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을지로 4가에 몰려 있는 화공 약품점 상인들은 단단히 화가 나 있었습니다. ‘염산 테러’ 사고만 터지면 괜한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근 50년간 화공 약품을 팔아왔던 상인 김모(70)씨는 “무슨 일만 있으면 시청, 환경부, 기자 할 것 없이 와서 사람을 추궁해대는데 진절머리가 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한테 염산 못 팔아. 근데 왜 염산 범죄만 일어나면 우리가 공범인 것처럼 취급하느냐는 말이야!”
지난 15일 쿠키뉴스는 최근 대형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와 ‘옥션’에서 고농도의 염산을 마땅한 규제 없이 판매하고 있었다는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11번가에서는 35%의 염산·68%의 질산을 같이 판매하는 일명 ‘왕수 제조 세트’를, 옥션에서는 20%의 고농도 염산 1㎏을 4만7960원에 판매했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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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화공 약품에 접근이 쉬운 건 온라인이었습니다. 오프라인 화공 약품점에서 염산을 살 때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칩니다. 판매자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해야 하며 따로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날짜, 사인 등을 기재해야 하고 사업자등록증 사본도 제출해야 합니다.
판매자 역시 화공 약품을 다룰 수 있는 허가증을 소지해야 하며, 정기적인 안전교육을 이수해야 하죠.
하지만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이런 유해 물질을 ‘그냥’ 살 수 있습니다. 기자도 20% 농도 염산을 ‘비회원구매’ 경로를 이용, 무통장입금 방법으로 주문하기까지 어떠한 제약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11번가, 옥션 모두 해당 상품을 판매 금지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염산은 온라인 판매에 제약이 없는 상품”이라는 입장은 변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취재 결과 문제가 되는 상품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실험시약’입니다. 염산 관련 취재를 시작한 지난 12일부터 ‘11번가’ ‘G마켓’ ‘옥션’ ‘인터파크’ 등의 종합 온라인 쇼핑몰을 확인한 결과, 이곳들은 그동안 실험시약을 판매해 왔습니다. 개중에는 위험등급이 꽤 높은 시약들도 존재합니다.
연구용 시약을 온라인에서 파는 걸 불법이라 할 순 없습니다. 다만, 실험을 목적으로 하는 연구실에 판매하는 건 영업허가가 면제되지만, 일반인에게 파는 것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일반인에게 이를 판매할 경우 영업허가증이 있어야 하며, 화공 약품 상인들처럼 관리대장을 작성해야 합니다. 이럴 경우 허가증이 없으면 무허가 영업, 허가증이 있으나 관리대장을 작성 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되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무색, 무취 파우더 형태의 ‘트리에틸아민 염산염’은 위험등급 3등급의 실험시약입니다.
강원대학교 화학과 김진호 교수는 “이 시약의 경우 비린내가 굉장히 심해 냄새를 오래 맡을 경우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시약을 ‘11번가’ ‘옥션’ ‘인터파크’에서 팔고 있었고 기자의 확인 후 세 곳의 쇼핑몰에서 해당 약품 판매 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유해물질에 해당한다는 이유입니다.
물론 시약을 전문가에게 판매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화학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는 기자도 한 쇼핑몰에서 트리에틸아민 염산염을 포함, 500여만원의 시약을 장바구니에 담는 데 특별한 조건은 없었습니다. 제품 상세 설명에도 판매자의 허가증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취재 기간 온라인 쇼핑몰들이 공통적인 대답을 해 왔다는 겁니다. ‘모니터링에 미스가 있었던 것 같다’가 그것입니다. “유해물질에 관련해서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나 해당 상품은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는 것이죠.
하나 더 있습니다. “저희는 중개인의 입장이라 모든 상품을 확인할 수 없고 판매책임은 판매자에게 있다”는 입장입니다.
자신들이 운영하는 ‘장터’에서 팔려나간 염산 한 병이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 흉기로 쓰일지 모르는데도 ‘법적 책임’만 운운하는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 현행법의 관점으로만 보면 책임이 없겠지만, ‘인간의 상식’이란 관점에선 책임이 매우 커 보입니다.
민수미 기자 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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