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내거] 13년 만에 다시 7명… 다시 클릭받을 수 있을까

[이 형 내거] 13년 만에 다시 7명… 다시 클릭받을 수 있을까

기사승인 2015-10-21 09:00:55

[쿠키뉴스=조현우 기자] 그룹 클릭비(Click-B)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했다. 댄스 음악에 밴드를 더해 클릭받고 싶다는 팀 이름부터 그랬다. 비슷비슷한 형태의 아이돌 그룹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던 1990년대 말이라 꽤나 신선했다. 젝스키스와 핑클을 만든 대형기획사 작품이기에 주변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데뷔 앨범부터 힘겨웠다. 잘 생긴 외모는 곧바로 회자됐지만 타이틀곡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분명 악기를 잡긴 잡았는데 밴드 흉내만 낸다는 비아냥이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 신동’으로 불린 노민혁이 상업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절치부심한 2집 ‘환영문’은 괜찮았다. 속도감 있는 멜로디와 후렴구는 귀에 잘 꽂혔다. 춤 출 수 있는 곳에선 어김없이 등장하던 한 곡이었고, 현재까지도 뮤직비디오가 언급될 만큼 영상미가 화려했다. 그룹 이름을 각인시켰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악재가 터졌다. 2001년 지병을 앓던 팬 한 명이 팬클럽 무리에서 클릭비를 기다리다가 사망했다. 당시 3집을 준비하고 있던 클릭비는 활동을 전면 중단했고 오종혁은 잠적까지 할 정도로 힘겨워했다.

하늘나라에서 팬이 도와준 것일까. 클릭비는 3집 ‘백전무패’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오랜 꿈을 이룬다. 오종혁은 본인 첫 자작곡이자 추모곡으로 만든 ‘소요유’를 앨범에 담아 팬을 기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1위라는 감격에 펑펑 울던 멤버들은 각각 인기를 얻어 방송 외도가 잦아졌다. 나온다고 하던 4집이 점점 미뤄지다 결국 사달이 난다. 노민혁과 하현곤이 연주자가 되겠다며 팀을 탈퇴하고, 또래 아이돌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힌 외모였던 유호석도 하차했다. 노민혁은 훗날 인터뷰에서 “클릭비 활동 하면서 즐겁진 않았다. 죽어 있었다는 느낌이었다”며 “내 생각대로 했던 게 아무 것도 없고 이끌려 다녔다. 연주를 직접 했던 것도 아니었고, 쌓인 게 많았다”고 털어놨다.

4명이 남았지만 클릭비 이름을 지키고 싶다는 열망은 강했다. 그래서 4집도 냈다. 밴드는 포기했지만 멤버들의 앨범 참여 빈도는 높았다. 오종혁이 반년 동안 공들여 작사·작곡한 ‘카우보이’가 인기를 끌었다. 빅 히트는 아니었지만 해체설을 잠재울 정도의 기반은 마련했다.

그런데 또다시 불행이 찾아왔다. 2005년 김상혁이 사고를 친 것. 그 유명한 “술을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발언만 남기고 클릭비는 뇌리에서 잊혀졌다. 가수와 배우, 연주자 등 멤버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13년이 흘렀다. 13년 만의 완전체 재결합은 지난해 큰 화제를 모은 지오디(god) 컴백과 닮았다. 하지만 클릭비는 지오디 보다 인기가 없었고 히트곡 숫자에서도 밀린다. 무엇보다 멜로디 위주의 그룹이 아니라 댄스와 밴드를 뒤섞은 퍼포먼스형에 가까워 팬덤층이 좁았다.

그래서 클릭비 컴백의 단초는 곡에 있다. 그동안 겹겹이 쌓인 회한을 풀어낼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최근 추세라면 신곡이 공개되자마자 단숨에 음원 사이트 1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계속된 행보를 위해선 어느 정도 퀄리티 있는 곡이 필수적이다. SBS ‘심폐소생송’ 깜짝 출연 효과를 넘어 클릭비는 신보로도 클릭받을 수 있을까.

△코너명: 자랑할 이, 형 형, 어찌 내, 횃불 거. ‘어둠 속 횃불같이 빛나는 이 형(혹은 오빠, 언니)을 어찌 자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뜻으로, ‘이 오빠 내 거’라는 사심이 담겨있지 않다 할 수 없는 코너명.
조현우 기자 기자
canne@kmib.co.kr
조현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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