더 전쟁터 같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고(웃음). 그런 전쟁 같은 치열함 속에서 촬영했는데 (이번엔) 서울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아침저녁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찍으니까. 하하. 같은 영화를 찍는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싶더라고요.”
물론 처음 해본 시도들이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코믹한 장면들을 찍으면서 고민이 많았다. 연출 스타일에 살짝 변화를 준 것도 그래서였다. 과거엔 대본대로 대사를 하지 않는 걸 용납하지 못했지만 이번엔 모든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 감독은 “코미디는 규제와 통제 안에서보다 날 것들에서 나오기 마련”이라며 “특히 코믹한 인물들의 경우 대사를 조금 비틀거나 변형시키거나 애드리브를 하는 부분들을 다 열어 놨다”고 설명했다. 의도되지 않은 재미를 끌어내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촬영분을 보면서 여전히 헷갈릴 때가 많았단다. ‘이게 정말 재밌는 건가.’
“제가 뭐 이렇게 경쾌하고 코믹 터치의 드라마를 안 해보다가 처음 한 거니까…. 그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과정들이 좀 생소했어요. 찍으면서도 ‘이게 맞나? 진짜 재밌나? 정말 웃기니?’ 계속 확인했던 것 같아요. 그런 데에서 어려움이 있었죠.”
새로운 장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느냐는 말에 강 감독은 “원래 장르적으로 다양한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입을 뗐다. 그는 “‘내가 정말로 이걸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긴장이 있긴 했다”며 “돌이켜 생각해보니 ‘민우씨 오는 날’을 한 게 ‘장수상회’를 선택하는 데 자신감과 용기를 줬다”고 털어놨다.
‘민우씨 오는 날’는 2013년 대학 세미나 참석차 홍콩에 방문했을 때 홍콩영화제 측이 단편 섹션 참여를 요청해오면서 찍게 된 작품이다. 당시 그는 “큰 영화를 주로 하다 보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그가 문득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출발은 대학 다닐 때 했던 단편이잖아요. 단편을 하면 감독 입장에서 좀 힐링이 되거든요. 흥행에 대한 부담도 없고 ‘이렇게 찍어라 저렇게 찍어라’ 간섭하는 사람도 없고(웃음). 자기가 상상한 대로 의지한 대로 찍을 수 있으니까 정말 자유롭잖아요. 하고 싶었는데 그런 제안이 와서 (하게 됐죠).”
대중에겐 ‘한참 잘 되다 요즘 뜸한 감독’ 쯤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공백이 너무 길었던 거 아닌가’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 감독은 쉬지 않았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바로 SF영화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미국 최대 엔터테인먼트사가 손을 내밀면서 2006년 초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2009년 말까지 약 4년간 현지에 머물렀다. 양측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영화는 백지화됐지만 말이다.
강 감독은 “그땐 되게 속상했죠”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당시의 상실감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긍정왕’인 그는 “그게 제가 하고 싶은데 현실이 되지 않은 첫 번째 케이스”라며 “비록 영화는 탄생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고 얘기했다. 이어 “인생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내가 좀 더 성장하고 영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며 “나름대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웃었다.
“제 행보에 대해 영화 관계자들은 알지만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니까 ‘어, 이 사람이 태극기 휘날리며 하고 뻥하고 사라져버렸네’ (그러셨겠죠). 하하. 그러다 한참 뒤에 ‘마이 웨이’를 했는데 흥행적으로 부진했으니 또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그 두 개가 (컸죠). 7년, 굉장히 긴 시간이죠.”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만나볼 수 있을까. 현재 준비 중인 시나리오들이 있다. 완고가 나오면 상반기까지 결정해 내년 봄엔 촬영에 들어가고 싶다고 강 감독은 말했다. 의지에 찬 듯한 표정이 반가워 ‘차기작을 빨리 보고 싶다’고 재촉했다. “알겠습니다. 빨리 보여드릴게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분명 이렇게 약속했다.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