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폭행·출산 숨겼다고 무조건 혼인 취소할 수 없어”

대법 “성폭행·출산 숨겼다고 무조건 혼인 취소할 수 없어”

기사승인 2016-02-22 13:16:55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결혼 이주여성이 한국으로 건너오기 전 성폭행·출산 사실을 시댁에 숨겼어도 남편이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김모(41)씨가 부인 A씨(26)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혼인을 취소하고 A씨는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전주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국제결혼중개로 2012년 2월 A씨의 모국인 베트남에서 결혼한 두 사람은 A씨가 같은해 7월에 입국하면서 한국에서 살았다. 시집살이를 하던 A씨는 이듬해 시아버지에게 성폭행과 추행을 당했고 시아버지는 혐의가 인정돼 징역 7년이 확정됐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A씨가 과거 출산을 했던 사실도 함께 밝혀졌다.

A씨가 13세 때 베트남 소수민족 남자에게 납치돼 성폭행을 당해 이른바 ‘약탈혼’을 당했고, 8개월 만에 친정으로 도망친 뒤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남자가 그 뒤로도 계속 찾아와 식당 등지에서 일하며 지냈고 아들은 남자가 데려갔다는 게 A씨의 주장이었다.

남편은 A씨가 맞선 당시는 물론 결혼 이후에도 이 같은 과거를 숨겼다며 혼인 취소와 위자료 3000만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민법상 ‘사기로 인해 혼인 의사표시를 한 때’에는 법원에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A씨는 시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도 남편이 방치했다며 이혼과 위자료 1000만원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1·2심은 “출산 경력은 상대방의 혼인 의사결정에 중대한 고려 요소”라면서 “알았다면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남편 김씨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폭행으로 출산한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사기 결혼으로 볼 수는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출산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고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이라며 “단순히 출산 경력을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민법상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임신과 출산 경위, 자녀와의 관계 등을 충분히 심리했어야 하는데 혼인 취소 사유가 있다고 쉽게 단정했다”고 지적했다. afero@kukimedia.co.kr 페이스북 fb.com/hyeonseob.kim.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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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김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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