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김고은 “차이나타운 끝나고 집에만… 제가 이상했죠”

[쿠키人터뷰] 김고은 “차이나타운 끝나고 집에만… 제가 이상했죠”

기사승인 2015-04-24 16:06:55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 ‘은교’(2012)를 봤을 때 생각했다. 이 강렬한 첫 인상을 김고은(24)이라는 배우가 얼마만큼 지워낼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었다. ‘몬스터’(2014)서 흠칫했다 ‘차이나타운’으로 확신했다. 은교는 이제 없다.

‘차이나타운’에서 김고은은 갓난아기 때 지하철 보관함 10번 칸에 버려진 ‘일영’이 됐다. 노숙인들 사이에서 곰팡이 잔뜩 핀 음식이나 뜯어먹으며 자란 일영은 차이나타운으로 팔려간 뒤 더 험난한 삶을 맞닥뜨린다. 이 지역을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 ‘엄마’(김혜수)의 밑으로 들어가 사채와 인신매매를 업으로 삼고 살아간다.

담배를 꼬나물고 거친 욕설을 내뱉는 설정은 기본이다. 누군가를 협박하고 폭행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장면들이 줄줄이 나온다. 여배우에게 쉽지 않은 역할이다. 그러나 김고은은 해냈다. 묵직한 뭔가가 들어찬 일영의 눈빛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잊기 어렵다.

시사회 바로 다음 날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또 새로웠다. 영락없는 소녀였다. 작은 칭찬에도 쑥스러워 대답을 잘 못하고, 얘기를 하는 중간 말이 엉키면 배시시 웃었다. 농담을 하며 깔깔거릴 땐 눈이 거의 감길 정도로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연이은 홍보 일정이 피곤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씩씩하게 대답하던 김고은은 위층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내려가는 김혜수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종종 달려갔다. 발을 동동 구르며 힘들다는 듯 투정을 부리자 김혜수는 코 찡긋 웃으며 그를 안고 토닥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얘기를 할 때의 김고은은 달랐다.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몇 분이고 막힘없이 했다. 그때의 진지한 눈빛엔 일영이 살짝 어른거린 것 같기도 하다.


-시사회 때 “머리가 하얘졌다”고 했는데.
“전작들은 언론시사 때 영화를 보지 않았어요. 질의응답 시간에 (마음이) 좀 편안한 상태로 하고 싶었거든요. 이번엔 처음으로 시사 때 영화를 봤어요. ‘차이나타운’은 그렇게 한번 보고 싶더라고요. 같이 일하는 저희 스태프들과 같이요.”

-영화 보니 어땠나.
“개인적으로는 ‘출연하길 참 잘했다’ ‘행운이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과 영화를 봤을 때의 느낌이 일치하는 감이 있어서 좋았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영화) 보고 난 뒤에 정말 감사하다고 얘기했었어요(웃음).”

-시나리오 봤을 땐 어떤 느낌이었기에.
“막연하게 먹먹하고 울컥했어요. 제가 ‘그림 같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거든요? 딱 그랬어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캐릭터나 내용·소재가 보이는 게 아니라 한 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어요. 특정한 뭔가가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그것을 봤을 때의 감정이 남아서 좋았어요.”

-일영 캐릭터에 끌린 이유는 뭔가.
“그냥…. 그 인물에 대해서 연민이 좀 느껴졌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가 맡는 캐릭터는 제 스스로 그 인물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그게 굉장히 강했어요. 그 친구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해한다, 안 한다’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더라고요.”

-특별히 연민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나.
“밝은 영화여도 저는 기본적으로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에게 느껴지는 공감대라고 할까(웃음). 그런 동요가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작에 이어 또 강한 캐릭터라 부담됐을 법 한데.
“제가 그렇게 막 생각이 복잡한 사람이 아니라서요. ‘전작을 신경 쓰셨나’ ‘은교와 다르게 하려고 한 거냐’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그런 걸 생각 안 하고 작품을 선택하거든요. 자꾸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앞으로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싶기도 하고…. 그 정도까지 지금 생각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럼 작품 선택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나.
“아직까진 저한테 뭔가 기준을 두고 싶지 않아요. ‘이건 이래서 좋아’ ‘잘 될 거야’ 주변 환경 따지고…. 저한텐 그런 건 아직 없었거든요. 그냥 시나리오를 보고 좋으면 고민이 별로 길지 않았던 것 같아요. ‘괜찮을까’보다는 ‘하겠다’는 말이 먼저 나왔어요. 외적인 상황에 대해서 그렇게 고민하고 싶진 않아요. 제가 작품을 좀 더 많이 했을 땐 책임감도 더 많이 가져야 하고, 제가 짊어지고 가는 부분도 많아지겠죠. 근데 지금부터 그러고 싶지는 않았었어요.”

-김혜수씨와 함께 작업하면서 배운 게 많았을 것 같다.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선배님의 내공을 전 현장에서 보잖아요. 그렇지 않았다면 전 그것을 경험하고 체득해나가면서 (알아내야 하니까). 세월을 단축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기적인 내공은 제가 겪어내야 하는 부분이지만요. 누군가 알려주지 않으면 모를 수 있는데 옆에서 보고 느끼니까 ‘옳다’ ‘나도 이렇게 할 것이다’ ‘해 내겠다’하는 것들을 (데뷔 후)4년이라는 시간에 비해선 굉장히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특별히 그런 감정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
“음, 일단 (김)혜수 선배님은 정말…. 뭐라고 해야 하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어요. 굉장히 대선배이시고 그런데 ‘현장에서 어떻게 저렇게 여전히 열정적일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제가 힘들다고 느낄 때 되게 반성을 많이 하게 돼요. ‘지금 나 까짓 게!’ ‘선배님도 저렇게 하시는데 내가 지금’ 이런(웃음).”


-무거운 작품 끝낸 뒤 공허함 같은 건 없나.
“원래는 없는데 ‘차이나타운’ 끝나고 나선 좀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생각해 보니까 (제가) 연달아 네 작품을 거의 쉬지 않고 했더라고요.(아직 개봉은 안됐지만 그는 ‘협녀: 칼의 기억’에도 출연했다.) 굉장히 깊은 감정을 요구하는 캐릭터들이었고요. 그리고 육체적으로도 몸을 많이 쓰는 역할들을 많이 해서 그런지, 한동안 집에서 안 나왔어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적인 상태로 있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정말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어떤 마음이었기에.
“특별한 마음이 든 건 아닌데 그냥 무기력했어요. 그래서 스스로한테 물어봤더니 결론은 ‘그래. 4편 연달아 찍었는데 지금까지 그런 거 안 느끼면서 있었던 게 이상한 거지.’였어요. 좀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4편을 찍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죠.”

-정말 쉴 틈이 없었던 것 같다. 지치진 않았나.
“그냥 비워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지내고 나면 또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데뷔부터 화려했다. ‘은교’ 끝난 뒤 뜨거운 관심들이 당황스럽진 않았나.
“(대부분) 온라인상의 관심이었어요. 오프라인에선 (사람들이) 나를 막 알아보고 그렇진 않았어요(웃음).

-인기 체감하진 못했나.
“그럼요. 제가 인기스타가 아니니까요. 저는 저대로 생활 잘 했어요. 학교 잘 다니면서 공연하고, 놀러도 다니고. 지금도 잘 돌아다니고 노니까(웃음). 달라진 게 있다면 꾸준히 작품을 할 수 있게 된 거? 만약 ‘은교’를 안 만났으면 계속 열심히 오디션을 보러 다녔겠죠. 그런 단계가 없어졌다는 것에 대해선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 할 때마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려고 많이 노력하는 것 같아요.”


-해보고 싶은 새로운 역할은.
“저는 그냥 다양하게 다 맡고 싶어요. 음…. (그 중에서도) 사람 사는 얘기가 제일 재밌는 거 같아요. 가상의 얘기도 물론 재밌고 좋지만 지금은 좀 더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게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여러 가지 방면에서 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사람들은 김고은씨를 보고 매력 있는 스타일이라고들 하더라. 청순하면서도 섹시하다고.
“진짜요? 감사합니다(웃음). 그렇게 봐 주시다니.”

-스스로 본인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수수함(웃음)? 학생 때부터 수수하다는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선생님들도 ‘야 너 되게 수수하다’ 이런 얘기하시고. 그땐 그게 ‘좋은 뜻이야, 나쁜 뜻이야?’ 궁금했는데 지금은 칭찬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후줄근함이 아니라 수수함. 하하.” kwonny@kmib.co.kr, 사진=박효상 기자
권남영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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